팔레스타인 어린이들이 지난 24일(현지시간) 가자지구 중부 누세이라트 난민촌 앞에 서로를 붙잡고 서 있다. 신화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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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과 러시아·우크라이나에서 전쟁이 계속되면서 2024년은 무고한 민간인의 죽음과 피란민의 눈물로 얼룩졌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하며 더욱 강력해진 미국우선주의를 예고했고, 중국은 부동산시장 및 내수 부진 탓에 경기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전쟁이 2년째에 접어든 올해 중동지역 전선은 더 확대됐고, 갈등도 더욱 격화됐다. 이스라엘은 가자지구를 봉쇄한 채 고강도 폭격을 이어가는 한편 이란과 레바논, 예멘으로 전선을 확대했다.
특히 이스라엘이 중동지역 반이스라엘 연대인 이른바 ‘저항의 축’의 맹주 이란과 두 차례 직접 공격을 주고받으며 전운이 최고조로 치달았다. 오랜 숙적인 두 나라는 지난 4월 이스라엘이 시리아 다마스쿠스 주재 이란 영사관을 폭격하자 서로의 영토를 겨냥한 첫 공격을 주고받았다. 이후 지난 7월 말 이스라엘이 하마스 수장인 이스마일 하니야를 이란 수도 테헤란에서 암살하며 양측은 10월 또 한 번 맞붙었다.
다만 하마스, 헤즈볼라 등 친이란 대리세력이 줄줄이 궤멸위기에 놓이며 중동지역 내 힘의 균형은 이스라엘 쪽으로 기울었다. 이스라엘은 지난 9월 레바논 전역에서 ‘삐삐 원격 폭발’ 공격을 시작으로 레바논에 대대적인 공습을 퍼부었고, 곧이어 18년 만에 지상군을 투입하는 등 레바논을 침공했다. 이후 두 달여간 이어진 전쟁은 지난 11월27일 양측이 휴전에 합의하며 가까스로 중단됐으나, 수천명의 인명 피해가 발생했고 헤즈볼라는 고사위기에 몰렸다. 가자지구에선 4만5000명 이상 사망하는 등 피해가 계속되고 있다.
의료진들이 지난 23일(현지시간) 전장에서 다친 우크라이나 군인들을 치료하고 있다. AP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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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군 러시아 파병
격화한 우크라 전쟁
러시아의 침공으로 시작돼 1000일을 넘긴 우크라이나 전쟁은 올해 중대 변곡점을 맞으며 격화했다.
우크라이나는 지난 8월6일 러시아 본토를 진격하는 과감한 역습을 단행했다. 무방비 상태에서 허를 찔린 러시아는 쿠르스크 지역 일부를 내줬다. 고전을 거듭해온 우크라이나의 역습은 국제사회 관심을 끌어오고, 훗날 러시아와 벌일 종전 협상에서 유리한 카드를 거머쥐기 위한 ‘승부수’ 혹은 ‘도박’으로 평가받았다.
상황은 예기치 못한 북한의 러시아 파병으로 급변했다. 러시아는 쿠르스크 방어를 위해 우크라이나 동부 전선의 병력을 빼올 것이란 우크라이나의 기대와 달리 파병된 북한군 1만여명을 투입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이에 대응해 우크라이나에 미국산 장거리 미사일 사용을 허가했다. 북·러 밀착과 무력 충돌의 악순환이 이어지며 국제전으로 확대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졌다. 러시아가 핵 교리를 개정하면서 핵전쟁 위험까지 거론됐다.
조기 종전을 공언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인이 재집권에 성공하면서 전황은 한층 복잡해졌다. 트럼프 당선인이 ‘현재의 전선’을 따라 종전 협상을 압박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오면서다.
러·우는 조금이라도 더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기 위해 쿠르스크 탈환전 등을 두고 치열한 교전을 이어가고 있다. 유엔 인권감시단에 따르면 러시아의 침공 이후 지난 8월까지 민간인 최소 1만1743명이 숨지고 2만4614명이 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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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빙’ 예측 깨고
트럼프 재선 성공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지난 11월5일(현지시간) 대선에서 민주당 후보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을 꺾고 2020년 대선 패배 이후 4년 만에 백악관을 탈환했다. 선거운동 기간 다수의 여론조사기관이 박빙 승부가 되리라고 예측했으나 트럼프 당선인은 7개 경합주를 쓸어담으며 선거인단 312명을 확보했다. 민주당은 대선을 약 100일 앞두고 후보를 조 바이든 대통령에서 해리스 부통령으로 교체하는 초강수를 뒀지만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
트럼프 당선인은 공화당 경선 때부터 당내 경쟁자들을 여유 있게 앞섰고, 니키 헤일리 전 유엔 대사가 지난 3월 경선에서 사퇴하면서 일찌감치 대선 후보직을 확정했다.
두 번의 암살 미수 사건은 이번 미 대선을 더욱 극적으로 만들었다. 트럼프 당선인은 지난 7월 펜실베이니아의 유세장에서 총탄이 귀를 스치고 지나가 죽을 고비를 넘겼다. 지난 9월엔 트럼프 당선인 소유의 골프클럽 주변에서 무장한 남성이 체포됐다.
트럼프 당선인은 다음달 20일 백악관에 들어간다. 그는 취임 첫날 불법 이민자를 추방하고, 2021년 1월6일 의회의사당에 난입했던 폭도들을 사면하겠다고 공약했다. 중국산 수입품에 60% 고율관세를 부과하고,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와 한국 등 동맹에 방위비 고지서를 보내겠다고도 했다. 더 강력해진 트럼프의 미국우선주의가 전 세계 외교·안보·경제 등에 적잖은 충격파를 전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13일(현지시간) 시리아 시민들이 다마스쿠스의 광장에서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의 몰락을 축하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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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사드 정권 몰락
독재 끝난 시리아
‘시리아의 도살자’로 불렸던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이 12월8일 러시아로 도피하며 2대 53년에 걸친 알아사드 가문 독재가 막을 내렸다. 대공세에 나선 시리아 반군은 파죽지세로 제2의 도시 알레포, 제3의 도시 홈스에 이어 수도 다마스쿠스까지 손에 넣었다. 13년을 끌었던 시리아 내전은 불과 열흘 만에, 이처럼 단숨에 끝났다.
시리아 곳곳에서 반군을 환영하는 인파가 모여 알아사드의 몰락을 축하했으며, 대통령궁으로 몰려간 이들은 값비싼 차량과 명품으로 가득 찬 독재자의 호화로운 생활상을 목도하며 분노했다. 알아사드 정권 탄압의 상징인 세드나야 교도소에서 가족과 연인을 잃었던 이들은 망자의 흔적을 찾으려 분투하고 있다.
하야트타흐리르알샴(HTS)을 비롯한 반군은 과도정부를 선포하며 “새롭고 자유로운 시리아”를 약속했다. 모든 종파를 포용하고 언론인을 제재하지 않으며 인권을 존중하겠다고 밝혔다. 반군은 내각을 구성하고 시리아 사상 처음으로 여성 문제 담당국을 설립하는 등 ‘정상 국가’로 나아가겠다는 태도를 연일 내보이고 있다. 시리아 국민들도 ‘새 나라’를 만들어보자는 열망을 표출하며 호응 중이다.
시리아 개혁의 관건은 소수 종파와 여성 등 소수자를 얼마나 포용하느냐에 달렸다는 분석이 많다. 이는 반군이 군복을 양복으로 갈아입는 것보다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국제사회는 과도정부와 외교 관계를 맺으며 응원하는 한편 의구심을 완전히 거두지는 않고 있다.
스페인 발렌시아 소방관들이 지난달 1일(현지시간) 홍수에 휩쓸린 차량들로 입구가 막힌 터널 앞에서 물을 뽑아내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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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파·홍수·폭염…
전 세계 기상이변
세계 곳곳에서 기상이변이 속출했다. 미국에는 연초부터 ‘북극 한파’가 덮쳤다. 일부 지역 기온이 영하 34도까지 떨어지면서 저체온증 등으로 80여명이 숨졌다. 3~5월 브라질에는 폭우가 쏟아져 136명이 사망했고, 케냐에서는 267명이 홍수로 숨졌다. 사막 기후인 아랍에미리트연합 두바이도 지난 5월에 내린 최악의 폭우로 물에 잠겼다. 10월 스페인에서는 사상 최악의 홍수로 사망자 100여명이 발생해 기후재앙이 저개발국에만 벌어지는 게 아니란 점을 일깨웠다.
종잡을 수 없는 날씨는 일상도 위태롭게 했다. 5월 총선을 치른 인도에서는 최고기온이 52.9도까지 오르는 폭염이 계속돼 선거에도 비상이 걸렸다. 열사병 사망자가 속출하면서 투표소에는 구급대가 배치됐다. 사우디에서는 6월 살인적 더위 속에서 메카와 메디나 성지순례(하지)를 하던 무슬림 1300명이 온열질환으로 숨졌다.
기상이변은 지구가 빠른 속도로 데워진 결과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올해는 지구 평균기온이 가장 높았던 해로 기록됐다. 열두 달 평균기온이 산업화 이전보다 1.62도 오르면서 국제사회가 ‘기후재앙 마지노선’으로 정한 1.5도를 처음으로 넘어섰다.
인류의 대응은 안일했다. 제29차 당사국총회(COP29)에선 기후위기 책임이 큰 선진국들이 기후 재원을 늘리기로 했지만, 개도국 요구에 한참 못 미치는 수준이었다. 세계 2위 탄소배출국 미국에선 ‘기후위기 부정론자’ 도널드 트럼프 당선인이 내년 1월 재집권한다.
지난 9월22일(현지시간) 독일 브란덴부르크에서 극우 정당 ‘독일을위한대안’의 한스 크리스토프 베른트 후보가 인사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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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여개국 선거의 해
극우 정당들 ‘돌풍’
올해는 전 세계 70여개국에서 주요 선거가 잇따라 치러진 ‘슈퍼 선거의 해’로, 약 40억명의 유권자가 투표소로 향했다. 물가 상승 등 경제지표 악화, 반이민 정서 확대, 정치적 양극화 속에서 변화와 개혁을 요구하는 민심은 정권 심판이라는 표심으로 결집했다.
일본 집권 자민당은 10월 중의원 선거에서 전체 465석 중 191석을 얻는 데 그쳤다. 유럽에서도 집권당들은 민심의 강한 반발에 부딪혔고, 극우 세력의 부상이 뚜렷하게 나타났다. 극우 정당들의 돌풍은 6월 유럽의회 선거에서 본격화됐으며 프랑스 국민연합, 독일을위한대안(AfD), 이탈리아형제들 등이 눈에 띄는 성과를 거두며 존재감을 확실히 드러냈다.
프랑스에서는 6~7월 총선에서 극좌·우 정당이 약진하면서 여당 연합 앙상블이 영향력을 상실했고, 어떤 정당도 단독 과반을 확보하지 못하는 혼란이 벌어졌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공화당 소속 미셸 바르니에를 총리로 임명했으나, 정부 불신임안이 통과되며 프랑수아 바이루 민주운동당 대표를 새 총리로 임명해야 했다.
7월 영국 총선에서는 노동당이 보수당을 크게 압도하며 14년 만에 정권을 탈환했다. 그러나 키어 스타머 노동당 정부는 심상치 않은 극우 세력의 기세에 도전을 받고 있다. 독일에서도 지난 9월 지방선거에서 나치 시대 이후 처음으로 극우 정당이 승리를 거뒀다. 올라프 숄츠 총리가 이끄는 중도 좌파 연립정부는 붕괴했고, 12월23일 의회가 해산돼 내년 2월 조기 총선을 앞두고 있다.
한 여성 노동자가 지난 24일 중국 장쑤성 지역에 위치한 섬유공장에서 일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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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양책도 무용지물
중국 경제 ‘둔화세’
올해 중국 경제는 부진했다. 중국 국가통계국에 따르면 올해 1분기 5.3%를 기록했던 성장률은 2분기 4.7%, 3분기 4.6%에 그치며 둔화세로 돌아섰다.
수출은 호조세였지만, 부동산 투자가 매달 10.3%씩 감소하며 지표를 끌어내렸다. 블룸버그 이코노믹스는 지난 5월 중국 전역에 6000만채의 미분양 주택이 있다고 추정했다. 부동산 판매 수익에 재정을 의존하던 지방정부, 건설사, 이들 회사에 자금을 대출해준 중소은행이 연쇄 위기에 노출될 가능성이 커졌다.
중국 지도부는 지난 9월 시진핑 국가주석의 간쑤성 시찰 이후 “경제 운용에 일부 어려움이 있다”고 인정했다. 9월 말부터 부양책을 내놓기 시작했다. 지급준비율을 0.5%포인트 낮추고 정책금리를 인하해 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했다.
하지만 가계의 소비 심리는 살아나지 못했다. 중국 전체 11월 소비증가율은 3.0%로 지난 10월(4.8%)보다 낮아졌다. 중국 정부의 부양책은 부동산 위기가 금융·재정 위기로 번지는 것을 막는 방화벽을 치는 것에 집중돼 있는 반면 소비 진흥책은 뚜렷하지 않았다.
중국은 이달 초 “더 적극적인 재정정책과 완화적인 통화정책을 실시하겠다”며 내년도 더 적극적인 경제정책을 예고했다. 통화정책 기조를 안정에서 완화로 바꾼 건 14년 만이다. 다만 지도부가 체제 안정을 무엇보다 우선시한다는 의구심을 해소하지 못한 채 미국과 치열한 분쟁을 벌일 것으로 예상되는 한 해를 맞게 됐다.
박은경·선명수·김서영·김희진·최혜린·박은하 기자 yam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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