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전 영화같은 일본 탈출
카를로스 곤 전 닛산 회장
이번 합병에 관치개입 주장
“산업적 논리 전혀 없는 딜”
카를로스 곤 전 닛산 회장
이번 합병에 관치개입 주장
“산업적 논리 전혀 없는 딜”
카를로스 곤 전 닛산 회장의 2018년 재임 당시 모습. <사진=연합 AFP> |
“닛산은 지금 패닉 모드에 있다.”
2018년 닛산 회장직에서 강제 해임된 카를로스 곤 전 회장이 혼다와 합병을 논의 중인 닛산을 상대로 이 같은 냉소를 퍼부어 눈길을 끕니다.
닛산과 지독한 악연으로 얽혀있는 곤 전 회장은 20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 인터뷰에서 혼다와 닛산 간 합병 논의에 대해 “솔직히 두 회사 간의 시너지 효과를 찾기 어렵다는 점에서 이는 실용적인 거래가 아니다”라며 이 같이 일갈했습니다.
그만큼 닛산이 절박한 상황이라며 그는 닛산 경영권을 노리는 대만 홍하이 그룹에 맞서 일본 정부까지 닛산을 보호하기 위해 혼다에 합병을 종용하고 있다고 추정합니다.
그는 특히 닛산과 혼다가 비슷한 브랜드와 제품으로 같은 시장에서 영업하고 있는 현실을 지적하며 일본 경제산업성이 혼다에 합병을 추진하도록 밀어붙였다고 주장합니다.
그는 “(경산성은) 닛산의 단기적 문제와 혼다의 장기적 비전을 결합할 무언가를 찾으려 하고 있다”라며 이 거래에 “산업적 논리는 없다”라고 잘라말했죠. 이어 “(합병의 실익이 없음에도) 성과와 통제 사이에서 선택을 해야 하는 순간이 있는 것”이라고 관치 의혹을 거듭 피력합니다.
주지하듯 두 기업의 합병에 불을 지른 당사자는 대만 업체인 홍하이 그룹입니다. 애플 아이폰을 주문제작하는 폭스콘의 모회사로, 홍하이 그룹은 향후 일본 닛산차를 인수해 ‘규모의 경제’를 갖추고 세계 전기차 시장에서 중국 업체들과 한번 붙어볼 요량입니다.
이를 위해 닛산의 외부 최대주주인 르노가 보유한 닛산 지분 35.71%에 눈독을 들이고 있습니다. 이 지분이 홍하이 그룹으로 넘어가지 못하도록 혼다가 백기사 역할을 할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된 바 있습니다.
이처럼 일본 경제의 자존심인 자동차 산업에서 한 축을 담당하는 닛산이 대만의 아이폰 OEM사에 넘어가는 굴욕적인 상황을 일본 경산성이 좌시할 리 만무합니다.
이와 관련해 민간 기업을 상대로 일본 정부가 휘둘러온 관치·관제 문화는 한국의 경제 부처가 모방할만큼 다양한 방식으로 작동합니다. 대표적으로 일본 총무성은 올해 한국 기업인 네이버를 상대로 라인야후 경영권을 넘기라는 부당한 압박을 한 바 있습니다.
2019년에는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항의해 경산성이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수출 심사 우대국)에서 제외시키는 조치를 발동했습니다.
이로 인해 한국 반도체 기업은 물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불화수소 등을 납품하던 일본 기업들까지 피해를 입었죠.
정치적 이유로 자국 기업의 경제 이익까지 희생시키는 게 다른 나라에서 보기 힘든 일본 특유의 가미카제(자폭 특공대)식 관치 스타일입니다.
만약 혼다와 닛산 간 합병이 성사될 경우 혼다에 닛산의 부실이 전이될 수밖에 없어 상당한 후유증을 치를 것으로 보입니다. 투자자들은 혼다가 닛산에 일방적 ‘구제금융’ 역할을 할 가능성을 특히 염려하고 있습니다.
한편 올해 70세를 맞은 곤 전 회장은 영화 같은 일본 탈출 스토리로 유명합니다. 여기에서도 일본 정부가 프랑스의 자국 자동차 산업 영향력을 견제하기 위해 검찰을 개처럼 동원해 수사 공작을 벌였다는 의혹이 불거졌습니다.
2018년 일본 검찰에 의해 구속되는 카를로스 곤 닛산 회장의 모습 |
레바논계 프랑스인 경영자인 곤 전 회장은 르노·닛산·미쓰비시 얼라이언스를 이끌다가 닛산과 르노 간 경영 갈등이 빚어지고 2018년 11월 전격 구속되는 수모를 맞았죠.
당시 시장에서는 르노가 닛산을 합병할 가능성이 제기됐고, 양사 회장을 겸임하는 프랑스인인 곤 전 회장은 닛산과 일본 정부에 요주의 인물이 됐습니다.
일본 검찰은 갑작스럽게 그가 소득을 줄여 신고하는 등 금융상품거래법 위반 등 혐의가 있다며 수사에 나섰고 속전속결로 구속됩니다. 구속 106일이 지난 이듬해 3월 무려 100억원의 보석금을 내며 겨우 풀려났지만 이후 다시 특별배임 혐의로 체포되는 등 우여곡절이 이어졌습니다.
급기야 그의 부인이 일본에서 그를 탈출시킬 미국인 용병을 섭외했고 그해 12월 곤 회장은 대형 악기 상자에 몸을 숨기는 수법으로 오사카 간사이공항에서 자가용 비행기를 이용해 국적이 있는 레바논으로 도주시키는 데 성공했습니다.
화가 난 일본 당국은 곤 전 회장이 도주한 뒤 국제형사경찰기구(인터폴)를 통해 지명수배하고, 레바논 정부에는 신병 인도를 요청했지만 레바논은 일본과 범죄인 인도조약을 체결하지 않은 점을 들어 신병 인도를 거부했습니다.
일본 정부는 그의 레바논 탈출을 도운 미국 특수부대인 그린베레 출신 마이클 테일러와 그의 아들을 잡기 위해 미국에 범죄인 신병 인도를 요청했고 이 두 명의 미국인은 각각 징역 2년과 1년8개월이 확정돼 일본 교도소에서 복역 후 출소했습니다.(이들이 주도한 탈출 작전은 지난해 8월 애플TV에서 ‘수배 중 : 카를로스 곤의 탈출’(Wanted: The Escape of Carlos Ghosn)이라는 다큐멘터리로 대중에 공개됐습니다)
현재 레바논에서 거주하고 있는 곤 전 회장은 명예훼손 실추에 따른 10억달러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으로 닛산과 법적 분쟁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2019년 자신의 아들과 함께 카를로스 곤 전 닛산 회장의 일본 탈출을 도왔다가 체포돼 일본에서 복역한 마이클 테일러가 한 언론 인터뷰에서 당시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미국 특수부대인 그린베레 출신의 테일러는 당시 구출 작전을 위해 곤 전 회장의 부인으로부터 약 15억원 상당의 사례금을 받았다. 영화보다 더 영화같은 이 구출 작전은 지난해 다큐멘터리로 제작됐다. <이미지=아랍뉴스 영상 캡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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