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태의 해결은 관련 기록물을 모으고, 폐기 금지를 선언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내란 사태의 주요 장소가 대통령실과 국방부 등 외부 접근이 제한적인 곳이어서 기록물 멸실이 걱정된다.
계엄법 2조 5항은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하거나 변경하고자 할 때에는 국무회의의 심의를 거쳐야 한다”고 규정한다. 국무회의는 회의 명칭, 일시, 장소, 상정 안건, 참석자 현황, 주요 발언 등에 대해 기록한 후 행정안전부 홈페이지에 게시한다.
지난 13일 고기동 행안부 차관은 국회에서 “국무회의 실체와 형식과 절차를 확인하지는 못했다. 회의록은 없다”고 답변했다. 계엄의 절차적 불법성을 인정한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정식 회의를 대신해 국무위원에게 각종 조치사항을 담은 문건을 전달했다고 알려졌다.
이는 내란 사태의 본질을 증명할 수 있는 중요한 대통령기록물이다. 법에 따르면 대통령이 직접 작성한 수기기록도 대통령기록물이다. 현재까지 이 문건들을 누가, 어디에서 관리하고 있는지 알려지지 않았다. 중요 대통령기록물의 훼손이 우려된다. 이처럼 대통령실과 국방부의 계엄 기록에 대해 외부적 통제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대통령실은 검찰 및 경찰의 압수수색이 제한될 뿐만 아니라, 기록의 보존 여부도 알 수 없다. 경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단은 대통령실 압수수색을 여러 차례 시도했지만, 일부 자료만 전달받았다. 압수수색이 잦아질수록 관련 기록물이 무단 폐기될 가능성이 있으며, 이를 막을 물리적인 방법도 없다. 중요 증거가 범죄 장소에 버젓이 방치되고 있는 셈이다.
이런 우려 속에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국가기록원에 비상계엄 관련 기록물 폐기 금지 조치를 요청했다. 매우 적절한 조치다. 공공기록물법 27조 3항에 따르면 국가기록원장은 “국가적으로 중대한 사안으로서 조사기관 또는 수사기관의 요청이 있거나 국민의 권익 보호를 위하여 긴급히 필요한 경우” 해당 공공기관에 기록물 폐기 금지 요청을 할 수 있다. 이를 위반하면 7년 이하의 징역에 처할 수 있다.
국가기록원과 대통령기록관은 이 법률을 근거로 대통령실과 국방부에 대한 긴급 기록물 실태 점검에 나서야 한다. 기록관리단체협의회는 성명을 내고 “시스템에 탑재된 전자기록만이 아니라 비전자기록을 포함한 모든 비상계엄 관련 기록물이 폐기 금지 조치 대상일 수 있으며 대상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기간에도 대통령기록물이 폐기되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된 적이 있다. 헌법재판소 탄핵 심사가 수개월 지속되면서 어떤 대통령 기록이 생산되고 사라졌는지 알 수 없는 사태가 지속되었다. 정권 교체 이후 대통령 지시사항 등을 담은 ‘캐비닛 기록’이 관련자들의 제보로 밝혀지기도 했다. 이 기록들은 공식 대통령기록물로 이관되지 않았다.
현재 대통령실 홈페이지에 12월3일 계엄 선포 및 계엄 해제 담화문이 게시되지 않고 있다. 그 이후 계엄 선포는 야당 탓이라고 주장하는 후속 담화 및 국회 탄핵 담화만 존재한다. 계엄 선포가 불법이라는 점을 대통령과 참모들이 인식하고 있다는 증거다. 이런 대통령실의 움직임을 볼 때 내란 관련 기록물이 온전히 관리될지 의문이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은 대통령실 기록물 관리 실태를 점검해야 한다. 국가기록원과 대통령기록관이 기록물 전수조사를 원활히 할 수 있도록 조사 협조를 지시하는 것도 필수적이다.
역사를 제대로 기록해야, 잘못된 과거를 반복하지 않는다. 내란 기록을 보존하고, 이를 꼼꼼히 해석하는 것이 우리 사회에 주어진 의무라는 점을 명심하자.
전진한 알권리연구소장 |
전진한 알권리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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