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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3 (월)

[아침을 열며]계엄 선포 대통령의 기막힌 서류 반송 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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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닷없이 비상계엄을 선포해 한밤중 전 국민을 충격과 공포에 빠뜨리더니, 본인의 탄핵심판 절차가 시작되자 고작 서류 수령을 거부하는 것으로 반격의 시간을 벌고 있다니. 비상계엄을 두고 “나라를 살리려는 비상조치”라고 말하는, 도저히 상식의 기준이 다른 인식에는 더 이상 할 말조차 없지만, 그 대응 방식이 이렇게 비겁하고 치졸할 줄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국회에 군대를 투입해 국회의원을 “끌어내라”고 지시한 대통령이, 이제는 온갖 핑계로 서류를 ‘반사’하고야 말겠다는 그 모습이 극적으로 대비된다.

지난 14일 국회에서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지 일주일이 흘렀다. 광장에 모였던 시민들이 민주주의를 지켜냈다는 안도감과 함께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었던 것은 후속 절차가 순리대로 진행될 것이라는 당연한 기대 때문이었다.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과 수사본부의 수사를 통해 12·3 비상계엄 사태 책임자에 대한 응당한 처벌과 조치가 뒤따르는 수순 말이다.

그러나 탄핵소추안 가결 일주일이 지난 지금 사태의 흐름은 시민들의 기대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 윤 대통령은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와 헌정 질서를 지키려고 했던 것”이라며 스스로에 대한 방어벽을 높이 쌓는 중이다. 대통령 이전에 그는 검사 출신 법률가였다. 향후 법적 다툼에 대한 치밀한 준비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비상계엄 사태를 주도한 장본인이 예상 밖 버티기에 들어가면서 애써 일상을 되찾은 시민들의 불안은 다시 높아지고 있다. 비상계엄 사태의 진실을 규명할 시간이 속절없이 흘러가고, 책임자에 대한 제대로 된 수사가 진행될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다는 의구심이 고개를 들고 있어서다.

윤 대통령은 지난 국회에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이후 본인을 향한 재판과 수사를 최대한 지연시키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그 첫 단계가 바로 관련 서류를 받지 않고 반송시키는 것이다. 그는 헌재의 탄핵심판 관련 서류를 일주일 내내 받지 않았다. 헌재는 지난 16일부터 탄핵심판 접수 통지서 등 각종 서류를 윤 대통령 측에 우편, 인편, 전자 송달 등 여러 방법으로 보냈으나 매번 전달에 실패했다. 관저에 우편으로 보낸 서류는 ‘경호처 수취 거절’로, 대통령실로 보낸 서류는 ‘수취인 부재’로 수령되지 않았다. 헌재는 오는 27일로 예정된 첫 변론준비기일은 일정 변동 없이 진행하겠다는 방침이지만, 지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수사기관 상황도 비슷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지난 16일 윤 대통령 앞으로 보낸 출석요구서도 모두 거부당했다. 서울 한남동 대통령 관저를 관리하는 경호처는 “우리 업무 소관이 아니다”라는 이유로, 대통령비서실은 “대통령의 직무가 정지된 상태에서 출석요구서를 전달하는 것은 비서실 업무가 아니다”라는 이유로 수령을 거부했다.

시간을 끌며 책임을 피하는 것은 법정에 서야 할 개인 그 자신으로는 합리적 선택일지 모르나, 그와 같은 대통령을 둔 국민으로서는 좌절스러운 일이다.

사회의 혼란을 하루빨리 수습하지 못해 국민 전체의 피로도가 극심할 뿐만 아니라 퇴진과 탄핵 반대를 외치는 양극단의 집회가 지속되며 분열의 양상이 이어지고 있다. 여당은 민주주의가 중대하게 훼손된 이 시점에도 정치적 유불리를 따지기에 급급하고 정치, 경제, 외교안보 등 모든 영역에서 국정이 정상화되기를 바라기도 어렵다. 그러는 동안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뜻을 함께했거나, 부당한 지시를 거부하지 못한 이들이 이미 상당수 구속됐다. 이들이 말하는 그날의 정황은 모두 윤 대통령을 향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비상계엄 해제 이후 담화를 통해 “이번 계엄 선포와 관련하여 법적, 정치적 책임 문제를 회피하지 않겠다” “저를 탄핵하든, 수사하든 저는 이에 당당히 맞설 것”이라고 반복해서 말했다. 정말 “국민 여러분에 대한 뜨거운 충정”이란 것이 있다면, 지체 없이 탄핵심판과 수사에 임하는 것으로 스스로 했던 약속을 지켜야 한다. 45년간 잊고 살았던 계엄의 공포를 현실로 소환한 대통령도 모자라 끝내 그 책임마저 회피하는 모습으로 기록되고 싶지 않다면 말이다. 윤 대통령은 임기 내내 특정 세력을 적대화하는 것으로 정권의 동력을 유지해왔다. 그것은 전 정권이었고, 야당이었으며, 때때로 어느 직역의 카르텔이기도 했다. 이제 윤 대통령은 비상계엄이 잘못됐다 말하는 국민들마저 적으로 돌려세울 참인가.

경향신문

이윤주 정책사회부장


이윤주 정책사회부장 runy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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