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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년 뉴욕의 어느 전시장. 겨우 백여 개의 업체가 모인 자리에 방문객은 만 명 남짓. 독일의 IFA나 CeBit과 견줄 수도 없는 작은 전시회였다. 이 소박한 모임이 반세기가 넘는 시간 동안 세계 기술의 흐름을 좌우하는 거대한 물줄기가 되었다. 처음에는 그저 '소비재 전자제품 박람회'에 불과했던 CES는 1978년에야 라스베이거스로 자리를 옮겼고, 그마저도 시카고와 번갈아 가며 열렸다. 이 도시에 완전히 정착한 건 1995년의 일이다.
2025년 1월, CES가 백주년을 맞이한다. 주제는 'Dive In'. 물속으로 뛰어든다는 뜻이다. 기술이라는 깊은 물속으로 우리가 뛰어든다는 의미일 텐데, 솔직히 말하면 우리는 이미 오래전부터 그 물속에서 헤엄치고 있었다. 팬데믹이 지나가고 난 뒤, 기술은 더욱 깊숙이 우리의 일상으로 파고들었다. 작년 CES에는 4000개가 넘는 기업들이 참가했고, 13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방문했다. 그 작은 전시회가 이렇게 거대해질 줄은, 아마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작년 CES에서 게리 샤피로 회장이 "AI의 첫 번째 날"이라고 선언했다면, 이제 우리는 두 번째 날을 맞이하고 있다. 엔비디아의 NeVA 시스템은 이미지를 보고 질문에 답하는 AI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아주르'를, 구글은 '첩 AI'를 내놓는다. 이들은 모두 우리의 일을 돕겠다고 한다. 하지만 때로는 의문이 든다. 우리가 AI를 돕는 게 아닐까. 우리가 만들어내는 수많은 데이터로 AI는 배우고 성장한다. 어쩌면 우리는 AI의 스승이면서 동시에 제자인지도 모른다.
존 디어(John Deere)의 변신은 특히 인상적이다. 농기계 회사였던 그들은 이제 인공지능과 센서를 탑재한 첨단 기업이 되었다. 그들의 기계는 스스로 작물의 상태를 파악하고, 필요한 만큼의 물과 비료를 공급한다. 농부들은 더 이상 밤낮으로 들판을 돌아다닐 필요가 없다. 기계가 알아서 해준다. 농약과 물 사용량은 80%나 줄었다. 존 디어는 더 이상 단순한 농기계 회사가 아니다. 그들은 "농민들을 노동으로부터 자유롭게 해주는 회사"가 되었다.
디지털 헬스케어의 진화도 눈여겨볼 만하다. '원격 의료 스테이션'이라는 게 있다. 프라이빗한 부스에 들어가면 의사와 화상으로 상담할 수 있고, 혈압이나 체온 같은 기본적인 검사도 할 수 있다. 미국의 온메드라는 회사가 만든 이 시스템을 보면서, 나는 카프카의 '시골 의사'를 떠올렸다. 눈보라 치는 밤에 환자를 찾아가던 의사의 모습과, 이제는 스크린 너머로 환자를 만나는 의사의 모습. 둘 다 같은 곳을 향하고 있다. 아픈 이를 돕겠다는 의지 말이다.
한국 기업들의 약진은 특히 눈부시다. CES 2025 혁신상 부문에서 AI 관련 41개 상 중 25개를 한국 기업들이 수상했다. 특히 핀테크와 스포츠 분야에서는 100% 석권이라는 놀라운 성과를 거뒀다. 삼성의 '발리'는 마치 애완동물처럼 집 안을 돌아다니며 우리를 돕는다. 프로젝터도 되고, 집안의 전자제품도 제어한다. 후카시스템의 재활용 로봇 '후카고'는 걷는 것을 도와준다. 우리는 점점 더 많은 로봇과 함께 살게 될 것이다. 그들은 우리의 동반자가 될까, 아니면 우리의 그림자가 될까.
완전 자율적인 무인 로봇 레스토랑 '로웍'도 있다. 주문을 받고, 요리를 하고, 서빙을 하는 모든 과정을 로봇이 한다. 인간의 손길이 전혀 닿지 않는 레스토랑이라니. 맛있을까? 아마도 그럴 것이다. 하지만 음식에는 온기가 필요하다. 요리사의 정성이 담긴 온기 말이다. 로봇은 그것까지 만들어낼 수 있을까.
전시장은 마치 도시처럼 여러 구역으로 나뉜다. LVCC 센트럴은 삼성, LG와 같은 거대 기업들의 영토다. 이들은 각자 다른 전략으로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 삼성이 다양한 기기들을 연결하는 플랫폼 전략을 구사한다면, LG는 혁신적인 디스플레이 기술에 집중하고 있다. 파나소닉은 에너지와 지구 온난화 문제에 집중하고, 소니는 TV 제조사에서 콘텐츠 기업으로 탈바꿈했다. 심지어 보쉬는 우리가 알던 전동공구 회사가 아닌, CCTV 솔루션을 제공하는 보안 기업으로 거듭나고 있다.
LVCC 웨스트는 모빌리티의 영역이다. 더 이상 미래의 콘셉트카가 아닌, 실제로 구현 가능한 기술들이 즐비하다. 2009년 현대자동차의 참가로 시작된 모빌리티 분야는 이제 CES의 핵심 영역이 되었다. 유레카 파크는 마치 올림픽 선수촌 같다. 각국의 스타트업들이 자신들의 기술을 세계에 선보이기 위해 모여든다. 특히 한국관은 태극기로 가득 채워져 있어 마치 작은 코리아타운을 연상케 한다. 이스라엘 기업들의 치밀한 전략도 인상적이다. 그들은 제품 대신 노트북 하나만 들고 와서 미리 약속된 바이어들과 미팅을 진행한다.
게이밍 분야의 변화도 흥미롭다. 소니의 새로운 VR 헤드셋은 단순한 게임기가 아니다. 공간 콘텐츠를 만드는 도구다. 엔지니어들이 이것을 쓰고 가상의 공간에서 제품을 만들고 수정한다. 현실과 가상의 경계가 희미해지고 있다. 클라우드 게이밍은 이제 고가의 장비 없이도 최신 게임을 즐길 수 있게 해준다. 아마존의 '루나'나 구글의 '스테디아' 같은 서비스들. 게임이 더 이상 특별한 취미가 아닌, 일상적인 문화가 되어가는 것이다.
새로운 카테고리의 등장도 주목할 만하다. 뷰티, 패션, 펫 테크놀로지가 새롭게 추가됐다. 이는 기술과 비기술의 경계가 점차 희미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심지어 AARP(미국 은퇴자협회)도 큰 부스를 차려놓고 실버 세대를 위한 첨단 기술들을 선보인다. 기술은 이제 특정 분야의 전유물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 삶의 모든 영역으로 스며들고 있다.
CTA측은 CES 2025에서 선보일 기술들이 기후 변화, 정신 건강, 생산성 같은 우리 시대의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 거라고 말한다. 그 말이 맞길 바란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경계해야 한다. 기술이 우리를 돕는 것인지, 아니면 우리를 지배하는 것인지를.
1967년부터 시작된 이 긴 여정이 어디로 향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기술은 결국 우리가 만들어낸 것이다. 우리의 꿈과 욕망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그것이 좋든 나쁘든, 그것은 이제 우리의 일부가 되었다. 마치 물고기가 아가미 없이는 살 수 없는 것처럼, 우리도 이제 기술 없이는 살기 힘들어졌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이 기술이라는 바다에서 더 나은 방향으로 헤엄치는 법을 배우는 것뿐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우리의 인간성을 잃지 않는 것. AI의 둘째 날, 우리는 과연 무엇을 보게 될까.
글 : 손요한(russia@platum.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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