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 정국에 원화 값이 하락하면서 원자재를 수입하는 중소기업에 비상이 걸렸다. 전문가들은 환 위험 관리 능력이 없는 중소기업이 큰 타격을 입을 거라고 분석한다. 사진은 지난 26일 인천 연수구 인천신항 컨테이너 터미널 모습. 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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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 정국 원화값 하락으로 원자재를 수입하는 중소기업에 비상이 걸렸다. 외화로 대금을 치르는 수입품 가격이 오른 탓이다. 중소기업은 환율 변동에 따른 위험 관리 능력이 떨어져 더욱 치명적이란 지적이 나온다.
29일 중소기업계에 따르면 해외에서 원자재를 수입하는 중소기업 사이에서 높아진 환율 부담을 버티기 힘들단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경기도 포천시에서 목제가구업체를 운영하는 이모(46) 씨는“중국과 동남아에서 원목·합판 등 목재를 수입하는데, 환율이 10~20원만 올라도 전체 결제 대금은 수천만 원씩 오른다”라고 말했다. 이씨는“매달 필요한 만큼 물량을 떼왔다. 환율이 안정될 때까지 무작정 수입을 중단할 수도 없다”라며 “부동산 경기가 안 좋아 매출이 줄고 있었는데, 올해엔 적자를 면하기 힘들 것 같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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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환율에 비용 부담 커진 중소기업
지난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정치적 혼란이 이어지면서 원화값은 급격하게 떨어졌다. 지난 27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달러 당 원화값은 주간 거래 종가(오후 3시 30분) 기준 1467.5원으로 마감하며 주간 종가 기준 올해 최저치를 기록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해외에서 원자재 등을 수입한 국내 기업 수는 21만7615개, 수입 규모는 6358억 달러(약 938조 4408억원)에 달한다.
김경진 기자 |
환율 변동에 따른 중소기업 피해는 관련 조사에서도 확인된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지난 10~13일 전국 513개 수출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조사 대상 기업 57.9%는 원화값 하락이 경영환경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응답했다. 국내 정치 상황의 불확실성으로 직·간접적 손해를 입었는지 묻는 항목엔 조사 대상 기업의 26.3%가 손해를 입었다고 응답했다. 구체적인 피해 유형은 ‘계약 지연·취소 등(47.4%)' ‘해외 문의 전화 증가(23.7%)' ‘수·발주 지연·취소 등(23%)' 순이었다.
경기도에서 검사·측정 설비를 생산하는 A씨는 중기중앙회에 “비상계엄 사태 전날인 2일 송장을 받아 원자재 결제 대금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하루 사이에 환율이 크게 올라 비용을 더 부담하게 됐다”라고 말했다. 경북 칠곡군에서 제조업체를 운영하는 B씨는“원화 값이 떨어지는 추세를 보이자 해외 거래 업체가 계약을 차일피일 미루면서 계약 조건을 유리하게 바꾸려고 하고 있다”라며 “계약을 마무리 짓기 위해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황”이라고 말했다.
중소기업중앙회는 지난 19일 수출 중소기업 긴급 현황조사 결과를 발표하며 국내 중소기업들이 원화 값 하락과 정치적 불안으로 피해를 보고 있다고 밝혔다.사진은 지난 25일 서울 종각역 인근 한 건물의 폐업한 사무실에서 관계자들이 폐기물을 처리하는 모습.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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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 위험, 중기에 더 치명적”
원화 값 하락에 따른 피해는 대기업보다 중소기업에서 더 클 수밖에 없다. 중소기업은 환 위험 관리 능력이 떨어질뿐더러 재무적 여건도 취약하기 때문이다. 중소벤처기업연구원이 지난 9월 발표한 ‘중소기업 환율 리크스 분석 연구’에 따르면 달러 대비 원화값이 1% 떨어지면 중소기업 매출은 약 0.36%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중기중앙회 조사에선 국내 수출기업의 49.3%가 환 위험을 별도로 관리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송영철 중소벤처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중소기업은 환 위험에 대한 이해가 낮고 전담 인력이 부족해 대기업보다 위험에 크게 노출될 가능성이 높다”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원화 약세가 당분간 이어질 거라고 전망한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미국의 강 달러와 한국의 정치적 불안이 겹치며 원화 값이 크게 낮아졌다”라며 “환율을 방어하기 위해 외환시장에 아무리 개입하더라도 정치적 리더십이 안정되기 전까진 원화 값이 안정되기 힘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오삼권 기자 oh.samg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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