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공연예술계 돌아보니
공연 티켓 판매액 사상 최대 전망 속
대중음악 ‘원톱’… 장르 전체 소폭 상승
전도연·조승우 등 무대行 ‘매진 파워’
임윤찬 ‘클래식계 노벨상’ 수상 영예
무대난입·좌석 변경·연출자 하차 등
토스카·투란도트, 부실 운영에 ‘씁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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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예술경영지원센터의 공연예술통합전산망(KOPIS)에 따르면, 지난 25일 기준 올해 공연시장 표 판매액은 약 1조5302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1조2690억원보다 2612억원 많았다. 대중음악 부문(5827억원→8390억원) 판매액이 껑충 뛴 덕분이다. 대중음악을 제외한 연극·뮤지컬·클래식·국악·무용 등 장르 전체만 보면 지난해 6863억원에서 올해 6912억원으로 49억원 정도 늘었다.
이 중 연극은 ‘톱스타’ 전도연과 조승우, 황정민을 비롯해 인기 TV드라마나 영화를 통해 대중에게 낯익은 배우들이 무대에 오르면서 지난해보다 판매액이 15.9%(약 99억원)나 많아졌다. 클래식 등 다른 장르 역시 스타들의 관객 동원력이 돋보였다. 하지만 예술장르마다 특정 스타에게만 관객이 쏠리는 현상은 공연예술 생태계가 취약하다는 방증이기도 해 마냥 반길 일만은 아니란 지적도 있다.
임윤찬이 한국인 피아니스트 최초로 세계적 권위의 그라모폰상을 받고, 공연계 거목인 김민기 전 ‘학전’ 대표가 영면하는 등 희비가 엇갈리거나 대형 오페라를 중심으로 탈이 난 장면도 많았다.
왼쪽부터 연극 ‘벚꽃동산’의 전도연, 그라모폰상을 받은 피아니스트 임윤찬, 연극 ‘햄릿’ 조승우, 오페라 ‘토스카’ 안젤라 게오르규(오른쪽), 발레 ‘라 바야데르’ 김기민과 박세은. LG아트센터·그라모폰·예술의전당·세종문화회관·국립발레단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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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계, ‘별들의 귀환’ 화제
연극계는 대중적 인지도와 인기를 자랑하는 스타 배우들의 무대 진출이 두드러진 해였다. 먼저 전도연이 지난 6월 LG아트센터가 제작한 안톤 체호프 원작, 사이먼 스톤 연출의 연극 ‘벚꽃동산’에 출연해 주목을 받았다. 27년 만에 연극 무대로 복귀한 전도연은 ‘칸의 여왕’답게 빼어난 연기력으로 무대를 장악했다. 이어 천만 관객 영화 출연작이 여러 편인 황정민이 7월 개막한 셰익스피어 연극 ‘맥베스’(연출 양정웅)에서 맥베스 역을 맡아 명품 연기를 보여줬다. 10월에는 조승우가 데뷔 후 24년 만에 처음 연극 무대에 섰다. 셰익스피어의 ‘햄릿’(연출 신유청)에서 햄릿을 연기했는데 그야말로 명불허전이었다. 조승우는 햄릿 자체가 돼 단숨에 관객들을 사로잡았다. 이들 톱스타가 출연하자 기대감에 들뜬 관객들이 몰리면서 대극장 객석은 일찌감치 매진 사례가 잇따랐다.
문소리(연극 ‘사운드 인사이드’)와 박성웅·문정희(‘랑데부’), 안은진(‘사일런트 스카이’), 김상경·이희준(‘대학살의 신)’, 유승호(‘엔젤스 인 아메리카’), 이동희(‘타인의 삶’) 등도 오랜만이거나 처음 연극 무대에 올라 존재감을 발산했다.
안타까운 소식도 이어졌다. ‘한국 연극의 대부’로 불린 임영웅(88) 극단 산울림 대표가 5월 노환으로 별세했다. 7월에는 서울 대학로에서 33년 동안 소극장 ‘학전’을 이끌며 가수 김광석, 윤도현, 배우 설경구, 김윤석 등 쟁쟁한 후배 예술인들을 키워낸 김민기가 암 투병 끝에 73세를 일기로 세상과 작별했다.
◆클래식계, 임윤찬 열풍 여전
2022년 반 클라이번 국제 콩쿠르 역대 최연소 우승 이후 시작된 스타 피아니스트 임윤찬 열풍이 올해 더욱 확산됐다. ‘임윤찬의 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갓 스무 살이 된 청년은 세계 클래식 음악계 주요 음반상을 휩쓸었다. 임윤찬은 첫 녹음 음반인 ‘쇼팽: 에튀드’로 10월 열린 영국 그라모폰 클래식 뮤직 시상식에서 피아노 부문과 젊은 예술가 부문 2관왕에 올랐다. 그라모폰 상을 한국 피아니스트가 받은 건 최초다. 이어 같은 음반으로 11월 프랑스에서 열린 올해의 디아파종 황금상 시상식에서 젊은 음악가 부문을 수상하고, 12월 애플 뮤직 클래시컬 ‘올해 최고 인기 앨범’에 선정되는 영예를 안았다.
임윤찬은 국내외를 오가며 거장 지휘자가 이끄는 명문 교향악단과의 협연이든, 오롯이 홀로 책임지는 독주든 한층 성숙해진 음악을 들려줬다. 찬란한 그의 무대를 보기 위해 관객들의 표 구하기 경쟁이 치열했다. 내년 3월 말 개막하는 2025 통영국제음악제도 표 예매가 시작되자 ‘임윤찬 피아노 리사이틀’은 58초 만에 매진됐다. 임윤찬이 협연하는 ‘통영페스티벌오케스트라I’ 공연 표도 순식간에 동났다. 또 다른 스타 피아니스트 조성진 역시 올해 세계 최고 명문 악단 베를린필하모닉 상주음악가로 선정되는 등 한국 클래식 위상을 드높였다. 여성 음악가들도 낭보를 보내왔다. 현대음악 작곡가 진은숙이 1월 ‘에른스트 폰 지멘스 음악상’을 받았다. ‘클래식 음악계 노벨상’으로 불리는 이 상을 아시아인이 수상한 건 처음이다. 김은선이 4월에 베를린 필하모닉을 지휘한 것도 아시아 여성 지휘자로선 최초다.
◆오페라 기대작, 잡음 잇따라
푸치니 서거 100주년을 맞아 오페라 애호가는 물론 입문자들의 기대를 모은 푸치니의 명작들이 하반기에 잇따라 개막했지만 모두 개운치 않은 뒷맛을 남겼다. 먼저 서울시오페라단이 9월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선보인 ‘토스카’에선 토스카 역을 맡은 세계적 소프라노 안젤라 게오르규가 무대에 난입해 공연을 멈춰 세운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게오르규는 카바라도시 역의 테너 김재형이 관객의 앙코르 요청에 화답해 아리아를 다시 부른 것에 불만을 나타낸 것이었지만 공연 도중 그런 건 부적절한 행위란 지적이 많았다. 10월 송파구 KSPO돔(옛 올림픽체조경기장)에서 열린 ‘아레나 디 베로나 페스티벌’(이하 베로나 축제)의 대작 오페라 ‘투란도트’는 이탈리아 현지 무대를 그대로 옮겨와 감탄을 자아냈다. 다만 첫날 공연 당시 주변 다른 공연장의 음악 소리가 들려오고 일부 관객이 좌석을 옮기거나 공연 중 촬영을 하는 등 주최 측의 미숙한 운영이 도마 위에 올랐다. 강남구 코엑스에서 공연 중인 ‘어게인 2024 투란도트’는 가장 비싼 표가 100만원에 달하지만 운영면에서 여러 문제점을 노출했다. 저명 연출가 다비데 리베르모어와 지휘자 파올로 카리야니가 “더는 못 참겠다”며 개막 전후 하차하고, 사전 안내가 부족한 채 좌석 배치가 변경되는 등 어수선한 상황이 잇따랐다. 무대 전면 기둥 세트와 단차 없는 좌석으로 관람 피해를 봤다는 관객들 사이에선 환불·보상 요구와 법적 대응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순수 무용 경연 프로그램 인기
무용계는 순수 무용을 조명한 TV프로그램 엠넷 ‘스테이지 파이터’ 덕분에 어느 때보다 대중의 관심을 받았다. 한국무용·현대무용·발레 장르 남자 무용수들이 경쟁한 이 프로그램은 9~11월 방영돼 인기를 끌었고, 1위를 거머쥔 최호종(전 국립무용단 부수석, 현 SAL 부예술감독)은 스타로 떠올랐다.
발레 애호가들은 세계적 발레 스타인 박세은과 김기민, 차세대 스타인 전민철의 무대를 볼 수 있었던 것만으로 기억에 남을 해다. 각각 파리오페라발레단과 마린스키발레단의 수석무용수인 박세은과 김기민은 지난달 초 국립발레단의 ‘라 바야데르’ 공연에서 14년 만에 호흡을 맞추며 환상적인 춤과 연기로 큰 감동을 안겼다. 내년 마린스키발레단 입단이 확정된 전민철은 앞서 유니버설발레단의 ‘라 바야데르’에서 전막 무대 주연으로 데뷔해 가능성을 보여줬다.
이강은 선임기자 kele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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