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거리도 국제규정에 미달
국토부 “콘크리트 형태, 여수에도 있다”
30일 전남 무안군 무안국제공항 활주로 인근의 방위각 시설(로컬라이저)이 전날 제주항공 여객기와의 충돌 여파로 파손돼 있다. 방위각 시설은 공항의 활주로 진입을 돕는 역할을 하는 일종의 안테나로, 흙으로 된 둔덕 상부에 있는 콘크리트 기초 위에 안테나가 서 있는 구조다. /신현종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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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명 중 179명의 목숨을 앗아가면서 1997년 229명이 숨진 대한항공 괌 추락 사고에 이어 27년만의 대형 항공 참사로 기록된 무안공항 참사의 피해규모가 이토록 커진 데에는 다양한 원인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단단한 콘크리트 구조의 로컬라이저(착륙 유도 안전시설)를 무시할 수 없다는 분석이 나온다.
국토교통부는 여수공항 등을 예로 들며 구조물처럼 둔덕에 설치된 형태도 있다며 정형화된 로컬라이저 형태는 없다는 식으로 해명했지만, 미국연방항공청 기준에 따르면 활주로 너머에 설치하는 로컬라이저 안테나를 위해 부러지지 않는 탑(tower)을 쌓아선 안 되는 것으로 파악됐다.
미국연방항공청(FAA)에 따르면 항행안전구역에서 접근지시등과 로컬라이저 안테나를 위해 부러지지 않는 탑(tower)을 쌓아선 안 된다. 부러지지 않는 탑은 항공기에 심각한 위험으로 작용하기에 로컬라이저 안테나를 위한 시설을 설치하더라도 견고한 콘크리트가 아닌 부러지거나 저항이 작은 구조물을 설치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미 국방부 UFC(통합시설기준)는 “(로컬라이즈 등) 항법보조시설(NAVAID)을 포함한 활주로 근처에 위치한 모든 물체는 항공기 운항에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며 “항법보조시설이 특정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 특정 위치에 있어야 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그 위치를 제한할 필요성이 있음을 인정하고 있으며 이 시설은 필요시 활주로 등 항공기의 비행을 안전하게 보장하기 위해 정의된 구역에 위치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또 활주로 주변 보호구역에 위치한 항법보조시설은 “항공기가 충돌할 경우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파손 가능한(frangible) 구조로 지지되어야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활주로 인근에 단단한 구조물이 있어선 안 된다는 것이다.
로컬라이저 둔덕의 위치 또한 활주로로부터 충분한 안전거리를 확보하지 못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국제민간항공기구(ICAO) 부칙 10조에서도 “로컬라이저는 활주로 시단으로부터 약 300m 지점에 설치하여아 한다”고 적혀 있다. 미국 연방항공국(FAA)도 공항에 설치되는 로컬라이저에 대해 활주로 시단과 로컬라이저 안테나까지의 최적 거리가 305m여야 하며, 최소 거리는 91.4m에서 183m까지를 기준으로 제시한다. 300m 정도의 거리가 권장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고가 발생한 무안국제공항의 로컬라이저는 활주로 끝에서 약 251m에 불과한 것으로 조사됐다.
무안공항의 로컬라이저 위치는 국내 다른 주요 공항과 비교해서도 유독 짧다는 분석이 나온다. 본지가 국내 주요 공항들의 활주로 끝과 로컬라이저 사이의 거리를 비교한 결과, 인천공항은 활주로 4개에 설치된 로컬라이저와 활주로 끝 간 거리가 290~300m 정도, 김포공항은 310여m로 분석됐다. 제주와 김해, 청주, 대구, 양양 등 그 외 국제공항도 모두 300m 이상으로 기록됐지만 무안공항만은 유독 안전거리가 짧았다.
윤석준 세종대 기계항공우주과 전 교수는 “로컬라이저 때문에 사고가 발생했다고 할 순 없다”면서도 “활주로가 더 길었다면 미끄러지면서 속도가 보다 줄어들 수도 있었을 테니 피해가 커지게 했다고는 볼 수 있다”고 했다. 또 다른 전문가는 “로컬라이저 구조물이 콘크리트로 된 것이 (참사를 키운) 문제인 건 맞는다”고 했다.
한편 본인을 ‘한국 무안공항에 착륙한 항공기(보잉737-800기)와 같은 기체를 모는 기장’이라고 밝힌 우크라이나 파일럿 유튜버 데니스 다비도브(Denys Davydov)도 무안공항 참사의 원인으로 로컬라이저 구조를 언급했다. 그는 “기체 상황 관련 요소도 파악해야 하지만 기체가 로컬라이저가 마련된 콘크리트 벽에 충돌해 참극이 발생한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며 “(사고 당시) 영상이 많이 흔들렸지만 날개 하단이 깔끔한 걸 보면 플랩(flap·날개 뒤에 설치된, 중력과 같은 방향의 힘을 유도하는 장치)이 펼쳐지지 않은 걸로 보인다”고 했다.
이어 “그 상태로 비행기가 활주로를 미끄러지다가 로컬라이저 안테나와 충돌한 걸로 보이는데, 이 안테나가 이렇게 설치된 영문을 모르겠다”고도 했다. 공항 활주로 끝(threshold•한계점)에 위치한 로컬라이저는 통상 지상(ground level)에 안테나를 설치하는데 무안공항처럼 견고한 형태로 짓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해당 영상은 게시 9시간 만에 조회수 130만회를 넘겼다.
[무안=박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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