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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급날에 허무하게 떠나”... 깨비시장 사고로 10년지기 동료 잃은 상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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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31일 오후 3시 53분쯤 서울 양천구 목동 깨비시장에서 70대 남성이 모는 승용차가 돌진해 1명이 사망하고 12명이 부상을 당했다./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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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급날 이렇게 허무하게 떠날 줄은 몰랐다”

1일 서울 양천구 목동깨비시장에서 만난 과일 가게 업주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는 지난 31일 발생한 차량 돌진 사고로 숨진 40대 남성 A씨가 근무하던 가게의 주인이다. 사고 당일은 A씨의 월급날이었다고 한다. 그는 “어제 낮에 (A씨에게) 월급을 주려다 손님이 몰려 조금 있다 줘야겠다고 생각했는데 그것도 못 주고...”라며 말끝을 흐렸다.

A씨는 약 10년 전부터 깨비시장 과일 가게에서 일했다. 가게는 오전 9시에 문을 열지만, 매일 아침 상하차 작업까지 수행하느라 오전 6시에 일어나 7시면 집을 나섰다고 한다. 그렇게 12시간 넘게 일하고 오후 9시 30분쯤 집에 돌아오면 소주 몇 잔 마시다 유튜브를 보며 잠드는 게 유일한 낙이었다.

공휴일도 없이 일하며 일주일에 딱 1번, 수요일마다 쉬었다. 올해는 새해 첫 날이 수요일이라 몇 년 만에 1월 1일에 푹 쉬어본다며 좋아했다고 한다.

시장 상인들이 기억하는 A씨는 “시장에서 가장 성실하던 사람”이다. 상인 김모(52)씨는 “손님 한 명이라도 더 잡으려 시장이 다 울릴 정도로 열심히 ‘과일 사라’고 외쳤는데, 그 목소리가 아직도 생생하다”고 했다. 정육점 업주 서모(57)씨는 “그 사람 너무 일만 하다 갔다”며 “아침 일찍 출근해 밤 늦게 퇴근하며 가게 주인처럼 성실하게 일했다”고 했다. 시장을 찾은 단골들은 “매일 보던 사람이 이젠 없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날 강서구의 한 대학병원에 그의 빈소가 차려졌다. 갑작스러운 사고에 제대로 된 영정사진도 없었다. 가족들은 급하게 A씨가 메신저 프로필로 사용하던 사진을 캡쳐해 영정사진으로 사용했다. A씨의 남동생(40)은 “가족이 다같이 살았지만 형은 일하느라 바빠서 얼굴 제대로 보기 어려웠다”며 “얼굴 보고 제대로 대화를 나눴던 게 한 달도 더 된 것 같아 많이 후회가 된다”고 했다.

지난 31일 오후 3시 53분쯤 서울 양천구 목동깨비시장에 김모(74)씨가 운전하던 검은색 에쿠스 차량이 행인과 상점 등을 덮쳐 13명이 사상했다. 김씨가 운전하던 검은색 에쿠스 차량은 깨비시장 후문 사거리에서 앞서가던 버스를 앞지르다 가속해 시장 내부로 돌진, 약 40m를 질주했다.

운전자 김씨는 치매 진단을 받은 전력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경찰 조사에서 김씨는 “앞서 가던 차량을 피해 가속하던 중 시장 가판대 앞에서 브레이크를 밟았는데 이후론 잘 기억이 안 난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확보한 CC(폐쇄회로)TV 영상을 토대로 정확한 사고 원인을 조사 중이다.

[강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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