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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7 (화)

겨울 문경새재에서 나라를 생각한다 [윤평중의 지천하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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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조선일보

일러스트=유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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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새재 겨울바람이 거세다. 지금 시국처럼 찬 바람이 온몸을 파고든다. 친구들과의 기차 여행에서도 마음 한구석 시름이 깊었다. 이심전심 나라 걱정이었다.

새재 황톳길은 청량하다. 시냇물 소리, 바람 소리와 동행한 오르막 산길이 평탄했다. 휠체어에 앉은 동료를 함께 밀며 내려오는 젊은이들 모습이 정겨웠다.

문경새재는 조선 시대 영남대로였다. 부산 동래에서 한양으로 올라가는 최단 거리여서 교통과 국방 요충지다. 지금 황톳길은 옛길을 펴고 넓혀 산책로를 만들었다. 제1관문 주흘관에서 제2관문 조곡관을 거쳐 제3관문 조령관까지 편도 6.5km로 조곡관까진 전동차도 운행한다.

새재 걷기는 산길 곳곳 퇴계, 다산 등 선비들 시비(詩碑)를 만나는 기쁨이 있다. 사람들이 쌓은 돌탑과 관리들이 묵었던 조령원 터, 주막과 옛길박물관도 있다. 신임 경상 감사와 전임 감사가 인수인계한 교귀정(交龜亭)이 우람한 소나무와 함께 우리를 맞는다.

문경새재 겨울 정취에 빠져 걷고 있는 나를 갑자기 섬광 같은 깨달음이 강타했다. 새재 오기 전엔 관문들이 건설된 정확한 시점을 몰랐다. 그 순간 문경새재 걷기가 한국사 최악의 국난 임진왜란을 돌아보는 나만의 성찰적 여행으로 승화되기 시작했다.

1592년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의 1만8500명 선봉대는 가파른 문경새재에 이르러 주춤한다. 삼도순변사 신립의 조선군은 험준한 새재 지형을 살려 승부를 내야 했다. 제1진과 제2진을 지금의 주흘관과 조곡관 자리인 높은 언덕에 배치해 화살로 적을 공격하자고 부장 김여물과 이일이 진언했다. 험악한 산을 올라야 하는 왜군에겐 악몽의 시나리오다.

그러나 신립은 이 방책을 거부했다. 국망(國亡) 위기를 부른 치명적 오판이었다. 지금도 새재엔 2진 터[二陣址]가 있다. 신립은 대신 충주 달천평야(탄금대)에 배수진을 쳤다가 8000명 전군(全軍)이 전멸한다. 탄금대 참패 닷새 후 한양이 불타고 살육과 기아가 온 땅을 휩쓴다.

해발고도 244m, 제1관문 주흘관 앞에 막상 직접 서 보니 1000m 넘는 조령산과 주흘산이 좌우에 버틴 천혜의 요새다. 웬만한 침략군은 넘보지 못할 웅대한 성채다. 조곡관도 그렇거니와 해발 650m인 조령관은 산 정상 높이에 있어 공략이 거의 불가능하다. 문외한인 내 눈에도 하늘을 날아가는 새도 넘기 어려운 군사 요충지다.

하지만 세 관문 축성 연대를 확인한 나는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새재 첫 관문은 전쟁 발발 2년 후(1594년)에야 지어졌다.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웅장한 주홀관·조곡관·조령관은 숙종 34~37년(1708~1711년)에 완성됐다. 결국 1592년 왜군이 새재를 급습했을 땐 세 관문 자체가 없었다!

이렇게 훌륭한 전략 요충지를 버려 두어 망국 위기를 키운 국가 지도부가 통탄스러웠다. 조선 왕조 국가 통치술의 부재와 지배층의 무능과 분열이 뼈아팠다. 전 국토가 잿더미가 된 후에야 관문을 만든 것은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다. 역사는 반복된다. 현재진행형인 총체적 국가 위기로 흔들리는 우리에게 문경새재가 웅변하는 건 무엇일까?

판교에서 문경까진 KTX로 1시간 반이다. 아름다운 문경새재가 한반도 운명을 가른 역사의 교훈으로 과객의 얼어붙은 마음을 통타한다. 21세기 세계 그레이트 게임에선 한 발 잘못 디디면 국제 미아가 된다. 나라가 망하면 우리네 삶도 부서진다. “분열된 집은 바로 설 수 없다.” 국가가 위태로울수록 모든 나랏일의 열쇠는 민심을 모으는 데 있다.

한겨울 문경새재 찬 바람을 뚫고 걸으면서 희망의 새해를 기원한다. 을사년 새해엔 우리가 피땀으로 쌓은 나라의 안녕과 소중한 일상을 되찾아야 한다. 동 트기 직전 새벽이 가장 어둡다. 대한민국은 흔들릴지언정 결코 난파하지 않을 것이다.

[윤평중·한신대 철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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