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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3 (금)

“6살 동네 유일한 아이마저…팔순여행 일가족 9명 참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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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무안 제주항공 참사 발생 다음날인 30일 낮 전남 무안군 무안종합스포츠파크에 마련된 희생자 합동분향소에서 조문객들이 줄지어 있다. 김영원 기자 forev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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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전체가 초상집이지. 가족들이 다 그렇게 사고로 숨졌으니….”



30일 낮 12시30분께 찾은 전남 영광군 군남면의 한 마을은 적막만이 가득했다. 이 마을은 ‘무안 제주항공 참사’로 숨진 일가족 9명 중 4명이 살았던 곳이다. 이들은 내년 1월 팔순을 앞둔 ㄱ씨와 함께 타이 방콕으로 여행을 갔다가 참변을 당했다. 마을 초입에 있는 ㄱ씨 집에 사는 강아지 ‘푸딩’은 연신 집과 마을회관을 오가며 마을로 들어오는 차량과 버스를 바라봤다. 마을회관을 오가는 주민들은 푸딩에게 “너 이제 어떡하니” 하며 위로를 전하기도 했다. ㄱ씨 등 영광에 살던 4명을 제외한 나머지 5명은 광주시와 경기도 등에 거주했던 것으로 파악됐다. ㄱ씨는 탑승자 중 최고령이다.



ㄱ씨는 이 마을에서 이장, 영농협회장 등을 지내는 등 마을 사람들과 교류가 많았다고 한다. ㄱ씨 사고 소식에 주민들은 마을회관에 모여 무안 제주항공 참사 소식을 알리는 뉴스에 귀를 기울였다. 마을 주민 한부열(70)씨는 기자와 만나 “어제 뉴스를 보고 혹시 그 형님이 탄 비행기인가 걱정했는데, 그 비행기였다. 회관에서 자면서 뉴스를 계속 봤다. 여행 가기 전에 ‘갔다 오겠다’는 말을 했는데 이렇게 사고를 당할 줄 몰랐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주민들은 ㄱ씨를 동네 주민이 어려워하는 일을 몸소 나서 도왔던 어르신으로 기억했다. 한씨는 “내가 군 제대하고 나서 객지 생활을 한 뒤 2019년부터 다시 이 마을에 왔다. 귀농할 때 가장 도움을 많이 준 사람이 그 형님”이라며 “포도 농사를 했는데 ‘거름은 어떤 것이 좋다’, ‘품종은 뭐가 좋다’ 같은 것을 다 알려줬다”고 말했다. 올해 ㄱ씨는 지난해까지 하던 양봉 일을 그만두고 여생을 즐기려 했다고 한다. 한씨는 “지난 마을 운동회 때 ‘이제 일 그만두고 앞으론 좀 쉬겠다’고 했는데…”라며 안타까워했다.



이 마을 주민 ㄴ(69)씨는 “ㄱ씨가 아직 지역 농협 감사 일도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주민들이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일이 있으면 도움을 줬다. (이번에 희생된) 언니(ㄱ씨의 아내)도 겸손하게 일을 많이 도와줬고, 부지런했다”고 했다.



ㄱ씨의 딸 ㄷ씨도 정보화 마을로 지정된 이곳에서 사무장 일을 하며 노인 애로사항을 확인하고 일일이 도와줬다고 한다. ㄴ씨는 “노인들이 어려워하는 은행 업무나 관공서에 가서 일을 봐야 할 때 많이 도와줬다”며 “한글을 모르는 노인들을 위해서는 프린트해서 도와주기도 했다”고 말했다.



한씨는 “ㄷ씨가 마을 노인들이 휴대폰을 할 줄 모르면 다 도와주곤 했어. 그러니 사람들이 얼마나 좋아했겠어”라고 했다. 피해자 중에는 내년에 초등학교에 입학할 ㄷ씨의 딸 ㄹ양도 있었다. 이 마을에 사는 주민은 ㄹ양에 대해 “이 동네 유일한 아이였다. 그래서 마을 주민들의 귀여움을 독차지했다”며 “집 강아지와 마을을 다니는 게 눈에 선하다”고 했다.



영광군은 지역 내에 ㄱ씨 등의 합동분향소를 설치할 계획이다. 장세일 영광군수는 “무안에 합동분향소가 차려지겠지만 이곳(영광)에도 별도로 분향소를 설치하도록 지시했다”며 “장례 등 절차는 유족들과 협의를 거쳐 진행할 계획”이라고 했다.



이승욱 기자 seugwook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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