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선정 올해의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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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가 현재 도울 수 있는가’
한 작가의 노벨상 강연 질문
국회 탄핵안 표결 때도 인용
작품 통해 인간의 연약함 폭로
독자에게 ‘고통의 감각’ 전달
문학의 본질 ‘연결’ 깨닫게 해
2024년 한강 작가(사진)의 노벨 문학상 수상은 한국인 최초이자 아시아 여성 최초라는 점에서 그 자체로 한국 문학사의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서고, 인간 삶의 연약함을 드러낸 강렬한 시적 산문”이라는 스웨덴 한림원의 평가처럼, 폭력과 그에 대항하는 인간 존재의 깊은 내면을 탐구해온 그의 수상은 문학의 본질적 의미와 그 힘을 다시 한번 되새기는 계기가 됐다.
여기에 더해 한 작가의 수상은 ‘계엄’이라는 지극히 퇴행적인 한국 정치의 사건과 맞물리면서, 인간의 존엄성과 기억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하나의 구심점이자 상징으로 자리매김하게 됐다.
2024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한강 작가가 지난 10일(현지시간) 스웨덴 스톡홀름 콘서트홀에서 열린 시상식에서 노벨 문학상 메달과 증서를 받은 뒤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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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일 스웨덴 한림원에서 개최된 한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 기념강연은 깊은 울림을 주는 동시에 계엄에 상처 입은 국민들에게 더없는 위로로 다가왔다. ‘빛과 실’이라는 제목의 이 강연에서 한 작가는 <채식주의자> <바람이 분다, 가라> <희랍어 시간> 등으로 이어지는 자신의 문학 여정을 소개했다. 그는 특히 1980년 5·18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룬 <소년이 온다>의 집필 과정을 자세히 설명했는데, 강연의 정점이라고 할 수 있는 이 대목에서 그는 10여차례 광주를 언급한다. 그는 도청 옆 YWCA에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야학교사 박용준의 일기를 읽으며 ‘현재가 과거를 도울 수 있는가? 산 자가 죽은 자를 구할 수 있는가?’라는 자신의 오래된 질문이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로 바뀌었다고 고백한다.
그의 강연은 일주일 후인 14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인용된다.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2차 탄핵안 제안 설명을 하면서 “12·3 비상계엄 내란 사태를 겪으며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그렇다’라고 답하고 싶다”고 말했다. 계엄군에 맞섰던 광주의 기억 덕분에 44년 후 시민들도 민주주의를 지킬 용기를 낼 수 있었다는 의미에서다. 한 작가는 12일 스웨덴에서 열린 ‘낭독의 밤’에서 시민들의 용기 배경에는 <소년이 온다>가 있었던 게 아니냐는 질문에 “과장된 평가”라고 선을 그었다. 그러나 한 작가의 노벨상 수상과 그의 작품들이 계엄의 폭력성과 시대착오성을 부각하며 시민들에게 깊은 위로를 전한 것은 분명하다.
<소년이 온다>를 비롯해 한 작가의 작품을 읽은 독자들 상당수는 고통을 토로한다. 노벨상 시상식에서 한 작가를 소개한 스웨덴의 엘렌 맛손 작가의 표현처럼 그의 작품은 “묘사할 수 없는 잔인함, 돌이킬 수 없는 상실”에 대해 말하며 “‘우리는 죽은 이들, 납치된 이들, 사라진 이들과 어떻게 관계를 맺을 수 있을 것인가’ ‘그들을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그들에게 우리는 무엇을 빚졌는가’ 같은 것들”을 질문하기 때문이다. 특히 소설을 쓸 때 모든 감각의 세부들을 사용한다는 작가의 말처럼 생생하게 표현된 강렬한 감각들은 독자들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진다. 그렇기에 독자는 고통스럽지만, 그의 언어를 따라가며 타인의 고통에 가닿게 되고 우리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잃어버린 감각을 조금이나마 되찾게 된다.
한 작가가 노벨 문학상 만찬 연설에서 전한 메시지도 문학의 본질적 의미가 ‘연결’임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한다. “언어는 지구에 거주하는 인간과 모든 생명체를 일인칭시점에서 상상해야 한다고 끈질기게 말합니다. 언어는 우리를 이어줍니다. 이러한 언어를 다루는 문학은 필연적으로 체온 같은 것을 지니게 됩니다. 마치 문학이 필연적으로 삶을 파괴하는 모든 행동의 반대편에 서 있는 것처럼요. 저는 문학에 주어지는 이 상의 의미를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여기서 함께, 폭력에 맞서면서요.”
그의 작품에서 인간은 상처받고 부서지기 쉬우며 연약한 존재로 형상화된다. 그러면서도 기어이 한 걸음 더 나아가는 존재로도 그려진다. 서로에 대한 위로와 연대의 마음이 절실한 세밑, 그의 문학은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며 한 걸음 더 다가서도록 계속 독자들을 이끌 것이다.
박송이 기자 ps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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