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효진 기자(hjkim@pressian.com)]
독일 총선을 두 달 앞두고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독일 극우 정당 독일을위한대안(AfD) 지지를 연일 표명하며 독일 정치권에서 비판이 터져 나왔다. 머스크가 유럽 정치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에 독일 뿐 아니라 영국, 이탈리아도 경계심을 표출해 왔다.
독일 도이체벨레(DW) 방송, 영국 일간 <가디언>, <로이터> 통신 등을 보면 30일(이하 현지시간)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신년사를 통해 머스크를 직접 거론하진 않은 채 "독일이 어디로 갈 것인가는 시민들이 결정하는 것"이라며 "소셜미디어(SNS) 채널 소유자에 의해 결정되지 않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머스크는 지난 2022년 소셜미디어 엑스(X·옛 트위터)의 소유주가 됐다. 숄츠 총리는 "토론에서 극단적 의견이 더 많은 관심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는 경우가 종종 있"지만 독일 사회의 운명은 "합리적이고 품위 있는 다수에게 달려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머스크는 앞서 20일 X를 통해 "AfD만이 독일을 구할 수 있다"고 밝힌 데 이어 지난 28일 독일 <벨트암손탁> 기고를 통해 "전통적 정당은 독일에서 실패"했고 "그들의 정책이 경제 침체, 사회 불안, 국가 정체성 침식"을 가져왔다며 AfD가 독일의 "마지막 희망의 불꽃"이라고 주장했다. 이 신문의 기고 편집자인 에바 마리 코겔은 머스크의 기고가 실린 뒤 사임했다.
머스크는 해당 기고에서 "AfD를 극우로 묘사하는 건 분명히 잘못됐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머스크의 주장이 무색하게도 올해 1월 AfD 소속 정치인들이 이민자 추방 모의에 연계됐다는 폭로가 나오며 독일 전역에서 1백만 명 이상이 AfD 해체를 요구하는 시위에 나섰다. 독일 정보 당국은 2021년부터 AfD를 극단주의 의심 단체로 분류해왔다. 지난 20일 5명이 죽고 200명 이상이 다친 독일 마그데부르크 성탄 시장 차량 돌진 뒤 추모를 빌미로 열린 AfD 집회에서 알리스 바이델 AfD 공동대표는 거짓 주장을 펴며 이민자 혐오를 선동했고 이 집회엔 네오나치(신나치주의자)가 합류해 금지된 나치 선전 구호를 외치기도 했다고 현지 언론이 보도한 바 있다.
30일 독일 정부 대변인은 머스크가 독일 국내 정치에 영향을 미치려 한다며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크리스티아네 호프만 대변인은 "일론 머스크가 (독일) 연방 선거에 영향을 미치려 하고 있다는 것은 사실"이라고 밝혔다. 그는 머스크 또한 표현의 자유를 누릴 권리는 있다며 "의견의 자유엔 가장 말도 안 되는 말 또한 포함된다"고 꼬집었다.
로베르트 하벡 독일 부총리 또한 신년사에서 머스크의 유럽 극우 지지가 "논리적이고 체계적"이라며 "머스크는 유럽을 약화시키고 있는 이들을 강화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약한 유럽은 규제가 그들의 권력을 부당하게 제한한다고 여기는 이들에게는 이익이 된다"고 덧붙였다.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기독민주연합(CDU·CSU) 대표도 머스크의 AfD 지지 관련 현지 언론에 "서구 민주주의 역사상 우방국의 선거운동에 개입한 비견할 만한 사례를 떠올릴 수 없다"고 비판했다. 중도 우파 기독민주연합은 현재 지지율 1위 정당으로 메르츠 대표는 차기 총리로 유력하게 거론된다.
지난달 자유민주당 소속 크리스티안 린드너 독일 재무장관 해임 뒤 '신호등 연정(사회민주당, 자유민주당, 녹색당)'이 붕괴해 독일은 내년 2월23일 조기 총선을 앞두고 있다. 정치전문지 <폴리티코> 유럽판을 보면 지난 28일 기준 기독민주연합(CDU·CSU)이 지지율 30%로 1위를 달리고 있는 가운데 AfD는 지지율 19%로 지난해 6월 숄츠 총리의 사회민주당 지지율을 앞선 뒤 1년 반 동안 꾸준히 2위를 점하고 있다. 28일 기준 사회민주당은 지지율 17% 3위에 그쳤고 녹색당은 지지율 14%로 뒤를 이었다.
머스크가 유럽 정치에 영향력을 행사하려 한다는 경계심은 영국과 이탈리아에서도 표출됐다.
영국의 경우 이달 중순 극우 정당 영국개혁당(Reform UK) 대표 나이젤 패라지가 머스크가 영국개혁당에 기부하는 것에 대해 협상 중이라고 주장하며 파장이 일었다. 미국인인 머스크는 영국 유권자가 아니므로 영국 정당에 개인 자격으로 기부할 순 없지만 머스크 소유 회사의 영국 자회사를 통한 우회 기부가 시도될 가능성에 대한 추측이 나왔다. 이에 따라 이달 영국 정치권은 영국 등록 회사를 통한 외국인의 정치 자금 기부 규모를 제한해야 한다는 논쟁으로 들썩였다.
머스크는 지난 8월 영국에서 극우 주도 허위 정보 기반 반이민 폭동이 일었을 때도 극우 주장을 반영하는 선동적 게시글을 올렸고 "내전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해 영국 정부로부터 "그러한 발언은 정당화될 수 없다"는 비판을 받은 바 있다.
지난달 세르조 마타렐라 이탈리아 대통령은 머스크에 이탈리아 내정에 간섭해선 안 된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지난 10월 로마 법원은 망명 신청자를 알바니아에 구금하려는 이탈리아 정부 계획을 무산시키고 해당 이주민을 이탈리아로 데려와야 한다고 판결했는데 머스크는 관련해 X를 통해 "이 판사들은 물러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마타렐라 대통령은 "이탈리아는 위대한 민주주의 국가이며 스스로를 돌보는 방법을 알고 있다"며 "특히 우방이자 동맹국 정부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을 사람이라면 그 나라(이탈리아)의 주권을 존중해야 하며 지시를 내리는 일을 자처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머스크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에 의해 작은 정부 자문기구인 정부효율부(DOGE) 수장으로 내정됐지만 트럼프 당선자와의 친분을 바탕으로 차기 정부 인사부터 의회 예산안 처리 과정까지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어 미국 내에서도 "공동 대통령"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달 16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메디슨스퀘어가든에서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오른쪽)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왼쪽)와 함께 종합격투기(UFC 309) 경기를 관람했다. ⓒAFP=연합뉴스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김효진 기자(hjkim@pressian.com)]
- Copyrights ©PRESSian.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