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0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씨제이토월극장에서 열린 뮤지컬 ‘시라노’가 주연배우 최재림의 컨디션 난조로 1막 뒤 공연을 중단한 뒤 공연 취소 공지를 극장 로비 화면에 알리고 있다. 이정국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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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연이어 일어난 뮤지컬 공연 중단 사태로 인해 뮤지컬 업계가 뒤숭숭하다. 일부 주연급 배우의 겹치기 문제가 사건의 원인 아니냐는 지적이 일자, 스타 캐스팅 의존도가 높은 한국 뮤지컬 업계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지난달 20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씨제이(CJ) 토월극장에서 열린 ‘시라노’ 공연은 주연 최재림의 컨디션 난조로 1막 뒤 공연이 중단됐다. 1막 뒤 공연 관계자가 무대에 올라 공연 취소 결정을 알리며 “티켓 가격의 110%를 환불하겠다”고 밝혔다. 당시 최재림은 특별한 건강 이상이 아닌 일시적인 컨디션 난조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5일부터 그는 정상적으로 공연에 투입돼 열연을 펼치고 있다.
단순 해프닝으로 끝날 수 있었던 사건은 이틀 뒤인 22일, 서울 구로구 디큐브 링크아트센터에서 열린 ‘광화문연가’ 공연 도중 차지연이 과호흡 증상으로 공연을 중단하는 사태가 벌어지면서 일파만파로 커졌다. 역시 주최 쪽은 “티켓 가격의 110%를 환불하겠다”고 했지만 뮤지컬 팬들의 불만은 켜져만 갔다.
공연 중단이 잇달아 발생하자 일시적 사고가 아닌 시스템의 문제라는 비판이 일었다. 특히 배우의 겹치기 출연 문제가 지적됐다. 최재림은 ‘킹키부츠’와 ‘시카고’에 동시 출연하는 상태였고, ‘지킬 앤 하이드’에도 곧 투입될 예정이었다. 차지연도 ‘명성황후’ 부산 공연을 앞두고 있었다.
전문가들은 스타 캐스팅에 목매는 한국 뮤지컬 업계 상황이 이번 사태를 불러왔다고 지적한다. 뮤지컬 평론가 지혜원 경희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이번 사태는 특정 배우의 컨디션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가 불러왔다”며 “티켓 파워를 가진 소수의 스타 캐스팅에만 집중하는 한국 뮤지컬업계 관행이 근본적 원인”이라고 꼬집었다. 값비싼 티켓을 팔기 위해서 스타에 의존할 수밖에 없고 이것이 겹치기 출연 문제를 불러온다는 것이다.
뮤지컬 ‘시라노’. 오른쪽이 시라노 역의 최재림. 알지(RG)컴퍼니, 씨제이 이엔엠(CJ ENM)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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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의 배우에게만 캐스팅이 집중되니 한명에게만 문제가 생겨도 충격파는 커진다. ‘킹키부츠’의 경우 서경수가 발목 부상으로 하차하면서 ‘롤라’를 번갈아 연기하는 최재림 등 남은 배우들의 출연에 부하가 걸리기 시작했다. 이것들이 연쇄 반응을 일으켜 다른 공연에까지 영향을 끼쳤다고 업계는 보고 있다.
지역 공연 때마다 기획사가 각기 다르다는 것도 또 다른 원인으로 지목된다. 인구가 많지 않은 지역 공연은 일정이 유동적인 경우가 많은데, 하루라도 공연이 추가되면 다른 공연에도 영향을 주게 된다. 지역마다 기획사가 다르다 보니 이를 조율하기 어려운 것이다.
결국 피해는 관객의 몫으로 돌아온다. 공연이 중단될 경우 관객은 환불 외에는 보상받을 방법이 없다. 적어도 공연 중단을 막기 위한 ‘시스템’ 고민을 시작해야 한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미국 브로드웨이 등 뮤지컬 선진국에서 도입한 ‘언더스터디’(대체배우제)가 대안으로 제시된다. 출연 배우와 똑같이 연습하는 대체배우는 실제 공연에서 배우에게 문제가 생기면 대신 투입된다.
지혜원 교수는 “한국 뮤지컬은 멀티캐스팅으로만 운영하기 때문에 공연 중간 배우에게 이상이 생기면 중단할 수밖에 없다”며 “언더스터디 제도를 도입해 적어도 공연이 중간에 끊기는 것은 막도록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정국 기자 jg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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