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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4 (토)

입대한 아들…그날 밤 아비는 뜬눈으로 지새웠다 [뉴스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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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지난 12월4일 새벽,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지 몇 시간 뒤 계엄군 병력이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건물 바깥에서 움직이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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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훈 | 사회정책부장



12월3일 밤 아비는 아들에게 장문의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비상계엄으로 출동하더라도 절대 총부리를 시민에게 겨눠서는 안 된다고 했다. 상관의 지시를 거역하기 힘들면 시늉만 내라고 했다. 동시에 의대 증원 갈등으로 수업을 듣지 않는 아들에게 입대를 권유한 자신을 원망했다. 다음날 아침 아들이 ‘출동하지 않고, 일찍 재워서 답을 못했다’는 메시지를 보낼 때까지 아비는 아내와 뜬눈으로 한밤을 보냈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 같은 비상계엄으로 연말 송년회는 대거 취소됐다. 일부 성사된 송년회에선 저마다 그날 밤의 경험을 얘기했다. 필자가 끼어든 자리에서도 대부분 내란죄 피의자 윤석열 대통령을 욕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그러다 한 친구는 “탄핵을 남발해 국가 기능을 마비시키고 있는 이재명에게 본때를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고 대들었다. 몇몇의 반발에도 같은 말을 하며 맞서다, 잠자코 있던 한 친구의 비명에 꼬리를 내렸다. “우리 아들이 장갑차 옆에서 총 들고 대기하고 있었다. 네가 내 아들에게 그 얘길 할 수 있어?”



윤 대통령은 국방의 의무를 위해 입대한 청년들이 생명을 무릅쓰도록 한 것도 모자라 민간인을 위협해야 하는 상황으로 내몰았다. 그러고도 “국민들에게 거대 야당의 반국가적 패악을 알려 이를 멈추도록 경고하는 것”이라고 했다. 청년들과 그 부모에게도 같은 말을 할 수 있을까? 마치 사람을 죽일 것처럼 패고도 안 죽었으니 ‘경고성 살인’, 남의 물건을 훔치려다 실패하자 ‘경고성 절도’라고 주장하는 것과 같다.



더욱이 자신의 행동이 정당하다며 “탄핵하든 수사하든 당당히 맞설 것”이라고 했지만, 정작 국회에서 탄핵안이 가결되고 헌법재판소가 탄핵심판 접수통지서를 수차례 보냈지만 이를 거부하는 등 비겁한 태도로 일관했다. 또 수사가 진행되면서 “총을 쏴서라도 끌어내”, “2번, 3번 계엄령을 선포하면 된다” 등을 얘기한 정황도 드러나고 있다.



돌아보면 윤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일찌감치 자격 없음을 보여줬다. 2021년 대선 경선에서 손바닥에 ‘임금 왕’ 자를 적은 채 티브이(TV) 토론에 나섰다. 그것도 수차례였다.



당선 뒤엔 민주주의에 대한 몰이해를 보여줬다. 비상계엄을 선언하며 상대를 “패악질을 일삼은 망국의 원흉, 반국가 세력”으로 치부했으니 대화 상대도 아니었던 셈이다. 또 기회 있을 때마다 강조한 ‘연금·노동·교육·의료개혁’ 등 4대 개혁 역시 과거 정부는 못 했지만 뚝딱 해치울 수 있다고 강조했다. 17년 만에 연금개혁을, 역대 정부가 9전9패한 의료개혁 등을 해내겠다고 했다. 하지만 수시로 강조하던 목소리와는 달리 개혁의 근거는 빈약했고 추진 계획은 충실하지 않았고 절차적 정당성마저 갖추지 못했다. 하나같이 지지부진한 결과를 내놓고선, 반대하는 의대생, 의사, 야당 등을 반국가 세력으로, 처단 대상으로 만들었다.



정치사상가 알렉시 드 토크빌은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민주주의 장점을 평가했다. “자유로운 민주정치는 능란한 기술을 가진 전제정치처럼 그 모든 계획을 말쑥하게 성취하지는 못한다. 민주정치는 결과가 나타나기도 전에 계획들을 포기하거나 위태로운 결과를 낳을지도 모를 경우 그 계획들을 내버려두는 일이 흔하다. 그러나 민주정치는 어떤 형태의 절대정치보다 많은 결실을 거둔다. 잘하는 것이 많지는 않아도 더 많은 일을 해내는 것이다. 민주정치는 국민에게 가장 능란한 정부를 제공해주지는 않지만 가장 유능한 정부라도 흔히 이루어놓을 수 없는 것을 만들어낸다.” 민주주의가 전제정치보다 의사결정이 더디고 실행에 이르기까지 어려움이 있지만, 시민사회나 시장 등 다른 분야에서 자율성이 보장돼 더 큰 성과를 이룰 수 있다는 설명이다. 윤 대통령은 이런 민주주의 작동 원리에 무지한 채 독재를 꿈꿨다.



12·3 내란사태는 1987년 이후 공고화되던 민주주의가 순식간에 허물어질 수도 있음을 보여줬다. 동시에 시민들이 나서 손을 맞잡을 때 복원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 시민들이 서울 여의도에 달려 나와 장갑차에 맞서고, ‘윤석열 퇴진’을 외치는 전봉준 투쟁단 행렬에 노동자와 여성, 성소수자, 장애인 등이 함께하며 민주주의 회복을 넘어 한발 내딛게 했다.



취소된 송년회 상당수는 신년회로 미뤄졌다. 새해에 보는 자리엔 그날 밤의 공포와 분노 대신 민주주의를 곧추세운 시민들의 연대와 이를 강화하는 방안으로 이야기꽃이 피길 기원한다.



ljh924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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