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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5 (일)

[카페 2030] 꼿꼿했던 육사 출신 멘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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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자, 허심탄회 쇠주(소주) 한 잔 꺾어 마실 시간을 가졌으면 합니다.”

육군사관학교 출신 예비역 ‘어른’이 여러 번 식사 제안을 해왔다. 한국 방위산업의 초석을 다진 인물들을 조명하는 ‘K방산 신화를 만든 사람들’ 인터뷰 기사를 계기로 만난 분이다. 약속이 몇 차례 미뤄졌고 최근 다시 연락이 왔는데, 요즘 그의 심정이 감히 짐작도 가지 않았다.

지난가을 경기도에 있는 자택에서 만났던 그는 팔순 넘은 나이가 믿기지 않게 3시간 가까운 인터뷰 내내 꼿꼿한 자세를 유지했다. 그의 답변에는 육사 출신으로 나라를 위해, 군(軍)을 위해 방위산업에 헌신했다는 자부심이 담겨 있었다. 반듯한 그 앞에서 거북목에 구부정한 자세로 질문하던 모습이 부끄러워 몇 번이나 자세를 고쳐 앉았다. 몸을 곧게 하는 올바른 자세뿐 아니라 삶을 대하는 자세도 배웠던 시간이었다.

육사 출신 군인을 처음 만난 건 의외의 순간이었다. 기자가 되기 전 공군 장교로 단기 복무했는데 육해공군이 함께 근무하는 부대로 발령이 났다. 부대 지휘관은 육군 장성이라 육군 부대에 가까웠고, 사무실을 같이 쓰는 직속상관도 육군 소령이었다. 군대 동기들은 “공군보다 육군 출신 상관은 더 힘들 것”이라고 위로 아닌 위로를 했다.

육사 출신 사수는 ‘FM(Field Manual·야전교범)’의 표본 같은 인물이었다. 부서에서 가장 먼저 출근하고, 일주일에 한 번 부대 안 이발소에서 이발하고, 술은 입에도 대지 않았다. 대충 닦아놓은 커피포트 탁자가 깨끗해진 사실을 뒤늦게 발견했을 때 얼굴이 화끈거렸다. FM이었지만 그 누구보다 정이 넘치고 미소가 많은 사람이었다. 위관장교, 부사관, 병사 모두 자연스레 그를 따랐다.

진로에 대한 고민도 가끔 나눴다. ‘의대 위탁 교육 신청’ 관련 공문이 온 날이었다. 현역 장교 중 선발해 의대 위탁 교육을 보내고 이후 군의관으로 복무하는 과정이었다. 딱히 정해놓은 진로가 없던 터라 ‘한번 지원해볼까’ 생각했다. 교육을 마치고 군의관으로 몇 년 더 의무 복무해야 하지만 이후 전역해서 병원에서 일하면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나’만 생각한 짧은 생각이었다. 화는 내지 않았지만 단호하고 굳은 표정의 그를 처음 봤다. ‘국가가 그 제도를 왜 운영하는지, 군의관으로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정말로 의사가 되고 싶은지 진지하게 고민해보라’는 조언이었다. 언제 떠올려도 부끄러운 순간이다. 그처럼 ‘위국헌신 군인본분’의 삶은 살지 못하더라도 공동체 안에서 이기적인 인간은 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함께 보낸 시간은 짧지만 지금도 인생의 멘토를 만났다고 생각한다.

최근 육사 출신이 논란의 중심에 서면서 특정 개인뿐 아니라 육사라는 조직에 대한 비판도 쏟아졌다. 12·3 비상계엄 사태 후폭풍으로 떨어진 별(장군 계급장)의 개수를 분석하기도 한다. 잘잘못은 당연히 가려야 한다. 다만, 평범한 다수는 최전방을 비롯해 각자 제자리에서 묵묵히 임무를 다하고 있지만 군이라는 특성 때문에 목소리도 내지 못한다. 멘토가 돼준 그들처럼 이 시간도 꼿꼿하게 이겨낼 중심을 잡고 있을 거라 믿는다.

[이정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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