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이철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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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이 또 비상대책위원회 체제가 됐다. 2017년 박근혜 대통령 탄핵 이후 보수 정당은 비상이 일상이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에는 야당이었지만 리더십은 굳건했다. 이회창·박근혜가 대통령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강력한 힘의 원천이었다. 그때는 보수가 주류였고 상수였다.
1990년 3당 합당으로 ‘보수 동맹’이 만들어진 이래 2017년까지 한국 정치 지형은 ‘민주자유당 대 反민주자유당’ ,‘한나라당 대 反한나라당’ , ‘새누리당 대 反새누리당’으로 보수 우위 시대였다. 보수는 단독 집권이 가능했지만 민주당은 ‘DJP연합’(1997년 대선), ‘노무현·정몽준 단일화’(2002년 대선), ‘문재인·안철수 단일화’(2012년 대선)가 불가피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으로 ‘보수 동맹’이 해체된 지금은 ‘민주당 대 反민주당’ 시대다. ‘오세훈·안철수 단일화’(2021년 서울 시장 선거), ‘윤석열·안철수 단일화’(2022년 대선)는 정치 지형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이제 보수 정당은 (과거 민주당처럼) 연합·단일화·연대 없이는 집권이 불가능하다.
‘무조건 1번 찍는’ 절대 지지층은 30% 정도로 늘어난 반면, ‘무조건 2번 찍는’ 절대 지지층은 20% 정도로 쪼그라들었다. 과거에는 보수 절대 지지층이 30%, 민주당 절대 지지층이 20% 정도였다. 2017년 탄핵 국면에서 중도 보수가 이탈하면서 역전됐다. ‘중도’는 ‘스윙보터’를 의미한다. 결선투표제가 없는 한국 선거에서 ①3번 후보가 대선에서 승리하는 것은 어렵다 ②제3당이 1당이나 2당이 될 수는 없다 ③그러나 모든 선거 승패는 중도 ‘스윙보터’가 결정한다는 사실은 검증됐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 체제는 과거 김영삼·이회창·박근혜 시절의 ‘제왕적 총재(대표)’보다 구심력이 더 강하다. 반면 국민의힘은 ‘권력 공백’ 상태다. 전당대회 전에는 친윤·반윤, 전당대회 후에는 친윤·친한, 비상계엄 후에는 친한·반한으로 대립했지만 탄핵 이후에는 친윤과 친한 모두 빠르게 해체되면서 구심력이 소멸했다.
‘비대위’ 구성을 둘러싼 논쟁은 리더십·노선·지지기반의 3중 위기에 빠진 국민의힘이 얼마나 취약한 상황인가를 잘 보여준다. ‘관리형 비대위’냐 ‘혁신 비대위’냐 치열한 논쟁 한 번 없이 싱겁게 ‘관리형 비대위’로 결론 났다. 힘의 균형추가 완전히 무너진 결과다. 비상계엄 선포·내란죄 수사·대통령 탄핵 상황인데도 ‘별일 아니라는 듯’ 담담한 분위기다. 집단적 ‘인지 부조화’다.
국민의힘은 자유한국당으로 돌아갔다. ‘관리형 비대위’는 친윤·탄핵반대파·영남 중심·원내 중진이 주도했다. ‘혁신 비대위’는 친한·탄핵찬성파·수도권·원외 소장파가 주도했다. 전자는 2017년 대선·2018년 지방선거·2020년 총선 노선으로 3연속 참패를 당했다. 지도부는 홍준표·황교안이다. 후자는 2021년 4·7 재보선·2022년 대선·2022년 지방선거 노선으로 3연속 승리했다. 지도부는 김종인·이준석이다. 전자 노선은 ‘자유 우파 결집론’이고, 후자 노선은 ‘중도 외연 확장론’이다. 전자는 보수 유튜브가 지지하고, 후자는 레거시 미디어가 지지한다. 전자는 ‘당심’ 우선이고, 후자는 ‘민심’ 우선이다.
지금 보수의 생체 리듬은 최악이다. 운동선수도 생체 리듬이 좋을 때는 펄펄 날지만 좋지 않을 때는 최악의 컨디션으로 경기를 망친다. 검사 시절 정치적 생체 리듬이 최상이었던 윤석열은 대통령이 된 후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했다. 비상계엄은 윤석열 대통령의 망상이 빚은 최악의 사태다. 여진은 계속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1일 한남동 관저 앞에 모인 탄핵 반대 시위대에 보낸 편지에서 " (...) 저는 실시간 생중계 유튜브를 통해 여러분께서 애쓰시는 모습을 보고 있습니다. (...) 나라 안팎의 주권 침탈 세력과 반국가 세력의 준동으로 지금 대한민국이 위험합니다. 저는 여러분과 함께 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끝까지 싸울 것입니다. 국가나 당이 주인이 아니라 국민 한 분 한 분이 주인인 자유민주주의는 반드시 승리합니다. 우리 더 힘을 냅시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메시지다. 그의 말대로 ‘자유민주주의의 승리를 위해’ 국민 한 분 한 분이 윤석열을 대통령으로 만들어줬는데도 하지 못한 일을 ‘탄핵소추당한 내란 수괴 피의자’로 싸워서 하겠다니 말이 되나. 윤석열 대통령 스스로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 실력도, 책임감도, 부끄러움도 없다는 실토다.
정치적으로 세상을 지배하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①자기 생각에 맞춰 현실을 바꿀 (물리적) 힘이 있거나(독재) ②(그게 불가능하다면) 현실에 맞춰 자기 생각을 바꾸거나(선거)다. 윤 대통령과 국민의힘은 둘 다 실패했다. 독재가 불가능한 시대이니 윤 대통령과 국민의힘이 세상을 어떻게 보느냐보다 세상이 윤 대통령과 국민의힘을 어떻게 보느냐가 훨씬 중요하다.
‘보수 동맹’이 해체되기 전에는 보수 정당 안에는 보수파와 개혁파가 적절한 세력 균형을 이루고 있었다. 2007년 한나라당 대선 경선에서 박근혜는 보수파, 이명박은 개혁파를 상징했다. 박근혜는 보수(이념)·영남(지역)·노년(세대)·부자(계층)의 지지를 받는 ‘올드 보수’의 대표주자였고, 이명박은 중도·수도권·40대·중산층의 지지를 받는 ‘뉴 보수’의 대표였다. 경선 승자는 이명박이었다. ‘믿을 수 있는’ 박근혜보다 ‘(좀 더 확실히) 이길 수 있는’ 이명박을 선택했다.
현재 보수는 정치 싸움의 네 가지 전선, 즉 기득권 대 혁신, 과거 대 미래, 낡음 대 새로움, 분열 대 통합에서 패배할 수밖에 없는 기득권·과거·낡음·분열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뒤를 보고 걸으면 빨리 갈 수도, 멀리 갈 수도, 똑바로 갈 수도 없다. 지금의 싸움은 좌우가 아니라 앞(혁신·미래·새로움)·뒤(기득권·과거·낡음)의 싸움이다. 단언컨대 중도와 젊은 층 지지 없이 대선 승리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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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민 정치컨설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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