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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6 (월)

불편한 거울 앞에 선 2025년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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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래텀

ⓒA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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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at Kind Of American Are You?(당신의 어떤 미국인입니까?)"

불편하다. '시빌 워: 분열의 시대영화(Civil War, 2024)'라는 영화를 보는 내내 따라다니는 감정이다. 그것은 영화의 완성도나 연출, 배우의 연기력 때문이 아니다. 이 불편함은 스크린 속 가상 미국과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이 너무나 많이 닮아있기 때문에 생겨난다.

"누구 편이냐?"
한 사람의 생사를 가르는 질문. 영화는 이 질문이 지배하는 미국의 디스토피아를 그린다. 그런데 이상하다. 왜 이토록 현실감 있게 다가오는 걸까. 지난해 12월 3일, 계엄령 선포 시도와 대통령 탄핵이 있었다. 한달 뒤인 1월 3일, 대통령 관저 앞에서는 체포영장 집행을 둘러싼 소동이 벌어졌다. 우리는 지금 영화의 한 장면 같은 현실을 살아가고 있다.

영화는 물 한 모금을 요구하는 시민들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그들 앞에 경찰은 방패를 든다. 그 순간을 카메라에 담는 리의 모습은, 지금 우리 시대의 수많은 언론인들의 모습과 겹쳐진다. 그들조차 노란조끼가 없으면 폭력의 대상이 된다.

분열은 서서히 온다고 영화는 말한다. 처음에는 말과 말이 부딪힌다. 다음에는 주먹이 오간다. 마지막에는 총성이 울린다. 우리는 지금 이 과정의 어디쯤에 서 있는 걸까. 말과 말이 부딪히는 순간, 그것은 이미 총성을 향한 첫 걸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 건 너무 비관적인 걸까.

영화 속 대통령은 헌법을 무력화하고 FBI를 해체한다. 처음에는 너무 극단적인 상상력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떤가. 계엄령 선포를 시도하고, 군인과 국민이 충돌하는 현실. 할리우드의 과장된 상상력이 더는 과장되게 느껴지지 않는 시대를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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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섬뜩한 것은 영화 속 인물들이 보여주는 광기가 더는 낯설지 않다는 점이다. 제시 플레먼스가 연기하는 빨간 안경의 사내가 서툰 영어를 구사하는 홍콩 출신 토니를 향해 방아쇠를 당기는 순간, 우리는 우리 사회의 혐오와 차별을 떠올리게 된다. 분열된 사회는 늘 약자를 먼저 공격한다. 우리 사회의 소수자들을 향한 혐오 발언들, 이주민들을 향한 차별적 시선들, 그것은 영화 속 총성만큼이나 폭력적이다.

달러가 휴지가 되고 시민들이 캐나다 돈을 만지작거리는 장면도 단순한 상상력이 아니다. 경제적 불안이 사회 분열을 가속화하는 것은 어느 시대나 마찬가지다. 빵을 구하러 나선 이들이 총을 드는 순간, 우리는 불평등과 양극화가 얼마나 위험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지 깨닫게 된다.

와그너 모라가 연기하는 조엘과 스티븐 헨더슨이 연기하는 새미의 관계는 이 시대의 비극을 더욱 선명하게 보여준다. 전쟁은 그런 것이다. 누군가의 죽음이 다른 이의 삶이 되는 것. 우리 사회의 갈등도 이미 너무 많은 희생을 만들어내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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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는 깨지기 쉽다. 영화는 그 취약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유리처럼 투명하고 아름답지만, 한 번 금이 가면 끝없이 갈라지는 것. 그것이 민주주의의 본질일지도 모른다.

'시빌 워'는 그저 평범한 디스토피아 영화일 수 있다. 하지만 2024년 1월의 대한민국에서, 이 영화는 불편한 현실이 되었다. 영화 속 미국의 모습이 더는 먼 나라의 이야기로 느껴지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의 현재이자, 어쩌면 가까운 미래일지도 모른다.

'시빌 워'가 들이댄 거울에 비친 모습이 불편하다면, 그것은 우리가 이미 그 거울이 비추는 미래를 향해 걸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단순한 영화 리뷰가 될 수 없다. 우리의 현실이 영화의 디스토피아를 너무 빨리 따라잡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금 이 순간, 영화가 경고하는 그 갈림길에 서 있는지도 모른다. 더 이상의 분열을 막으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리와 제시가 마지막까지 서로를 지켰듯이, 우리도 서로를 지켜야 한다. 진영의 논리가 인간의 온기를 이길 수는 없다. "누구 편이냐?"는 질문에 "인간의 편"이라고 답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이 불편한 영화가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이자 답이다.


글 : 손요한(russia@platum.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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