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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7 (화)

천하의 펠로시, 마침내 10cm 하이힐 벗다… “아, 세월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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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공식 석상서 10cm 하이힐 즐겨 신어

2018년 8시간 넘게 필리버스터 화제

고관절 골절 수술 이후 플랫 슈즈 신고 등장

조선일보

미국 연방 의회가 개원한 지난 3일 하늘색 단화를 신은 낸시 펠로시 전 하원 의장이 부축을 받고 있다(왼쪽). 평소 하이힐을 즐겨 신는 펠로시가 낙상 여파로 단화를 택하자 “어색하다”는 반응이 나왔다. 오른쪽 사진은 2022년 한 행사에서 펠로시가 굽 높은 구두를 신은 모습. /EPA 연합뉴스·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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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119대 의회가 공식 개원한 3일, 정가에선 낸시 펠로시(85) 전 연방 하원 의장의 신발이 화제가 됐다. 평소 즐겨 신던 하이힐 구두가 아니라, 굽이 없는 하늘색 단화를 신고 부축을 받으며 등장했기 때문이다.

펠로시는 최근까지도 80대 나이가 무색할 정도의 꼿꼿한 자세로, 굽 높이가 4인치(약 10㎝)나 되는 하이힐을 신고 다녔다. 하이힐은 미국 최초의 여성 연방 하원 의장이자, 미국 여성 정치인의 상징인 그녀의 강인함과 결단력을 보여주는 도구였다.

그러나 펠로시는 지난달 룩셈부르크 출장 도중 하이힐을 신고 계단에서 넘어져 고관절 골절상을 입으면서, 이날 하이힐을 포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사고 당시 독일로 이동해 고관절 치환 수술을 받았다. 워싱턴포스트(WP)는 “누구나 하이힐을 포기하는 날이 오는데 마침내 펠로시에게도 그 순간이 왔다”고 했다.

지난 11월 하원 의원 선거에서 20선(選) 고지에 오른 그는 이날 수술 후 처음 의회 의사당에 복귀한 자리였다. 하원 의장 선출을 위해 의원들이 모였을 때 동료들에게 큰 박수를 받았다. 하지만 이런 중요한 자리에서 펠로시가 단화를 신은 것을 놓고 “어딘가 어색해 보인다”는 말이 나왔다. 펠로시는 지난달 계단에서 넘어진 날, 현장에 있던 마이클 매콜 공화당 하원 의원은 펠로시가 넘어지고 나서도 단체 사진을 찍기 위해 일어나 한동안 버틴 점을 언급하며 “그녀는 높은 힐을 아주 좋아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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낸시 펠로시 하원의원(캘리포니아주)이 지난 2024년 8월 21일 미국 시카고에서 열린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연설하기 위해 무대에 오르고 있다. /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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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하원 의원에 처음 당선된 펠로시는 2007년 최초의 여성 하원 의장에 올랐을 때까지만 해도, 주로 고전적인 펌프스(굽이 낮은 구두)를 즐겨 신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재임 시기(2017~2021년)와 두 번째 하원 의장(2019~2023년) 재직 시기엔 4인치 이상의 스틸레토 힐(가늘고 뾰족한 굽)을 자주 착용하면서 트럼프 정부에 반대하는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표현하는 데 활용해왔다.

고령의 나이에도 하이힐을 신고 바쁘게 뛰어다니는 모습은 워싱턴의 대표적인 ‘미스터리’로도 꼽혔다. 특히 2018년 민주당 하원 원내대표 시절 4인치 하이힐을 신고 무려 8시간 7분 동안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 연설을 이어가 동료 의원들의 놀라움을 자아냈다.

실제 하이힐은 정형외과 의사들에겐 ‘악마의 신발’로 불릴 정도로 건강에 좋지 않다. 하이힐을 신으면 중심을 잡기 위해 몸의 근육들이 긴장하고, 체중의 90%가량이 발 앞쪽으로 쏠린다. 발과 발목 관절에 무리를 줘 엄지발가락이 휘는 무지 외반증, 발가락으로 가는 신경이 눌려 두꺼워지는 지간 신경종, 발가락이 구부러지는 갈퀴족 변형 등 다양한 질환이 나타날 수 있다(한승환 강남세브란스병원 정형외과 교수).

고령의 나이에 하이힐을 신으면 낙상 위험도 커진다. 하이힐은 기본적으로 보행을 불안정하게 하는데, 근력과 반사신경이 떨어진 상태에선 낙상으로 인한 골절 등 치명적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다.

펠로시에게 “어떻게 힐을 신고 그렇게 다닐 수 있느냐”고 물어봤다는 시카고 트리뷴의 한 기자는 “펠로시가 하이힐을 신으며 종아리 근육과 힘줄이 짧아져 이제는 플랫 슈즈를 신는 것이 (오히려) 불편하다고 말한다”고 전했다. WP는 이날 “하원 최고 전략가인 펠로시에게 하이힐은 필수품이었다”며 “(펠로시가) 마치 바비 인형과 같은 굽은 발을 갖고 있는 것 같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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낸시 펠로시 전 하원의장이 8시간 넘게 필리버스터를 한 2018년 당시 신고 있던 4인치(약 10cm) 하이힐. /X(옛 트위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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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로시의 하이힐은 다양한 색을 망라했고, 그 높이는 민주 진영에서 그녀가 갖는 권위와 권력을 상징하기도 했다. 호불호가 갈리는 캐릭터지만 80대 중반에 접어든 나이에도 여전히 자타가 공인하는 민주당의 최고 실력자다. 지난해 대선 완주를 고집하던 조 바이든 대통령을 막후에서 주저앉히는 데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화당이 행정부뿐 아니라 상·하원 다수당 지위를 싹쓸이한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에게 맞서 당분간은 리더십 진공 상태인 민주당의 구심점 역할을 할 만한 유일한 인물로 꼽힌다. 펠로시는 바이든보다도 두 살이 더 많지만 2026년 출마를 위한 서류를 이미 선관위에 제출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가에서는 펠로시가 민주당 아성(牙城)인 자신의 캘리포니아 지역구를 언젠가 딸 크리스틴에게 물려줄 것이란 관측이 많다.

[워싱턴=김은중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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