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트럼프 시대] [1]
구글·트위터 등 IT 전문가들
머스크 이어 정부 요직 입성
/로이터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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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인사(人事)가 대부분 마무리된 미국 도널드 트럼프의 대통령(공화당) ‘2기’는 첫 임기 때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오는 20일 백악관의 문을 열 예정이다. 2기 진용의 가장 큰 차이는 실리콘밸리로 상징되는 테크계 인사들의 정부 요직 장악이다. 트럼프는 경험 많은 정치인·관료 출신을 다수 기용했던 1기 때와 달리, 이번엔 신기술·투자에 능한 실리콘밸리 인사들을 정부 곳곳에 대거 영입했다. 이코노미스트는 “실리콘밸리 사람들은 의회에 소환되지 않는 한 워싱턴 DC를 꺼려 왔지만 이젠 달라졌다. 역사상 처음으로 정가의 중심부로 침투하는 테크 업계는 이제 정부를 파괴적 혁신의 대상이자 영향력을 미쳐야 할 영역으로 여기고 있다”고 최근 전했다. 테크계 인사들이 실리콘밸리를 상징하는 ‘창조적 파괴’와 ‘선한 영향력’을 정부 운영에 접목하려 한다는 것이다.
가장 두드러지는 인사는 트럼프의 ‘1호 친구(first buddy)’라 불리며 신설 부처인 ‘정부효율부(DOGE)’ 수장을 맡은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다. 하지만 테크 업계의 백악관 침투는 머스크에 그치지 않는다. J D 밴스 부통령을 비롯해 백악관 과학기술정책실장, 복지부 차관, 암호화폐·AI(인공지능) 최고책임자, 인사관리처 책임자 등을 모두 실리콘밸리 출신이 차지했다. 머스크와 DOGE 공동 수장을 맡게 된 비벡 라마스와미 또한 바이오테크 기업을 창업해 크게 성공한 테크계 인사다.
이런 변화는 실리콘밸리가 위치한 미 서부 캘리포니아주가 전통적인 민주당 강세 지역이고 테크 업계가 민주당을 주로 지지해왔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례적이다. 한편에선 전문직 이주자에게 호의적이고 중국도 갈등 대상이 아닌 ‘기회의 시장’으로 보는 테크계 출신들이 반(反)이민·반중 노선을 명확히 하는 정계의 ‘매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란 뜻의 트럼프 구호)’ 인사들과 갈등을 빚을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규제 시달린 테크 거물들, 트럼프와 ‘정부 혁신’ 새판 짠다
트럼프의 전임인 조 바이든 대통령은 테크 업계와 ‘전쟁’을 벌인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실리콘밸리와 각을 세웠다. 빅테크 기업은 독점 폐해를 일으키는 ‘수술’ 대상으로, 암호화폐·AI 등 신기술은 규제가 시급한 분야로 여겼다. 반면 트럼프는 취임 전부터 신기술 규제를 풀고 지원은 강화하겠다는 의지를 밝히고 있다. 이런 트럼프의 기조엔 대선 캠페인 때부터 거액을 기부한 실리콘밸리 갑부들의 입김이 작용했을 가능성이 크다.
공직을 맡지는 않았지만 트럼프와 수시로 의견을 주고받는다고 알려진 인사 중엔 실리콘밸리 벤처캐피털 ‘거물’ 둘도 포함돼 있다. 인터넷 브라우저 ‘넷스케이프’ 개발자 출신이자 실리콘밸리에 기반을 둔 벤처캐피털 회사(앤드리슨 호로위츠) 공동 창업자인 마크 앤드리슨은 대선 이후 트럼프의 개인 별장 마러라고에서 대부분 시간을 보내며 트럼프에게 기술 및 경제 정책 조언을 해주고 있다고 알려졌다. 2016년 대선 때부터 트럼프에게 거액을 기부했던 피터 틸 미스릴 캐피털 창업자는 부통령이 될 밴스의 정계 입문을 도우면서 트럼프와 밴스를 2021년 소개해준 인사다.
그래픽=김현국 |
네트워킹(인맥 쌓기)을 중시하는 실리콘밸리 출신답게, 트럼프 정부에 참여할 테크계 인사들은 서로 긴밀히 연결돼 있다. 머스크·틸은 온라인 결제 회사 ‘페이팔’ 공동 창업자고 트럼프가 암호화폐·AI ‘차르(최고책임자)’로 임명한 데이비드 삭스, 백악관 과학기술정책실장을 맡을 마이클 크라치오스도 페이팔에서 일한 이른바 ‘페이팔 마피아’ 출신이다. 복지부 차관이 될 짐 오닐은 틸이 창업하고 밴스가 일했던 미스릴 캐피털 출신이다. 내부 인사를 수장에 임명하는 관행을 깨고 NASA 국장에 지명된 재러드 아이작맨은 10대 때 금융사를 창업해 갑부가 된 후 머스크가 경영하는 민간 우주 기업 ‘스페이스X’에 2750만달러를 투자했다. 이 회사를 통해 두 차례 우주 비행까지 다녀왔다.
막강한 자금력과 탄탄한 인맥을 발판으로 미 정계의 실세로 부상한 테크계 인사들은 AI, 가상 화폐, 우주 기술, 바이오 등 다양한 분야에서 트럼프 2기의 정책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평가된다. 뉴욕타임스는 “테크 생태계 내에 규제 완화와 혁신을 추구한다는 트럼프의 정책 방향에 동조하는 이들이 생기면서 공화당과 실리콘밸리의 협업이 가능해졌다”고 분석했다. 각종 규제에 넌더리가 난 실리콘밸리의 억만장자들이 자본 권력에 머물지 않고 진짜 권력으로 입지를 넓히려 했다는 것이다. 아울러 1기 당시 ‘틀’을 깨는 정책에 사사건건 제동을 거는 정통 관료·정치인에게 실망한 트럼프 입장에선 돈과 아이디어로 무장한 실리콘밸리 인사들이 좋은 대안으로 여겨졌을 수 있다.
소프트웨어 기업 세일즈포스의 마크 베니오프 CEO는 “(트럼프 2기 출범을 앞둔) 지금은 모두가 재부팅(껐다 켜기)하고 싶어 하는 순간”이라고 최근 AP 인터뷰에서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 취임 후 4년 내내 ‘빅테크 때려잡기’에 시달린 테크 거물들이 트럼프 시대에 새 판을 짜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특히 반독점 규제 강화의 흐름을 되돌리고 싶어 한다. 트럼프는 바이든 정부의 법무부가 구글을 독점 기업으로 보고 강제 분할을 검토하자 “중국과의 기술 전쟁에 악영향을 줄 것”이라며 반대 의사를 밝힌 적이 있다. 테크 업계에선 유럽연합(EU) 등이 반독점 과징금을 부과하려 하는 가운데 트럼프가 이를 해결해줄지 모른다는 기대도 나온다. 실제로 대선 전 팀 쿡 애플 CEO가 EU의 반독점 과징금에 대해 불만을 호소하자 트럼프는 “우리 기업들이 (앉아서) 당하게 놔두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국방·우주 개발 등 분야에서 연방 정부가 빅테크에 줄 수 있는 ‘일감’도 무궁무진하다. 틸은 AI 기반 방산 기업 팔란티어의 대주주고, 머스크는 민간 우주 기업을 경영 중이다. 다만 이들이 자신의 정부에서 활동하며 자신과 관계가 있는 기업에 유리한 정책·지원 결정을 할 경우 이해 상충 문제가 생긴다는 지적도 계속 나오고 있다. 민주당인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매사추세츠)은 미 공영 라디오 NPR에 “테슬라와 스페이스X를 경영하는 머스크가 정부에 규제나 (정부와의) 계약에 대해 조언을 한다면 이해 상충을 피하기 어렵게 된다. 트럼프 정부는 이런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설명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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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박국희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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