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가 지난 3일 서울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경제계 신년인사회에서 재벌 총수들과 대화하고 있다. 왼쪽부터 최 권한대행, 최태원 대한상의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정의선 현대차 회장, 구광모 LG 회장, 김동관 한화 부회장, 정기선 HD현대 부회장.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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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완 | 산업팀장
올해 재벌 총수들 사이엔 윤석열 대통령이 없었다. 집권 뒤 2년 연속 경제계 신년인사회를 찾았던 ‘내란죄 피의자’는 체포영장에 응하지 않기 위해 지난 3일 서울 한남동 관저에 틀어박혀 있었다. 대신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가 대한상공회의소가 연 신년인사회에 참석했다.
윤 대통령의 자리는 빠졌지만 지난해와 바뀌지 않은 풍경이 있었다. 대한상의 회장인 최태원 에스케이(SK)그룹 회장을 비롯해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구광모 엘지(LG)그룹 회장,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 정기선 에이치디(HD)현대 부회장,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등 재벌 총수들의 자리는 그대로였다.
10년 전에는 어땠을까. 그때도 다른 건 대통령뿐이었다. 2015년 경제계 신년인사회는 박근혜 전 대통령부터 재벌 총수들까지 모두 참석하며 1500여명 규모로 성대하게 열렸다. 이번 불법 계엄 사태로 탄핵된 한덕수 국무총리도 당시 한국무역협회장으로 자리를 같이했다. 현대차그룹 회장이 정몽구에서 정의선으로 바뀌는 등 총수들이 3·4세로 바뀌긴 했지만 기업의 이름은 그대로였다. 금호아시아나 정도가 뒤로 밀려났다.
여야가 뒤바뀌며 10년이 흘렀지만 한국 경제의 생태계는 크게 변한 게 없는 셈이다. 되레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면서 과거와 같은 재벌 중심 정경유착이 되살아나는 모습까지 보였다. 2023년 부산 세계박람회(엑스포) 유치를 도모한다면서 대통령이 프랑스 파리에서 재벌 총수들을 불러 폭탄주를 돌렸다. 정경유착이 드러나 해체 직전까지 몰렸던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는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로 돌아왔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3월 상공의 날 기념식에 재벌 총수들을 모아놓고 “박정희 대통령의 수출 전략 회의 자료를 산업부 창고에서 가져다가 가득 쌓인 먼지를 털어내며 꼼꼼히 읽었다”고 한 뒤 “(기업인들이) 상속세 신경 쓰느라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하기 힘들다”며 ‘부자 감세’를 약속했다.
그렇게 ‘원팀’을 외쳤지만 한국 경제는 어떻게 되었을까. 2015년 2.9%였던 경제성장률은 2023년 1.4%까지 떨어졌다. 2024년 경제성장률 전망치도 2.1%로, 2025년 전망치는 1.8%로 지난 2일 정부가 내려 잡았다. ‘영업사원 1호’라는 윤석열 대통령을 거치며, 한국 경제는 잠재성장률(2% 안팎)에도 미치지 못하는 저성장을 맞이하게 될 것이란 뜻이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올해 신년사에서 성장률 둔화의 주원인으로 한국 경제의 생태계 문제를 들었다. “금년 성장률 둔화의 주요 원인으로 수출 둔화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그 이유는 우리 수출 구조가 다변화되지 못하고 반도체, 자동차 등 몇몇 주력 상품 위주로 고착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정 산업의 사이클에 따라 전체 수출의 부침이 커지는 가운데 주력 산업에서는 후발 주자인 중국이 우리를 추격해왔다. 반면 지난 10년간 미래 수출을 이끌어가야 할 신산업은 개발되지 못했다.” 한국과 미국의 매출액 상위 15대 기업을 10년 전과 비교하면 미국은 7곳이 새로 진입했지만 한국은 2곳만 바뀌었다. 그중에서도 신산업을 통해 성장한 기업은 1개에 불과해 신규 진입이 사실상 거의 없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무엇을 해야 할까. 지난달 국내외 경제·경영학자 488명은 저성장 국면을 탈피하기 위해 먼저 정치적 불확실성 해소가 필요하다고 했다. 이들은 “정치적 불확실성이 지속될수록 가계는 소비를 줄이고 기업은 투자와 고용에 소극적으로 대응한다”며 “정치적 불확실성은 전속력으로 달려도 모자랄 한국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했다.
높이가 다른 나무가 울창한 숲을 만들고, 실력은 달라도 충분한 힘을 가진 4명의 주자가 모여야 이어달리기에서 이길 수 있다. 안정된 토양, 안정된 기반. 이를 논의하려면 내란죄 피의자 체포 등으로 불확실성을 이 지경으로까지 키운 이부터 정리해야 시작할 수 있다.
wa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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