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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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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화해는 어디로?…박정희·전두환 감싼 자기 책 뿌린 박선영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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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영 신임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 위원장이 지난해 12월10일 오전 서울 중구 진실화해위에서 열린 취임식에 입장하며 취재진을 향해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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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영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 위원장이 지난달 설 연휴를 앞두고 권위주의 정권 시대에 대한 향수와 옹호를 담은 본인의 저서를 진실화해위 전 직원에게 배포해 뒷말이 나온다. 진실화해위 조사관들을 중심으로 권위주의 정권 당시 인권 침해 사건을 다루는 기관의 수장으로서 부적절한 내용이 담겼다는 비판이 이는 것이다.



진실화해위 관계자들의 말을 4일 들어보면, 박선영 위원장은 지난달 24일 설 연휴 직전 진실화해위 전 직원(1월17일 기준 220명)들에게 본인의 에세이 모음집 ‘내가 누구냐고 묻거든’(2023, 기파랑)을 한 권씩 나눠줬다. 박선영 위원장은 책을 돌린 뒤 내부망에 글을 올려 “그동안 제가 여기저기에 썼던 글들을 저와 가까운 분이 ‘내가 본 박선영이라는 사람’이라는 관점에서 취사선택했다”며 “저의 잡글, 일상 신변과 관련된 글들이다. 그냥 편하게 읽으시라. 내 일터의 기관장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 보내드렸다”고 밝혔다. 책을 펴낸 기파랑은 김광동 전 진실화해위 위원장 등 뉴라이트 계열 인사들의 책을 주로 내온 출판사다.



논란이 된 건 책의 내용이다. ‘내가 누구냐고 묻거든’의 본문에는, 1970~80년대 박정희·전두환 시대를 옹호하는 내용이 담겨있다. 가령 책에는 2022년 12월 전두환씨의 유골을 집에 두고 사는 이순자씨의 자택을 방문하고 나와 전두환·이순자 부부의 ‘순애보와 부부애’를 칭송하는 대목이 나온다(173~175쪽). 박 위원장은 “정치, 경제 이외의 일들과 그것에 대한 평가는 곧 정리된다. 북한이 거품을 물며 욕하고, 죽이려고 드는 대상이 바로 애국자들이니까”라면서 “부인이 전두환씨 유골을 집에 모시고 산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 아니다. 정상국가가 아니다”라고 적었다. 내란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전두환씨를 애국자로 표현한 거로 읽힐 수 있는 대목이다. 조사관 ㄱ씨는 “권위주의 정권 시기에 자행된 인권침해 사건을 조사하고 진실 규명하는 기관의 조사관들에게 위원장이 박정희·전두환 정권에 대해 옹호하는 본인 저서를 줬다. 그 시대 불법행위를 조사하지 말라는 뜻처럼 느껴진다”고 말했다.



사회 갈등을 종북 프레임으로 몰며 남북 대결을 고조하거나, 야당에 대한 원색적인 비난을 담은 표현도 논란이 된다. 박 위원장은 책 95~96쪽에선 “이태원사건을 국정조사할 것이 아니라 북한 무인기 불법침범 사건을 국정조사해야 한다. 그리고 국내외적으로 문제 제기를 확실하게 해야 한다”면서 “모든 수단을 다 동원해서 다시는 이같은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강력한 조치를 해야 한다. 이젠 준전쟁 상태다. 무인기가 뜬 지점을 빨리 찾아내 원점 타격도 정교하게 해야 한다. 대응 안 하면 우리는 당한다. 조.만.간”이라고 적었다. 책 107쪽에선 “지금 여론조사 1위를 달린다는 대선후보 별칭이 찢재명이라는데 ‘쫘악쫙’다 찢어버릴까? 그러고 나면 누가 시가 되는지, 안주가 되는지 유권자, 아니 국민은 조용히 지켜보기만 하면 되는 걸까?”라고 적기도 했다.



책을 받아 꼼꼼히 읽었다는 조사관 ㄴ씨는 “위원장이 정치적으로 편향된, 정제되지 않은 글을 책으로 펴내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하는 진실화해위 공무원에게 돌린 것”이라며 “위원장이 직원들에게 ‘편하게 읽으시라고 보내드렸다’고 했지만 한 구절 한 구절 읽을 때마다 가슴이 벌렁거리고 분노가 치솟아 전혀 편하지 않았다”고 했다. 조사관 ㄷ씨도 “뉴라이트 전문 출판사에서 낸 극우정치의 용어가 난무하는 책을 배포하면서 어떻게 내부 구성원들 사이에서 신뢰를 얻을 수 있다고 믿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했다.



한겨레

박선영 위원장이 지난달 설 연휴 직전 진실화해위 전 직원들에게 돌린 본인의 에세이집 ‘내가 누구냐고 묻거든’.


이상훈 상임위원은 박선영 위원장의 전 직원 대상 책 배포와 관련해 “삶을 돌아보는 책을 쓰고 나누는 것은 인지상정”이라면서도 “그러나 별것 아닌 공무원직장협의회(직협) 설립증까지 거부하고 있는데 자신의 도서를 배포한다고 해서 직원들이 나눔의 정을 느끼지는 못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지난달 진실화해위 직원 65명이 모여 출범한 직협에 대해 “조사관은 법적으로 직협 가입이 금지되는 기밀업무 공무원”이라며 설립증 교부를 거부한 일을 가리킨 것이다.



한편 박선영 위원장은 페이스북을 통해 정치적 입장을 드러내는 글을 지속해서 올리고 있다. 지난 2일 박위원장은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최근 윤석열 대통령 지지자 집회에 나서고 있는 전한길씨에 대해 “참 이뿌다. 장화 신고 곧 모내기하러 나갈 것 같은 투박한 외모에 늘 츄리닝 바람으로, 생각나는대로 마구 뱉어내는 듯한 어투의 싸나이”라며 “작년에 세금을 25억원이나 냈기 때문”이라고 칭찬했다. 다만 박 위원장은 글 말미에 “전한길씨의 발언 내용에 내가 100% 동의하거나 찬성하는 것은 아니다. 유튜브를 전혀 보지 않는 나는 그의 발언을 끝까지 들은 적도 없다”고 덧붙였다.



고경태 기자 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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