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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적 자유 [윤평중의 지천하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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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일러스트=유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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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적 자유’를 성취했다는 한 제자가 있었다. 인생 목표를 계획보다 10년 먼저 달성해 직장을 그만두었다고 했다. 내가 30대 초반에 교수로 부임했을 때 그는 갓 제대한 복학생이었다. 당차고 활발했던 그 친구는 철학을 전공한 것이 사회생활에도 큰 도움이 됐다고 말하곤 했다.

재정적 자립을 이룬 후 조기 은퇴하는 ‘파이어족’이 사회적 화두다. 열심히 일해 쌓은 부를 토대로 자유롭게 살아가는 인생 2막은 멋진 목표가 아닐 수 없다. 경기가 나쁠수록 경제적 자유에 대한 갈망도 커진다.

부가 얼마만큼 필요한지 기대치는 모두 다르다. 상대적 빈곤감이 크고 타인의 시선에 예민한 우리 사회에선 부에 대한 주관적 기대치도 높다. 한국인이 생각하는 부자의 기준이 미국인의 두 배에 이른다는 통계도 있다. 미국이 우리보다 훨씬 부국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한국인의 부의 기준은 매우 높다.

영화나 드라마는 부자들의 삶을 화려하게 그리지만 그들이 과연 우리가 꿈꾸는 경제적 자유를 누리는지는 의문이다. 백만장자는 100가지 고민, 천만장자는 1000가지 고민에 시달린다. 재벌의 삶을 가까이 목격했던 한 변호사의 경험담이 의미심장했다. 인간적 감정에 메마른 채 쫓기듯 살아가는 억만장자를 여럿 봤다는 이야기였다.

‘불행한 부자’에 대한 선입견은 이솝 우화 ‘여우와 신 포도’ 비슷한 심리다. 그러나 너무 큰 부는 정상적 인간관계를 방해할 수 있다. 만나는 사람마다 대가를 바라고 접근하는 것으로 비칠 수 있다. 돈 많은 집안은 골육상쟁을 겪기 쉽다. 물론 대부호 중엔 검소한 삶으로 사회봉사에 앞장서고 국민 경제에 기여하는 분도 많다.

한국은 ‘부자 되세요!’를 거리낌 없이 덕담으로 외치는 사회다. 이런 욕망의 소용돌이에서 자유로운 인간은 아무도 없다. 초탈했다는 한 힌두 수행자가 갠지스강 바라나시 화장터에서 푼돈을 밝히는 다큐 장면은 쓴웃음을 짓게 한다.

하지만 하루에 10억원을 벌어도 진정한 경제적 자유를 이루긴 쉽지 않다. 인간은 상상하는 동물이고 자본주의는 욕망을 무한정 키운다. 천만장자는 억만장자가 부럽고 현대 최고 부자는 역사 속 최고 부자를 선망한다. 욕망의 악순환엔 끝이 없다.

사마천은 2000여 년 전 사기 ‘화식열전’에서 부의 비밀을 명료하게 파헤쳤다. 부의 추구가 인간 본성의 산물이라는 현대적 통찰로 화식가(貨殖家·상공업자)들을 평가함과 동시에 부의 악마적 속성을 해부한다.

“보통 사람은 상대방 재산이 내 재산의 10배에 이르면 그 앞에 비굴해지고, 100배가 많으면 그를 두려워하게 되며, 1000배가 많으면 그의 부림을 당하게 되고, 상대방 재산이 내 만 배에 이르면 그의 노예가 되고 만다. 이게 세상 이치다.” 세계 최고 부자 일론 머스크가 초강대국 공동 통치자로 폭주하고 있는 오늘의 현실을 예언한 사마천의 통렬한 경고다.

천문학적 부와 권력을 한 손에 쥔 머스크 같은 이들이 정말로 ‘자유로운 인간’인지 나는 의심한다. 그럼에도 ‘돈은 중요하지 않다’는 말은 맞지 않는다. 돈이 별것 아니라며 열변을 토하는 이들일수록 본심은 정반대인 경우가 많다.

경제적 자립은 삶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 가운데 하나다. 그러나 어느 정도 생활이 안정되면 욕망의 크기를 줄여 자족하는 습관을 훈련하는 게 좋다. 일상의 작은 실천이 진정한 경제적 자유로 가는 길을 열어준다. 삶의 마지막 보루는 경제적 자유가 아니라 절제하고 자족하는 마음이다.

[윤평중·한신대 철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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