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치다 다쓰루는 어마어마한 양의 책들 앞에서 ‘평생을 읽어도 읽을 수 없는 책이 이만큼이나 있구나’ 통감하게 하는 것이 도서관의 사명이라고 강조합니다. 게티이미지뱅크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요조님, 안녕하세요. 제 고민이 요조님이 쓰시는 칼럼에 무척 잘 어울릴 것 같아 저의 사연을 보내봅니다. 그냥 넋두리처럼 보내는 것이니 제 고민을 꼭 해결해주어야 한다는 부담 없이 편히 읽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원래부터 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사실은 지금도 그렇습니다. 다만 책을 즐기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에 노력을 하고 있을 뿐인데요, 그게 영 잘 안되네요. 진입 장벽이 있어요. 큰 서점에 가도 그렇고, 도서관에 가도 그렇고, 온 공간에 빽빽하게 즐비한 책들을 보면 솔직히 어디서부터 손을 뻗어야 할지 엄두가 잘 안 납니다. 뭐랄까, 압도된다고나 할까. 심지어 책 한 권조차도 그래요. 첫 장을 펼치면 막막함부터 느껴집니다. 서점에 가서 이것저것 둘러보다가 끌리는 책을 사라고 아무 일 아닌 것처럼 태평하게 말하는 책 전문가들이 저는 좀 얄밉습니다. 책이 편하고 익숙한 분들에게나 간단한 일이지 저 같은 사람들에게는 간단한 일이 전혀 아니란 말이에요. 흥분해서 죄송합니다. 그래도 여기저기서 추천 많이 하길래 맨날 ‘그리스인 조르바’를 가방에 넣고 다니긴 합니다. 재밌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막막님, 안녕하세요. 먼저 막막님에게 죄송하다는 말씀부터 드리고 싶네요. ‘서점에 가서 편히 이것저것 둘러보다가 끌리는 책을 사보라’는 말, 저도 했습니다. 독서를 즐기고 싶은 사람에게 조언해달라는 부탁을 정말 많이 받는데 그때마다 그런 말을 했던 것 같네요. 그러나 막막님, 제가 사과하고 싶은 것은 ‘태평한 태도’이지 제 말이 거짓은 아님을 분명히 하고자 합니다. 막막님이 독서를 즐기는 사람이 되려면 서점이나 도서관을 어슬렁거리며 이 책 저 책을 뒤적이는 경험이 필요한 것은 분명합니다. 그건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지요. 비단 책뿐 아니라 많은 영역에서 그렇습니다. 통 옷에 관심이라곤 없던 사람이 옷을 잘 입는 사람이 되고 싶다면 일단 옷가게에 가서 이것저것을 구경하고 또 입어봐야 할 텐데, 그것이 익숙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유명하다는 편집숍에 발을 내딛는 일조차 떨리고 엄두가 나지 않을 것입니다. 요리를 배우는 일도, 달리기를 시작하는 일도 그럴 테고요. 다 큰 어른이 되어 새로운 취향을 갖고자 할 때, 거기엔 결코 간단하지 않은 결단과 각오가 필요합니다. 그것을 간과했던 것을 사과드립니다.
막막님께서 대형 서점이나 도서관에서 끝없이 진열된 책을 보며 느낀 압도감이 아주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얘기한 사람이 있습니다. 우치다 다쓰루라는 일본의 사상가가 ‘도서관에는 사람이 없는 편이 좋다’에서 그런 말을 했습니다. 도서관에 가서 어마어마한 양의 책들을 보며 ‘평생을 읽어도 읽을 수 없는 책이 이만큼이나 있구나’ 통감하게 하는 것, 이른바 ‘무지의 가시화’가 도서관의 사명이라고 그는 여러 번 강조했습니다. 우치다 다쓰루 같은 대단한 학자도 끝없이 진열된 책을 바라보며 압도감을 느낀다는 사실이 부디 막막님에게 위안이 된다면 좋겠습니다. 참고로 이 책은 인용을 위해 언급한 것일 뿐, 막막님에게 추천하고 싶진 않습니다. 이 책은 저처럼 ‘태평한 책 덕후’에게나 적당할 것 같아요. 사실 막막님에게는 책 말고 다른 걸 추천하고 싶군요.
책을 고르는 일이, 또 읽는 일이 막막하다면 조금 이상한 처방일 수 있지만 ‘쓰기’를 먼저 해보시는 것은 어떨까요? 뭐든 좋습니다. 하루의 일상을 적어보셔도 좋고, 꿈 얘기를 기록해보는 것도 좋고요. 그러고 보니 막막님은 왜 갑자기 책을 즐기는 사람이 되고 싶어졌나요? 그 사연에 대해 적어보시는 것도 좋겠네요. 쓰는 일과 읽는 일은 굉장히 상호적입니다. 잘 쓰기 위해서는 읽어야 하고, 잘 읽기 위해서는 써야 합니다. 저 역시 지금 이 원고를 ‘쓰는’ 중이지만 동시에 엄청 ‘읽는’ 중이기도 합니다. 막막님이 제게 보여주신 진솔함에 저도 힘껏 부응하기 위해, 글을 쓰다 멈추어 지금까지 쓴 글을 읽어보고, 또 조금 쓰다가 이내 멈추어 다시 읽어보고 하는 중이랍니다. 막막님도 스스로 무언가 ‘쓴다면’ 어쩔 수 없이 그것을 ‘읽어보게’ 될 겁니다. 그러다 보면 불현듯 무한하고 압도적인 책의 스펙트럼 가운데 내가 다가가고 싶은 특정 영역이 명확하게 드러날지도 모릅니다. 물론 그런 욕망이 끝까지 일지 않을 수도 있고, 이 책 저 책을 아무리 뒤적거려보아도 끝내 재미를 느끼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운명은 절대 우리 마음대로 움직여주지 않으니까요.
우연에 불이 붙어 운명이 되는 일이란 여간 귀찮은 게 아닙니다. 정말이지 어렵다기보다는 귀찮은 일입니다. 막막님, 우리 인간은 대체로 어려움에 지는 게 아니라 귀찮음에 진 채로 죽음을 맞습니다. 매일 뭔가를 써보라는 저의 조언부터 얼마나 귀찮기 그지없는 일인가요.
하지만 막막님은 의외로 귀찮음에 강한 사람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스인 조르바’가 그 증거입니다. 얇은 책도 아닌데 기어이 가방 속에 넣어 다니는 매우 귀찮은 일을 매일 하고 계시지 않나요.
종종 꿈도 없고 하고 싶은 것도 없는데 뭘 하며 살아야 하느냐는 질문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저는 그때마다 머리를 긁적이며 내가 조언할 만한 입장은 아니지만, 일단은 귀찮다고 여겨지는 모든 것을 해보라고 권합니다. 인생에도 힌트라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우리의 귀찮음 속에 있다고 저는 믿습니다. 막막님, 언제까지고 기다릴 테니 제가 있는 ‘태평한’ 곳으로 어서 와주십시오.
요조 뮤지션·작가 |
명륜동에서, 만사가 귀찮은 요조 드림
※ 당신의 고민을 들려주세요. 요조가 ‘책 처방’을 해드립니다. 제목에 ‘요조’를 달아 txt@hani.co.kr로 보내주세요.
▶▶실시간 뉴스, ‘한겨레 텔레그램 뉴스봇’과 함께!
▶▶한겨레 뉴스레터 모아보기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