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불 진화대원이 지난 22일 경북 의성군에서 발생한 산불을 끄기 위해 진화작업을 하고 있다(왼쪽 사진). 한 주민이 23일 경남 산청군 시천면 중태마을에서 불에 타버린 주택 앞에 고개를 떨구고 서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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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십 평생 이런 산불은 처음이다… 우짜노.”

23일 오전 경남 산청군 시천면 외공마을에서 만난 손정임씨(81)는 불로 삽시간에 폐허가 된 이웃집을 보고 안타까워했다. 전소한 집은 잔불 때문에 연기가 나고 있었다. 잠시 후 집주인이 집을 살펴보러 왔다가 “아이고, 다 잿더미가 됐네”라며 울음을 터트렸다. 2년 전 노모가 돌아가셔서 주말에만 거주했던 장모씨(60대)는 “60년 동안 살아왔던 집이, 좋았던 추억들과 함께 모두 타버렸다”고 말했다.

화재 직후 딸 집으로 피신했다가 약을 챙기러 돌아온 김모씨(82)는 “곳곳에 불이 났네, 난리가 났다”고 말했다. 전날 밭일을 하던 박모씨(70대)는 “산불이 조용하다가 어제 오후 돌풍과 함께 건너편 산쪽으로 불꽃이 날아가 번졌다”며 “나라도 시끄러운데, 전국에서 불까지 난리를 치니까 정신이 없다”고 했다.


서른 가구가 모여 사는 이 마을은 지난 21일 발생한 산불로 여섯 가구가 완전히 불에 탔다. 인근 목장에서 예초기에 불꽃이 튀며 일어났다는 산불은 산을 넘어 이튿날 이 마을을 덮쳤다. 주민들은 물건도 제대로 챙기지 못하고 허겁지겁 대피했다.

옆 마을에서는 역풍에 고립된 진화대원 4명이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화재는 시천면 전체로 번져 임야, 과수원, 묏자리 등 곳곳을 태웠다. 연기로 희미해진 시야 때문에 23일에도 1㎞ 건너편 야산도 보이지 않았다.

‘도깨비불’ 같은 불씨는 경북 의성군 안평면 신월리 마을도 덮쳤다. 김삼한씨(78)는 “어제(22일) 오후쯤 마을 인근의 산에서 연기가 나는 것을 확인했지만 그 불씨가 갑자기 날아다녔다”고 했다. 김씨의 바깥채가 모두 타고 마당 일부가 그을렸다. 그는 “불이 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대피하라는 안내가 와서 황급히 몸을 피했다”며 “아무것도 챙길 생각을 못하고 그대로 대피했는데 다시 와보니 서글프다”고 말했다.

비슷한 시각, 약 10㎞ 떨어진 의성군 의성읍 한 농업회사법인은 그야말로 쑥대밭이 돼 있었다. 사무동과 생산동, 창고동 등 건물 3곳의 외벽은 엿가락처럼 휘어 있었다. 배와 사과, 토마토가 가득 있었던 건물 내에서는 검고 매캐한 연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이 법인 오규수 이사는 “옆 마을 안평면에서 시작된 불길이 골짜기를 타고 넘어와 하천에 있던 억새에 옮겨붙은 뒤 불과 몇분 사이에 공장 설비로, 또 공장 전체로 번졌다. 막막한 마음뿐”이라고 했다.

최초 신고자가 “묘지 정리 중 불이 났다”고 한 의성 산불 역시 화재 대응 최고 단계인 ‘3단계’로 번져 23일 오후 현재 진화 작업이 진행 중이다. 지난 21일부터 전국에서 발생한 50여건의 산불 중 대형으로 번진 산청, 의성 산불 모두 실화로 일어난 셈이다.

산불 진화대원이 지난 22일 경북 의성군에서 발생한 산불을 끄기 위해 진화작업을 하고 있다(왼쪽 사진). 한 주민이 23일 경남 산청군 시천면 중태마을에서 불에 타버린 주택 앞에 고개를 떨구고 서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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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림당국은 올해 건조한 날씨로 산불 위험이 증가하자 지난 1월부터 봄철 산불조심기간 운영에 들어갔다. 국립산림과학원은 지난 21일 “지난 18~19일 폭설이 내린 강원 지역을 제외한 전국 대부분 지역 누적 강수량이 10㎜ 미만이어서 산불 예방 효과가 줄어든다”며 “낮 최고기온도 예년보다 3~8도가량 높아져 주말 등산객이 증가하고, 농사 준비를 위한 소각 행위도 늘어나 산불 위험 요인이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했다.

전국 산불의 시작을 알린 산청 산불은 공교롭게도 산림과학원이 우려를 표한 당일 발생했다. 산불 감시체계를 강화하고 주의를 당부했음에도 사람의 부주의로 인한 산불이 강풍에 의해 급속도로 확산되는 것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김정훈·백경열 기자 jh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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