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물∙유지 등 원재료 매입가↓
연초 업체 20여곳 가격 인상
“탄핵 혼란 틈타 수익 극대화”
업계 “환율 등 인상 요인 多”
21일 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에서 시민들이 오뚜기 진라면을 구매하고 있다. 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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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원자재 가격과 환율 상승으로 인해 가격을 조정하게 됐다.”
올해 초부터 국내 식품·외식 기업 20여 곳이 이런 이유로 제품 가격을 인상했지만, 밀가루∙식용유∙옥수수 등 주요 식품 원재료 가격은 전년도와 비슷하거나, 일부는 오히려 하락한 것으로 분석됐다. 커피∙코코아 등의 일부 원재료 가격이 오른 건 사실이지만, 소비자단체들은 다양한 원재료를 쓰는 식품업체가 탄핵 정국과 통상 불확실성 확대 등 혼란한 틈을 타 '꼼수 가격 인상'에 나선 것 아니냐는 비판을 제기하고 있다.
모든 식품 원재료 가격이 들썩이는 건 아니다
그래픽=이지원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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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한국일보가 최근 가격 인상을 단행했거나 예고한 주요 식품업체 11곳의 사업보고서를 토대로 원재료 매입 평균 단가를 분석한 결과, 밀가루 원료인 소맥과 원맥, 식용유 등 2024년 주요 식품 원재료 가격이 전년보다 10% 안팎 떨어진 것으로 집계됐다. 코코아, 설탕 등 일부 품목 가격이 오른 점을 감안해도 기업들의 '국민 먹거리' 가격 인상이 적정했느냐는 지적이 나오는 지점이다.
농심은 17일부터 신라면 등 17개 제품 가격을 평균 7.2% 올리며 “팜유와 전분류, 수프 원료 등 구매비용이 증가했다”고 밝혔다. 농심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회사가 수입한 팜유 가격은 톤(t)당 962달러로 전년보다 9.8% 오른 게 사실이다. 하지만 같은 기간 라면의 또 다른 주요 원재료인 소맥분(밀가루) 가격은 11.0% 하락했다. 다음 달 1일 진라면 등 16개 라면 가격을 7.5% 올리는 오뚜기 또한 지난해 팜유 평균 매입 단가는 4.0% 오르는 데 그쳤다. 라면 제조에 사용되지는 않지만 오뚜기가 수입하는 대두유(콩기름) 가격은 20% 이상 떨어졌다.
최근 편의점 빵 등 제품 50여 종 가격을 최대 20% 올린 SPC삼립의 사정도 비슷하다. 정백(설탕) 평균 수입 단가는 5.7% 오른 반면 팜유, 해바라기유 등 유지류(油脂類)와 원맥 매입 단가는 각각 9.4%, 19.7% 떨어졌다. 밀과 옥수수, 콩(대두) 등 3대 곡물 가격 또한 지난해 안정세를 보였다. 국내 간장 시장 1위 업체인 샘표는 사업보고서에서 “2024년 미국의 양호한 기상 여건으로 인해 대두∙옥수수∙소맥은 모두 풍작을 이뤘다”고 했다. 샘표의 대두 수입 단가는 10.2% 하락했다. 지난해 버터∙전지분유 등의 수입 가격도 안정적이었다.
커피∙코코아 같은 특정 품목은 기업에 원가 부담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롯데웰푸드의 지난해 코코아 매입 평균 단가는 kg당 8,718원으로 전년(4,228원)보다 두 배가량 상승했고, 이에 지난달 빼빼로 등 제품 26종 가격을 평균 9.5% 올렸다.
혼란 틈타 슬그머니 인상?
23일 서울 시내의 한 대형마트에서 매일유업 커피 제품이 판매되고 있다. 매일유업은 4월부터 바리스타 룰스 등 51종 제품 가격을 평균 8.9% 올리기로 했다. 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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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다보니 최근 식품업계의 릴레이 가격 인상이 기업의 수익으로 곧장 이어질 거란 기대도 커진다. 농심이 가격 인상을 발표한 이달 6일 회사 주가는 전날보다 10.65% 뛰었다. 오뚜기 역시 가격 인상을 발표한 20일 주가가 3.42% 올랐다.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 관계자는 “기업들이 원재료 가격 하락분은 이익을 취하면서 일부 원재료 인상을 이유로 가격 인상을 하고 있다”며 “수익을 올리려는 손쉬운 카드를 사용하는 것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고 말했다. 기업들이 가격 통제력이 강할 수밖에 없는 새 정부 출범에 앞서 서둘러 가격 인상에 나선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국면 당시에도 업체들은 앞다퉈 가격을 올렸다.
식품업계는 “원재료가 아니더라도 가격을 인상할 요인이 많다”고 반박한다. 한 식품업체 관계자는 “그동안 정부의 가격 인상 자제 압력으로 원재료값 상승분만큼 가격을 올리지 못하면서 부담이 누적됐다”며 “팜유 등 일부 원재료 또한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 당시와 비교해 시세가 안정된 것이지, 가격대는 예년보다 높은 데다 최근 상승세도 심상치 않다”고 했다. 다만 대다수 식품업체는 2022, 2023년 우크라이나 전쟁을 이유로 이미 가격을 인상한 바 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지난해 12월부터 1,400원대 원∙달러 환율이 4개월째 지속되면서 원재료 수입 부담도 커졌다”고 했다.
박준석 기자 pj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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