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의 시간' 주인공인 제이미 밀러(오언 쿠퍼, 사진). 촬영 당시 14살이었던 오언 쿠퍼는 이 작품으로 화려하게 데뷔했다. 사진 넷플릭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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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세살 아들이 긴급 체포됐다. 같은 학교에 다니는 여학생을 무참히 살해한 혐의로.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영국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소년의 시간’(원제 ‘Adolescence’) 이야기다. 4부작으로 구성된 이 드라마는 지난 13일 첫 공개 후 10일 넘게 전세계 넷플릭스 TV쇼 1위(25일 플릭스패트롤 기준)를 이어가고 있다. IMDb(인터넷무비데이타베이스)에서 10점 만점에 8.4점을 받았고, 로튼토마토 신선도 지수 99%를 기록했다. 외신들도 “고요하게 충격적인 드라마”(데일리 텔레그래프), “단순한 범죄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 사회를 향한 깊이 있는 비판”(뉴욕타임스)이라며 주목하고 있다.
‘소년의 시간’은 13살 소년 제이미 밀러(오언 쿠퍼)가 동급생 살인 혐의로 체포되며 시작하는 이야기. 10대의 심리를 추적하기 위한 어른들의 분투극이기도 하다. 제이미가 체포되는 1부, 학교를 탐문하는 2부, 7개월 후 심리학자와 제이미의 대화를 담은 3부, 제이미의 가족들을 조명한 4부로 구성된다. 초반 1, 2부는 범죄 스릴러의 느낌이, 3, 4부는 섬세한 심리극의 향이 짙다.
무엇보다 ‘비자발적 독신주의자’(Involuntary Celibate)의 줄임말이자 연애를 못하는 이유를 여성들에게서 찾는 남성을 의미하는 ‘인셀’을 핵심 요소로 등장시켜 전 세계의 공감을 샀다. 영국은 이미 인셀 문화가 하나의 사회문제로 거론되는 상황. 지난해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인셀을 기존의 극단주의 ‘우려범주’로 둔 데서 나아가 극단적 여성혐오를 테러로 규정해 관리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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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더갈등’, 세대갈등 전면에
자신의 방에 있던 평범한 13세 소년 제이미(오른쪽)는 어느날 살인 혐의로 집 문을 부수고 찾아온 형사들에게 이끌려 경찰서에 도착한다. 제이미는 시종일관 혐의를 부인한다. 사진 넷플릭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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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 중 제이미는 ‘괴물’이거나 ‘악마’가 아니다. 그저 평범한 13살 소년이다. 인셀 문화에 젖어든 남학생들 또한 특별할 것 없다. 이에 대한 여성 청소년들의 반감도 피해자 케이티(아멜리아 홀리데이)만의 것이 아니다.
드라마 속 청소년들은 80%의 여성이 상위 20%의 남성만을 만난다는 ‘20:80법칙’, 영화 ‘매트릭스’를 인용해 여성은 남성중심적 세상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의미의 ‘빨간약 이론’ 등을 상징하는 이모지를 주고받으며 성별에 따른 혐오를 내재화한다. 혐오는 SNS를 통해 전파되고, 사이버불링은 물론 여성 청소년들의 사적 사진을 불법으로 공유하는 등 현실 세계의 문제로까지 이어진다.
'소년의 시간' 2부에선 담당 형사 루크 배스컴 경위(애슐리 월터스, 오른쪽)가 살인에 사용된 흉기를 찾기 위해 제이미가 다니는 학교에 찾아가는 이야기를 담았다. 루크가 계속해서 헛다리를 짚자 같은 학교에 다니는 아들 아담(아마리 바쿠스)은 아빠를 불러내 사건의 '힌트'를 준다. 사진 넷플릭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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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드라마 속 어른들은 이들의 정서를 전혀 읽지 못한다. 2부에서 담당 형사 루크 배스컴 경위(애슐리 월터스)에게 “아빠는 애들이 무엇을 하는지 읽지 못한다”고 말하는 아들 아담 배스컴(아마리 바쿠스)의 대답은 이 작품을 관통하는 문제 의식이다. 온라인 세계의 문법을 모르는 ‘기성세대’ 경위는 ‘매너스피어’(남성 중심 커뮤니티)에서 행동을 촉구할 때 쓰는 이모지와 동조한다는 의미의 하트들이 왜 등장했고, 이런 대화들이 제이미의 심기를 어떻게 건드렸는지 상상조차 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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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쇠는 ‘소통’에 있다
'소년의 시간' 1부의 한 장면. 제이미의 아빠 에디(스티븐 그레이엄, 왼쪽)는 "내가 하지 않았다"는 제이미(오른쪽)의 말을 믿고 동석 보호자로서 함께 경찰서에 불려간다. 스티븐 그레이엄은 '소년의 시간'의 작가이자 감독이기도 하다. 사진 넷플릭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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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곡된 남성관, 여성혐오, 서열화된 교실은 미샤 프랭크(페이 마르세이) 경사처럼 ‘냄새난다’며 피할 수 없다. 적어도 청소년들에겐 몸소 겪어야만 하는 우울하고 폭력적인 현실이다.
제작진과 전문가들은 인셀 문화에서 촉발한 복합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더 많이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공동 작가 잭 손은 BBC와의 인터뷰에서 “현실에도 같은 문제가 반복되고 있다.”며 “더 악화되기 전에, 우선 문제를 이야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인셀’ 등 인터넷 문화로 촉발된 청소년들의 ‘젠더갈등’은 현재 한국 사회의 가장 큰 쟁점이기도 하다. 지난 1월 SNS에 ‘내 아들을 극우 유튜브 세계에서 구출해 왔다’는 제목으로 글을 썼던 권정민 서울교대 유아특수교육과 교수는 이러한 문제의 해결을 위해 가정에서의 소통도 중요하다며 “아이들과의 소통 통로를 어릴 때부터 소중하게 유지해야 이들의 문법을 이해하고, 필요할 땐 같이 바로잡아 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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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만큼만 보인다, ‘원테이크 기법’
3부의 주 무대가 되는 상담공간. 심리상담사 브리오니(왼쪽, 에린 도허티)는 사건 발생 7개월 후 제이미와 대화를 나누게 된다. 제이미는 처음엔 상담사의 질문에 순순히 답하지만 여성에 대한 폭력성을 보이며 상담사를 조롱하거나, 협박하기도 한다. 사진 넷플릭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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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원테이크 기법’으로 화제가 됐다. 회차당 카메라 녹화 버튼을 한 번만 눌렀다는 것. 치밀하게 짠 동선을 통해 한 회의 모든 장면을 한 번에 빚어냈다. 촬영감독 매튜 루이스는 미국 영화전문지 버라이어티를 통해 “시나리오가 촬영방식에 적합한지를 먼저 고민했다”며 “안무를 짜듯 리허설을 진행했다”고 밝혔다. 가벼운 카메라로 일반 촬영과 드론 촬영모드를 오가며 촬영했다고. 미술감독인 아담 톰린슨의 BBC 인터뷰에 따르면 한 회당 촬영 시간은 동선 논의 및 연기 연습 등을 포함해 약 15일 정도 걸렸다.
이러한 촬영 기법은 시청자들을 3인칭 시점으로 이끈다. 시청자는 질문을 품은 채 마치 유령처럼 현장을 따라다니게 된다. 이런 방식은 극에 사실성을 더하지만, 직접적으로 등장인물의 심리를 설명하는 장면은 그만큼 생략된다. 시청자들은 청소년들의 심리, 인셀 문화에 대해 아는 만큼만 이야기를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다큐멘터리처럼 현실적’이라는 젊은세대의 의견과 ‘실제로 이런 일이 있느냐’는 기성세대의 반응이 확연하게 갈리는 이유다.
최혜리 기자 choi.hyer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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