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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7 (목)

[뉴스룸에서] 양비론의 함정, 극우 파시즘의 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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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 탄핵 선고 연기 속 ‘양비론’ 확산
극우 세력 활개, 집권당도 비호·지원
‘민주주의 적’과의 싸움에 집중해야

국민의힘 나경원(왼쪽) 의원과 정점식 의원이 25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윤석열 대통령 탄핵 반대 1인 시위를 하며 대화하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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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란 우울증 걸릴 것 같아.” 지인 A의 말이다. 직무정지 대통령이자 ‘내란 우두머리’ 혐의자인 윤석열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선고가 자꾸만 늦춰지는 데 대한 푸념이었다. 맞다. A는 탄핵 찬성파다.

25일로 국회의 대통령 탄핵소추가 헌재에 접수된 지 102일째를 맞았다. 헌재의 변론 종결을 기준으로 하면 29일째다. 앞선 두 차례의 대통령 탄핵심판 기록을 모두 넘어선 지 한참이다.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 사건은 접수 63일, 변론 종결 14일 만에 기각 결정이 내려졌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은 각각 91일, 11일 만에 파면됐다. 반면에 윤석열 탄핵심판 선고는 깜깜이다.

사건이 복잡해서가 아니다. 윤석열 파면의 불가피성은 더 이상 논할 게 없다. 헌재의 ‘장고’는 탄핵 찬반으로 쪼개진, 한국 사회의 극단적 분열 때문일 것이다. 모두가 승복할 결론 찾기. 그러나 불가능한 목표다. 시간을 끌수록 양쪽은 더 결집하고, 헌재 결정 시 반발력도 더 커질 게 뻔하다. 헌재는 이미 실기(失期)했을지도 모른다.

그사이 확산한 게 양비론이다. 불법 계엄 사태 초기만 해도 내란 세력 비판을 쏟아냈던 일부 언론은 이제 태세를 전환했다. 여야 모두를 싸잡아 공격하거나, 심지어 야권 비난에 더 몰두한다. ‘정치 혐오’에 빠져 있던 대중에게 극우 세력 주장이 침투할 빈틈이 생겼다. “유튜브 보니 부정선거 맞는 것 같던데.” “야당도 문제 아닌가.” 또 다른 지인 B의 얘기다.

실제 여론조사 결과는 심상치 않다. 지난해 12월 6, 7일 실시된 한국갤럽 조사에서 ‘탄핵 찬성’ 응답은 74%, ‘반대’는 23%였다. 하지만 이달 18~20일 조사에선 찬성 58%, 반대 36%였다. ‘탄핵 반대’가 13%포인트나 늘어났다는 건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니다. 양비론의 파급 효과를, 극우의 증식 가능성을 알려 주는 데에는 충분하다.

특히 위험 신호는 자칭 ‘정통 보수’인 집권당과 극우의 일심동체화다. 국민의힘에선 ‘윤석열 엄호’도 모자라, 서울서부지법 폭동 가담자들을 “애국 시민” “성전에 참여한 십자군”이라고 칭송하는 목소리마저 나온다. 그런데도 당 지지율은 40% 안팎을 유지한다. 양비론에 힘입은 결과다. 이대로라면 “독일 나치 파시스트 정권은 정치적 반동과 대중의 자발성이 결합해 탄생했다”는 빌헬름 라이히의 분석(파시즘의 대중심리, 1933)이 오늘날 한국에서 현실화하지 말란 법이 없다. 현 상황이 “일반적 극우 차원을 넘어선, 극우 파시즘 현상”이라는 진단(신진욱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은 핵심을 찌른다.

이미 극우 파시즘에 잠식된 선진국도 있다. 도널드 트럼프 2.0 시대의 미국이다. 2020년 대선 패배에 불복한 트럼프는 이듬해 1·6 의사당 폭동을 선동했다. 그럼에도 2024년 대선에서 이겼다. 워싱턴 주류 정치에 환멸을 느낀 보수·중도층을 극우 정책으로 공략한 덕이다. 그 대가는 전 세계가 치르고 있다. 무차별 관세 전쟁, 그린란드 편입 야욕, 약소국(우크라이나·팔레스타인)만을 겁박하는 종전 압박, 인종차별식 이민자 추방…. 제2차 세계대전 땐 파시즘에 맞서 싸웠던 미국이 ‘21세기판 파시즘’으로 향하는 건 아이러니다. 양비론의 함정에 빠지지 않은 채, 지금 눈앞에 있는 ‘민주주의 적’과의 싸움에 먼저 집중해야 할 이유다.


김정우 이슈365부장 woo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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