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6일 밤 경북 의성군 신계2리의 한 야산에서 불길이 번지고 있다. 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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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과 하늘 모두 붉게 물들었다. 산에서 번진 불길이 바다까지 이르렀다. '괴물 산불'이라고 불렸다. 경상남북도 여러 곳에서 3월 21일부터 시작된 대형 산불들이 그달 30일에야 꺼졌다. 화마는 삶의 터전을 무너뜨렸다. 4월 1일까지 사상자가 75명에 달했다. 날씨와 바람의 영향이 컸다. 건조한 날씨에 산불은 이내 불기둥을 이뤘다. 이 불기둥을 통해 상승한 불똥이 세찬 바람을 타고 멀리 날아가는 '비화(飛火) 현상'이 산불을 괴물로 만들었다.
최근 대형 산불이 세계 곳곳에서 일어났다. 2019년 호주 남동부에서, 2023년 캐나다 동부에서, 2025년 미국 남캘리포니아에서 일어난 산불이 끔찍한 재난으로 이어졌다. 호주 태즈메이니아대학 연구팀은 기성의 통제를 넘어서는 '극단적 산불'의 빈도와 강도가 2003년과 2023년 사이에 2.2배 증가했다고 밝혔다.
과거와 달리 산불이 점점 대형화하고 장기화하고 있다는 것이 참 걱정스럽다. 산림학자들과 환경학자들은 이 현상이 산림의 특성과 기후위기가 결합해 나타나는 결과라고 지적한다. 2024년 지구 평균기온은 파리기후변화협약이 정한 마지노선인 1.5도를 넘어 1.55도까지 상승했다. 지구 온난화로 겨울이 한결 따듯해졌고, 강수량도 크게 줄었다. 이런 고온 건조한 날씨는 숲을 바짝 말려 작은 불씨를 무시무시한 화마로 키울 수 있다.
대형 산불은 사회학자 울리히 벡이 내놓은 '위험사회론'을 떠올리게 한다. 벡은 현대 문명의 발전이 환경 파괴, 원전 위험, 불안 경제 등 의도하지 않은 결과로 위험을 낳았다고 주장했다. 자연 재해 등이 '오래된 위험'이라면, 생태 위기 등은 '새로운 위험'이다. 이 새로운 위험이 세계화의 진전과 함께 테러리즘, 금융위기, 기후위기 등 '지구적 위험'으로 진화해 왔다고 벡은 분석했다. 코로나19 팬데믹과 같은 '바이러스 폭풍'은 지구적 위험의 또 다른 사례다.
"현대사회는 실패해서가 아니라 성공해서 병을 앓는다." 벡이 2007년 내놓은 '글로벌 위험사회'에서 남긴 말이다. 현대 문명을 비관적으로만 보고 싶지 않다. 그러나 문명의 미래를 낙관적으로만 바라보고 싶지도 않다. 위험의 바깥은 없다. 그렇다고 반복되고 점증하는 위험을 이대로 놓아둬선 안 된다. 위험을 적극적으로 관리하고 예방하는 국가적·지구적 지혜에 희망을 걸고 싶다.
성지연 작가·'다시 만난 여성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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