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한중우호협회 중국전문가포럼 '여론으로 보는 한중관계: 한일관계 인식과 비교분석 및 함의'가 열렸다. 사진 중앙일보 중국연구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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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연구원(EAI)이 최근 실시한 ‘2025 양극화 인식조사’ 결과에 따르면 한국 국민의 71.5%가 중국에 대해 부정적 인식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계엄사태라는 정치적 위기 속에서 증폭된 반중 감정과 각종 가짜뉴스가 판치며 여론이 더욱 왜곡된 양상을 띠고 있다. 문제는 한중관계의 미래를 이끌어갈 젊은 세대조차 이런 인식이 두드러진다는 점이다. 변화의 기로에 선 양국 관계, 오는 6월 출범할 새 정부는 어떤 스탠스를 취해야 할까? 한중우호협회(회장 신정승)는 7일 중국전문가포럼을 열고 ‘여론으로 보는 한중관계: 한일관계 인식과 비교 분석 및 함의’를 주제로 해법을 모색했다.
▶손열 동아시아연구원장 (발제)
최근 여론조사에 따르면 한국인의 반중 감정은 2021년 코로나19팬데믹을 기점으로 최고치인 73.8%를 기록한 뒤 현재까지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이는 과거 한일 관계에서도 보기 어려운 수치이며 사실상 북한에 대한 인식 수준에 근접하는 결과다.
손열 동아시아연구원장. 사진 중앙일보 중국연구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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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우리 국민은 2016년 사드 사태 이전까지 중국에 대해 비교적 우호적인 태도를 유지해 왔다. 그러나 사드 보복을 계기로 반중 정서가 급격히 확산했고 이후 10년에 가까운 기간 양국 관계는 좀처럼 회복되지 못하는 '잃어버린 10년'을 맞이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최근 발표된 한중 관계 여론조사는 과거 한일 관계가 악화됐던 시기를 떠올리게 한다. 한일 관계는 2010년대 초중반에 최악의 상황을 겪었지만 2021년부터는 점진적인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이 같은 경험을 거울 삼아 한중 관계 역시 장기적인 관점에서 개선의 가능성을 모색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첫째, 20~30대 중심으로 일본에 대한 호감도가 뚜렷하게 증가하고 있다. 이들은 ‘선진국 세대’로 선진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경험을 가진 이들이다. 관광과 직접적인 소비를 통해 일본의 문화와 사람을 체험하면서 양국 관계에 있어 구조적인 지지 기반을 형성하고 있다.
둘째, 윤석열 정부의 관계 개선 의지가 호감도 상승에 큰 영향을 끼쳤다. 2022년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일본에 대한 국민 인식도 큰 폭으로 변화했다. 윤 정부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일본에 긍정적인 이미지를 갖는 반면 문재인 정부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일본에 부정적인 시각을 유지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일본에 대한 인식 변화에는 한미 관계가 중요한 변수로 작용한다. 한미 관계가 원활히 유지되기 위해서는 한일 관계의 개선이 필수적이라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다. 이는 일본에 대한 본질적인 호감이라기보다 한미일 삼각 협력 구조 속에서 한일 협력의 필요성을 인식한 결과로 풀이된다.
반중정서 부채질하는 정치권
신정승 한중우호협회장. 사진 중앙일보 중국연구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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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승 한중우호협회 회장
이하경 중앙일보 대기자. 사진 중앙일보 중국연구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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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경 중앙일보 대기자
2023년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총리 간의 과거사 문제 합의는 대일 관계 복원의 신호탄이었다. 하지만 합의 발표 직후 대통령 지지율은 단일 이슈 하나로 5%포인트 가까이 빠졌고 이후에도 회복되지 않았다는 분석이 정치권 내부에서 나왔다.
중국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사드 배치 이후 중국의 경제 보복이 한국 사회에 남긴 감정의 상처는 여전히 깊다. 이 사안은 박근혜 정부 시기 벌어진 일이지만 당시 문재인정부가 사드 문제를 명확한 원칙으로 대응하지 못한 점은 아쉬움을 남긴다. 특히 통상 전문가들이 WTO 제소를 강력히 권고했음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실 차원에서 이를 포기한 것은 전략적 실책이었다는 평가가 많다.
WTO는 약자의 법정이고 약소국은 통상 분쟁에서 높은 승소율을 자랑해 왔다. 만약 우리가 이 제도를 적극 활용해 중국의 조치에 대응했더라면 “한국은 만만치 않다”는 메시지를 국제사회와 중국 모두에게 전달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했더라면 국민들도 ‘우리는 할 만큼 했다’는 인식 속에서 중국에 대한 억울함과 분노를 덜 느꼈을지도 모른다.
진짜 호랑이가 된 이웃에 대한 ‘배 아픈 감정’
정상기 전 국립외교원 중국연구센터장. 사진 중앙일보 중국연구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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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기 전 국립외교원 중국연구센터장
미국의 정치학자 로버트 저비스(Robert Jervis)는 국가 간 인식의 형성과정은 반드시 객관적 현실에 기반하지 않으며 오히려 심리적 요인이 더 크게 작용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사람들이 '자신보다 약하다고 느끼는 상대에게는 호감을 갖기 쉽다'는 부분이다. 관계의 불균형이 상대적 우월감을 낳고 그 우월감이 너그러움을 유도한다는 것이다. 반대로 상대가 자신과 같아졌거나 혹은 앞서기 시작했다고 느끼는 순간 경쟁심과 불편함이 감정의 바닥을 흔든다.
이런 시선으로 보면 오늘날 한일 관계나 한중 관계에 대한 인식은 경제적 역전과 깊은 연관이 있다. 예를 들어 2019년 이후 악화됐던 한일 관계는 2021년부터 점차 회복세를 보였다. 흥미롭게도 이 시기와 맞물려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이 일본을 앞질렀다는 통계가 언론에 빈번히 등장했다.
중국과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과거 한국인들에게 중국은 그저 가난하고 뒤처진 나라였다. 경쟁의 대상조차 아니었다. 하지만 중국이 경제·군사적으로 부상하며 이제는 ‘우리보다 앞서거나 위협이 되는’ 존재로 인식되기 시작하자 감정의 결이 급격히 바뀌었다. 단순한 체제 갈등이나 외교 갈등을 넘어서 일종의 ‘배 아픈 감정’이 깔려 있는 것이다. “배고픈 건 참아도 배 아픈 건 못 참는다.” 한국 사회에 오랜 시간 회자돼 온 이 말은 지금의 한중 인식을 설명하는 데도 유효한 문화적 키워드다.
김진호 단국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사진 중앙일보 중국연구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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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호 단국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2016년을 기점으로 한중 관계가 악화된 것으로 보이지만 그보다 먼저 미중 관계에서 이미 방향 전환이 이뤄졌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 중국을 겨냥한 미국의 정책적 공세는 이미 시작된 상태였고 그 흐름이 한중 관계에도 영향을 미친다.
문제는 다수의 한국인들이 중국을 직접 경험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강한 반감이나 거부감을 갖게 된 배경에 있다. 이는 주로 언론 이미지, SNS 상의 재현, 또는 미국을 중심으로 확산되는 담론을 통해 형성된 것이다. 특히 미국은 정책이 결정되면 그것이 곧바로 언론을 통해 전 세계로 확산되는데 한국과 일본의 언론 또한 이러한 미국발 메시지를 그대로 수용하는 경향이 있다. 결국 이는 중국에 대한 왜곡된 인식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한중 미래세대의 우호 증진 모멘텀 필요
정광균 전 이집트 대사. 사진 중앙일보 중국연구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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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광균 전 이집트 대사
한중 관계를 둘러싼 변수에는 관리 가능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이 있다. 또한 변화 가능한 것과 구조적으로 고정된 것이 존재한다. 한중 관계는 좋든 싫든 뗄 수 없는 관계다. 지정학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함께 갈 수밖에 없다. 지금 가장 큰 문제는 젊은 세대들의 생각이다. 이 관계의 미래를 이끌 2030세대가 중국에 대해 뚜렷한 거리감을 갖고 있는 것이다. 젊은 세대는 감정적 휘발성이 높기 때문에 여론의 방향에 따라 움직이고 외교정책이 흔들릴 가능성이 커진다. 그렇기에 우리는 프레임을 어떻게 새롭게 짜야 할 지 고민해야 한다.
남은영 동국대 글로벌무역학과 교수. 사진 중앙일보 중국연구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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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영 동국대 글로벌무역학과 교수
기성세대는 중국의 부상을 일종의 위협으로 받아들였고 이는 곧 감정적 반감으로 이어졌다. 문제는 이 반감이 단지 현실적 갈등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중국이 더 이상 우리가 알던 그 중국이 아니라는 불편함’에서 촉발됐다는 점이다. 하지만 새로운 세대는 다르다. 그들은 애초에 중국을 개도국으로 본 적이 없다. 그들에게 중국은 이미 '강대국'이다. 그런데도 이 새로운 세대는 기성세대보다도 더 강한 반중 정서를 표출하고 있다. 그들의 인식이 다시 긍정적으로 돌아설지 의문이다.
이희옥 성균중국연구소장. 사진 중앙일보 중국연구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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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옥 성균중국연구소장
현재의 청년 세대가 바라보는 시장의 시각은 기성세대와는 확연히 다르다. 흔히 "메이드 인 차이나는 끝났다"고 말하지만 실제로 중국 시장은 프리미엄 시장을 넘어 럭셔리 시장으로 전환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를 인지하고 중국 시장에 다시 진출하는 기업들도 늘고 있다.
중국 내에는 이미 휴머노이드(인간형 로봇)를 활용해 노동 비용을 사실상 '제로'로 만든 공장과 공급망도 구축돼 있다. 이처럼 급변하는 환경 속에서 청년 세대들이 제대로 된 인풋을 접하게 된다면 시장을 바라보는 시각도 달라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편 한국과 중국의 청년 세대 모두 권위주의 문화에 대해 비판적인 성향을 보이고 있다. 동시에 내셔널 프라이드(national pride)도 강한 편이다. 특히 20~30대는 세대 중 가장 애국주의적이고 민족주의적이며 국가주의적인 태도로 무장돼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이러한 구조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특히 코로나19팬데믹으로 약 5년간 양국 간 교육과 교류가 단절되면서 경험 부족에 따른 고착화된 인식 프레임이 더욱 심화됐다는 지적이다. 이에 따라 양자 간 교류를 재개하고 이를 점차 확대해 나간다면 한중 협력뿐만 아니라 한중일 협력, 나아가 동북아 전체의 평화와 우호 증진에도 기여할 수 있는 모멘텀을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김매화 기자 jin.meihu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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