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현지시각)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성소수자 커뮤니티를 겨냥한 헌법 개정안이 의회 통과된 뒤 시위대가 펼침막과 깃발을 들고 나와 항의 집회를 열었다. 로이터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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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가리 의회가 성소수자(LGBTQ)의 공개 행사를 제한할 수 있고, 성별은 ‘남성’과 ‘여성’ 둘뿐이라고 명문화한 헌법 개정안을 14일 통과시켰다. 아동 보호를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성소수자의 기본권을 제한할 수 있는 내용이어서 논란이 일고 있다.
오르반 빅토르 총리가 이끄는 극우 성향의 포퓰리즘 정당 피데스가 주도한 이번 헌법 개정은 찬성 140표, 반대 21표로 의결정족수(3분의 2)를 충족해 통과됐다고 에이피(AP) 통신 등은 보도했다. 현재 헝가리 의회는 집권 여당인 피데스가 199석 중 135석을 차지해 다수당이다.
개정안은 ‘아동의 도덕적, 신체적, 정신적 발달에 대한 권리가 생명권을 제외한 다른 모든 권리에 우선한다’고 선언한다. 아동 보호를 명분으로 평화로운 집회의 권리도 제한할 수 있다는 논리다. 지난 3월 헝가리 의회는 성소수자 커뮤니티가 개최해온 퍼레이드 등 공개 행사를 금지할 수 있도록 집회와 시위를 위한 법률 개정안도 통과시켰다. 이번 의회 의결은 이러한 규정을 헌법으로 성문화한 것이다. 그 결과 해마다 수천명이 참여하는 부다페스트의 대표적인 퀴어 퍼레이드도 금지 대상이 됐다. 여기에 정부는 안면 인식 도구를 이용해 금지된 성소수자 행사에 참석한 사람들을 식별하고, 벌금을 최대 546달러(약 78만원)까지 부과할 수 있게 했다.
개정 헌법은 성별도 남성과 여성 두 가지만 인정하도록 규정하고, “아버지는 남성이고 어머니는 여성이다”라는 문구를 넣었다. 트랜스젠더의 존재와 다양한 형태의 가족 구성을 부정한 것이다. 논란이 되고 있는 헝가리의 아동 보호 법안은 교육 자료 등에 18살 미만의 미성년자에게 동성애를 묘사하는 것도 금지한다.
아울러 헝가리와 비유럽 국가 국적을 취득한 이중국적자는 공공질서와 안전 또는 국가 안보에 위협이 된다고 간주되면 최대 10년 헝가리 국적을 정지할 수 있도록 했다.
야당과 시민사회는 이번 개정안 통과에 크게 반발하고 있다. 지난 3월 성소수자 공개 행사 금지 법안이 통과된 뒤부터 반대 시위를 해온 시민들은 이날 의회 봉쇄를 시도했다. 여기에 참여한 야당 모멘툼의 다비드 베되 대표는 오르반 총리와 피데스가 “지난 2~3개월 동안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해체하고 있고, 그 과정이 가속화되고 있음을 목격했다”고 말했다. 헝가리 인권 단체 헝가리헬싱키위원회와 시민자유연합, 국제앰네스티 등은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를 향해 헝가리에 유럽연합법 위반을 적용해 조처해줄 것도 요구하고 있다. 유럽연합은 법치주의 훼손과 권력 집중 등을 이유로 헝가리에 대한 재정 지원을 중단한 상태다.
헝가리 인권 단체들은 오르반 정부가 소수자를 배제하는 정책을 펴고 있고, 이런 정부 메시지는 국가에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심고 있다고 비판했다.
베를린/장예지 특파원 pen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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