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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11 (목)

    이슈 유럽연합과 나토

    "화이자 문자 공개하라" NYT 소송 패소한 EU 수장... EU 신뢰도 '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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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년 18억 회 코로나 백신 구매 과정서
    폰데어라이엔 위원장, 화이자 CEO와 문자
    "공개 의무 없다" 버텼으나 패소에 '난감'


    한국일보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 집행위원장이 2021년 4월 벨기에 푸르스에 있는 제약회사 화이자를 방문,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구매 계약에 서명하고 있다. 푸르스=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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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이 궁지에 몰렸다.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EU가 미국 제약사 화이자로부터 코로나 백신을 대거 공급받는 과정에서 폰데어라이어 위원장이 앨버트 불라 화이자 최고경영자(CEO)와 나눈 문자를 공개하라며 미국 뉴욕타임스(NYT)가 유럽사법재판소(ECJ)에 제기한 소송에서 패소했기 때문이다. '문자를 공개하지 않는 데 정당한 사유가 없다'는 ECJ의 판결은 폰데어라이엔 위원장뿐만 아니라 EU 전체 신뢰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EU 수장, 화이자 백신 구매 시 '문자 외교'


    14일(현지시간) 미국 정치 전문 매체 폴리티코 등에 따르면, ECJ는 이날 "집행위원회는 NYT가 공개를 요청한 문서에 대해 '보관하고 있지 않다'고만 말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집행위원회는 문서가 삭제된 것인지, 삭제됐다면 의도적 삭제인지 자동 삭제인지, 그사이 휴대폰 교체가 있었던 것인지 등을 충분히 밝히지 않았다"고도 덧붙였다.

    ECJ가 언급한 '문서'란 폰데어라이엔 위원장과 불라 CEO가 2021년 4월 전후 나눈 문자를 뜻한다. 당시 EU는 화이자와 18억 회분 백신 공동구매 계약을 체결했다. EU 전체 인구(약 4억5,000만 명)가 네 번씩 맞을 수 있는 규모다. 전세계가 백신 확보에 혈안이 된 상황에서 백신을 넉넉하게 공급받은 건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이 불라 CEO를 집요하게 설득했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이때 많은 문자가 둘 사이에 오갔다.

    처음엔 외교력에 대한 찬사가 쏟아졌으나 이후 EU 집행위원회와 화이자 간 계약 체결 과정이 지나치게 불투명하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너무 많은 물량을 구매해 결과적으로는 EU 회원국에 재정적 피해를 끼쳤다는 지적마저 나왔다. 당시 계약 규모는 최소 200억 유로(약 3조2,000억 원)로 알려졌다. 이에 NYT는 문자에 대한 정보 공개를 요구했고, EU가 이를 거부하자 2023년 1월 ECJ에 소송을 제기했다.

    ECJ "문자도 공개 대상"... EU 투명성 타격


    ECJ의 판결은 '문자 공개 명령'은 아니다. 그러나 '문자는 공문이 아니므로 공개 대상이 아니다'는 EU의 입장에 철퇴를 놓았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니콜 테일러 NYT 대변인은 ECJ 판결에 대해 "일시적인 의사소통이라도 대중의 감시 영역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한다"고 말했다. 반(反)부패 단체들도 ECJ 판결을 환영했다. 국제투명성기구 정책 책임자 샤리 힌즈는 "해당 판결은 정보 공개에 소극적인 EU의 태도를 바꾸는 촉매제가 될 것"이라고 AP통신에 말했다.

    EU 집행위원회는 폰데어라이엔 위원장과 불라 CEO가 문자로 중요한 대화를 하지 않았을뿐더러, 해당 문자를 보유하고 있지 않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EU 집행위원회는 "ECJ 판결을 살펴본 뒤 '다음 단계'를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는데, 이는 항소 가능성을 열어 둔 것으로 해석됐다. 항소는 판결 2개월 내 해야 한다.

    베를린= 신은별 특파원 ebsh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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