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신·경쟁 유도하는 ‘데블스 플랜’
프로그램 참가자에만 악플 세례
승리를 위한 각자의 셈법을 보여준 ‘데블스 플랜: 데스룸’ 출연자들. 왼쪽부터 세븐하이, 최현준, 정현규./넷플릭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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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완결한 넷플릭스 예능 ‘데블스 플랜: 데스룸’의 최종 결말은 ‘악플’에 몸살 앓는 출연자들이었다. 바둑 기사 이세돌을 비롯해 다양한 직업을 가진 참가자 14명이 두뇌 게임을 벌여 최종 우승자를 가리는 서바이벌 프로그램.
출연자 중 유독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는 우승자 정현규(27)씨는 27일 인터뷰에서 “제가 프로그램과 시청자에게 피해를 끼쳤다”며 “상금을 기부할 예정”이라고 사과하기에 이르렀다. ‘데블스 플랜: 데스룸’은 애초에 출연자가 도덕성을 내려놓고 승리를 위해 무엇이든 하도록 짜인 프로그램이다. 거짓과 배신 같은 인간의 어두운 면을 재밋거리로 삼는 예능 프로들이 만들어지고 있는 가운데, 출연자들만 날 선 화살을 맞아 우려가 나온다.
◇‘국민 호감남’이 한순간 ‘막말남’으로
이번 프로그램 방영 중 악플은 우승자 정현규와 그에게 조력한 참가자인 방송인 규현과 배우 윤소희를 중심으로 나왔다. 2022년 연애 리얼리티 프로 ‘환승연애2’에서 여자 출연자에게 직진하는 ‘연하남’으로 등장해 ‘국민 호감남’이 됐던 정현규는 한순간 ‘막말남’ ‘비겁남’ 꼬리표가 달렸다. 게임 중 자신을 배신하려는 한 참가자를 향해 “산수 할 줄 알아?”라고 말한 부분과, 결과적으로 조력자들이 탈락한 데 대해 도덕적 잣대가 들이밀어졌다.
규현과 윤소희를 향해서는 정현규에게 조력하는 태도에 대해 “우승 의지가 없다” “감정에 치우쳐 우승을 양보했다”며 인신 공격도 서슴지 않았다.
“우승을 양보했다”는 비난을 받은 윤소희./넷플릭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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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일각에선 출연자들이 오롯이 비난을 떠안는 것과 넷플릭스 등의 소극적인 출연자 보호에도 문제 제기가 나오고 있다. ‘데블스 플랜: 데스룸’은 애초에 도덕성이나 올바름을 얼마나 후순위로 미룰 수 있는지 관전하는 예능이다. “당신의 승리가 추악한 거짓과 배신으로 얼룩졌다고 해도 박수 쳐드리고 상금으로 답하겠다”는 고지가 프로그램 가장 앞부분에 나오기도 한다.
프로그램을 만든 정종연 PD는 27일 인터뷰에서 “결국 제가 설계한 프로그램 안에서 하는 행동들이었기 때문에 시청자들이 너그럽게 봐주시면 좋겠다”며 “출연자에게 증오 댓글을 남기는 걸 막을 방법은 없지만, 법무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일이 생기면 최대한 돕겠다”고 말했다.
◇“대중화된 OTT, 사회적 영향 고려해야”
수억 원의 상금을 걸고 배신과 편 먹기가 횡행하는 판을 만든 예능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작년 넷플릭스의 또 다른 서바이벌 예능 ‘더 인플루언서’ 역시 마찬가지였다. 술수가 난무하며 어두운 사회의 축소판을 연상시켜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김헌식 대중문화 평론가는 “인간의 어두운 면이나 본능의 적나라함을 부각하는 예능은 영미권에서 먼저 나온 포맷이고 최근 국내에서도 비슷한 프로그램이 나오고 있다”며 “하지만 섣불리 그런 포맷을 기계적으로 따라 만든다면 공간적으로도 네트워크적으로도 밀집도가 높은 한국에선 출연자들이 더 고통을 겪을 수 있다”고 말했다.
프로그램의 다양성도 중요하지만 OTT 업체가 프로그램의 사회적 영향에 대해 좀 더 고려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 방송사 관계자는 “TV 프로그램은 한 편 만드는 데 수많은 내부의 눈으로 검증한다”며 “OTT는 그 파급력에 비해 많은 자유를 누리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김헌식 평론가는 “한때 마니아층만 돈을 내고 보던 채널일 때와 달리 지금 넷플릭스는 일반 시청자도 많이 보는 단계에 들어섰다”며 “잡음이 많은 프로그램은 당장 화제는 되겠지만 중장기적으로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 본다”고 했다.
☞데블스 플랜: 데스룸
변호사, 포커 플레이어, 의사, 배우 등 14인이 7일간 합숙하며 다양한 두뇌 게임을 한다. 거짓말, 연합, 배신 모두 가능하다. 우승 상금은 3억8000만원.
[김민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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