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26일 '장단의 재발견'에서 위촉곡을 선보이는 19세 현대음악 작곡가 이하느리(오른쪽)와 서울시국악관현악단의 이승훤 단장. 세종문화회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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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곡가와 연주자의 대화엔 '창과 방패' 같은 면이 있었다. 지난해 버르토크 국제 콩쿠르 1위 등을 거머쥐며 한국 현대음악계 차세대로 주목받는 작곡가 이하느리(19)와 그의 첫 국악관현악을 연주할 서울시국악관현악단의 단장 이승훤(44) 사이에 흐른 미묘한 긴장감이다.
이달 공연 '장단의 재발견'에서 초연을 앞둔 이들을 함께 만나 국악관현악과 현대음악의 경계를 넓히는 시도에 대해 물었다. 이하느리가 "최고의 연주자를 상정하고 곡을 써야 한다고 배웠고 그때부터 곡이 (연주하기에) 어려워진 것 같다"고 덤덤히 말하자 이승훤은 "확실히 어렵다"며 웃는다. 마침 인터뷰 전날 연습을 시작했는데, 낯선 리듬과 빠른 속도에 단원들의 한숨을 막을 수 없었단다.
높은 완성도를 추구하는 이들 사이의 긴장감. 어쨌거나 서울시국악관현악단이 서양 클래식을 계승하는 젊은 현대음악 전공자에게 신곡을 위촉한 건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기 위함이다. 이승훤은 "작곡가의 욕심을 통해 연주자도 한계에 부딪히고 다른 길을 발견하게 된다"고 했다. 이하느리도 경계를 넘었다. 그는 "여태까지 작업물 중 가장 긴 게 16분이었는데, 이번 신작 '언셀렉티드 앰비언트 루프스 25-25(Unselected Ambient Loops 25-25)'는 40분 길이"라며 "막연히 국악관현악 작업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있었지만 기회가 빨리 왔다"고 말했다.
이하느리는 신곡에서 전통 장단을 해체하고 자기 의도대로 재구성한다. 반복되는 소리가 맞물리거나 의도적으로 어긋나며 질서와 일탈을 만들어낸다. '붕붕' 소리가 나는 어린이 장난감 등 특수 악기도 활용했다. 전통음악을 재해석했다기보다, 머릿속에 떠오른 현대음악 아이디어를 국악으로 재현해낸 쪽에 가깝다. "아이디어가 국악을 통해 다 발현되진 않았고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기도 했어요. 국악기 고유의 소리를 짧은 시간 공부하면서 작업해야 했거든요. 그래서 제목을 '선택되지 않은' 아이디어가 담겼다는 의미로 지었습니다."
이하느리는 다만 "어떤 의미를 갖고 곡을 쓰진 않는다"고 했다. 예컨대 예원학교 동문이자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임윤찬(21)을 위해 쓴 세계순회 연주곡 제목 '라운드 앤드 벨베티 스무드 블렌드(…Round and velvety-smooth blend…)'는 우연히 본 주류 라벨에서 따온 것일 뿐 곡과 연관성을 염두에 두진 않았다. 그는 "내 아이디어는 소리의 형태로 머릿속에 있고 그게 구체화될 때 곡으로 옮긴다"고 했다.
국악을 잘 모르는 작곡가가 선보이는 국악관현악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최근 국악계엔 창작곡을 전통과 비전통으로 가르는 시각도 있지만, 이승훤은 "나는 장르가 어떻게 접목되고 구현되는지에 대해 거부감이 전혀 없다"고 했다. 피리 정악 이수자인 그조차 음악을 바이올린으로 처음 시작했고, 서태지의 '하여가'(힙합에 태평소를 접목한 곡)로 국악을 접했다. "작곡과 지휘엔 동서양의 구분이 없다고 봐요. 현대적으로 들려줄 때 좋은 작품이 나온다는 대전제에 동의합니다. 이제 국악이 정통성과 절멸을 걱정해야 할 시기는 지났고, 오히려 끊임없이 더 나아가려는 시도를 해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하느리에겐 심지어 '하여가'조차 들어본 적 없는 옛 노래다. 그의 입에선 일렉트로닉·앰비언트·힙합 분야 해외 가수들의 이름이 줄줄 나왔다. 특히 최근엔 일본 아티스트에 푹 빠져 있단다. 원래는 전공인 클래식 외엔 관심이 없다가 2년 전부터 다른 장르 음악을 많이 들으며 새로운 영감을 받고 있다. 그는 "서울에서 태어나 전형적인 한국식 교육을 받았는데, 그게 마음에 안 들어서 스스로 관심 있는 것들을 찾아봤다"고 했다. 음악 교육은 4세 때 할머니가 바이올린·피아노 학원에 보낸 것이 시작이었고,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재미 삼아 작곡하다 4학년 때 예술의전당 영재아카데미에 입학하며 본격적으로 배웠다.
이하느리는 "항상 제가 쓰고 싶은 걸 썼고 그 외엔 다른 이유를 가져본 적이 없다"며 "앞으로도 그냥 쓰고 싶은 노래를 쓰고 싶다"고 했다. 배우고 싶은 것도 많다. "연주 때문에 해외에 몇 번 다녀보니 클래식 음악의 본토에선 가만히 있어도 좋은 영향을 받는 게 많더라"며 "내일이라도 유학을 떠나고 싶다"고 했다. 그런데 당장은 위촉받아 써내야 할 곡이 많아서 유학 준비가 미뤄지고 있단다.
이외에도 이하느리에 관한 더 자세한 얘기는 26일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들을 수 있다. 이하느리에게 이번 신작을 제안했고 무대에서 지휘할 최수열이 이하느리와 함께 '작곡가와의 대화'도 진행한다. 이승훤은 "우리 악단과 이하느리의 만남, 이하느리의 새로운 도전을 기대해달라"고 당부했다.
[정주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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