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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20 (토)

    [인사이드 스토리]'우지 파동' 트라우마?…'소기름 라면' 없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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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0년대 우지파동, 국내 라면 팜유로 기름 교체
    이후로도 탕유는 여전히 팜유만 사용 중
    가격 저렴하고 공급 안정적·맛 차이도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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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비즈워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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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옛날 라면 맛

    농심이나 오뚜기, 삼양식품 등 라면 기업들의 기사를 쓸 때마다 빠지지 않고 달리는 댓글들이 있습니다. "옛날 라면은 훨씬 맛있었는데 요즘 라면은 밍밍하다"입니다. 이 댓글은 두 가지 함의를 담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MSG' 이슈입니다. 옛날엔 라면에 MSG가 들어가서 맛이 풍부했는데, 요즘은 MSG를 넣지 않으니 맛이 없어졌다는 겁니다. 사실 이건 반만 맞는 말입니다. 2000년대 초 MSG의 유해성 이슈가 커지면서 라면에서 MSG, 즉 'L-글루탐산나트륨'을 넣지 않게 된 건 맞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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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0년대 판매되던 삼양라면과 삼양칼국수/사진=삼양식품


    하지만 라면 회사들이 그냥 MSG를 뺀 밍밍한 라면을 내놓을 곳이 아니죠. 다른 방식으로 최대한 같은 맛을 구현합니다. 실제로 한 인기 라면의 성분표를 보면 육수맛분말·감칠맛분말·감칠맛베이스·향미증진제 등 MSG의 감칠맛을 대신할 수 있는 조미료들이 들어갑니다.

    이보다 더 옛날의 추억을 회상하시며 "맛없다"를 외치는 분들도 있습니다. 바로 '우지 라면'을 추억하는 분들이죠. 우지 파동 이후 동물성 기름에 대한 좋지 않은 인식이 생기면서 라면이 모두 식물성 기름으로 바뀌었다는 거죠. 옛날엔 라면을 소기름으로 튀겨 훨씬 고소하고 맛있었는데 식물성 기름으로 바뀌면서 맛이 없어졌다고들 합니다.

    정말 우리나라의 라면은 식물성 기름으로 튀기면서 맛이 떨어진 걸까요? 그렇다면 소기름에 대한 누명이 벗겨진 지금은 왜 라면 기업들이 소기름 라면을 다시 만들지 않는 걸까요. 앞으로 '프리미엄 소기름 라면'이 나올 가능성이 있을까요? 주요 라면 제조사들에 이에 대해 문의해 봤습니다.

    우지 라면 안 만드는 이유

    라면 제조사들이 입을 모아 말하는 '우지 라면'이 없는 이유는 단순합니다. 만들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우선 소기름은 현재 라면을 튀길 때 사용하는 팜유보다 훨씬 비쌉니다. 때에 따라 다르지만 식용 우지는 팜유보다 30~60%가량 비싸다고 합니다. 라면 가격에서 튀김유가 차지하는 비중이 꽤 큰 만큼 소기름으로 바꾸면 가격이 꽤 오를 겁니다.

    하지만 또 이런 생각도 들죠. 요즘 한 봉지에 2000원이 넘는 프리미엄 라면이 즐비한데, 소기름으로 튀긴 라면이 정말 차이가 나게 맛있다면 시도하지 않을 이유가 없지 않을까요. 맛만 있다면 라면 한 봉지에 2000원이어도 팔리는 게 시장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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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농심의 전신인 롯데공업이 출시했던 '롯데 치킨라면'./사진=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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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에 대한 라면업계 관계자들의 대답은 "맛에도 별 차이가 없거나 팜유로 튀긴 라면이 낫다"였습니다. 큰 차이가 있고 찾는 소비자가 있다면 당연히 제품화를 했을 거라는 대답입니다. 우지 라면은 생각보다 느끼한 맛이 있다고 하네요.

    우지가 건강에 좋지 않다는 인식도 라면 제조사들이 우지 라면을 다시 만드는 걸 꺼리게 하는 요소입니다. 우지 파동 당시의 이슈는 '저품질 우지' 논란이었지만 깨끗한 식용 소기름이라 해도 건강에 좋지 않다는 인식이 있는 건 마찬가지입니다. 소곱창이나 대창 등에서 나오는 기름을 '좋은 기름'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없는 것과 비슷합니다.

    우지 라면이 맛있다는 착각

    우지 라면보다 팜유 라면의 맛이 더 낫다는 간접적인 증거는 또 있습니다. 농심은 우지파동에 10년 앞선 1979년부터 라면을 튀기는 기름을 모두 팜유로 교체했습니다. 오뚜기는 라면 사업에 진출한 게 1987년 청보식품을 인수하면서부터인지라 우지 라면을 생산한 역사가 아예 없고요. 팔도 역시 1983년 팔도라면, 1984년 팔도비빔면으로 라면 사업에 뛰어들었고 이 당시에도 팜유를 사용했습니다.

    1989년 우지 파동 이후 튀김 기름이 우지에서 팜유로 바뀐 것으로 알고 있는 분들이 많지만 사실 이 때쯤엔 우지로 라면을 튀기는 곳이 삼양식품밖에 남지 않았을 때입니다. 우지 파동이 삼양식품을 겨냥한 표적 수사가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온 것도 사실 이런 이유에서 입니다.

    "요즘 라면은 우지로 튀겼을 때보다 맛이 없다"는 이야기가 잘 성립되지 않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현재 판매 중인 라면 중 우지로 튀긴 역사가 남아있는 라면은 삼양식품의 '삼양라면'과 최근 재출시된 '농심라면' 뿐입니다. '신라면'이나 '진라면', '안성탕면', '팔도비빔면' 등 역사가 오랜 라면들은 대부분 1980년대 출시돼 첫 출시 때부터 팜유를 사용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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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5년 출시한 농심라면. 농심이 마지막으로 우지를 사용해 튀겼던 라면이다./사진제공=농심


    우지 파동으로 삼양식품이 큰 타격을 입었다는 이야기 역시 세월이 오래 흐른 뒤의 '이미지'에 불과합니다. 많은 분들이 아시듯 농심이 라면 업계 1위로 올라선 건 우지파동 4년 전인 1985년입니다. 너구리와 안성탕면, 짜파게티가 연속으로 출시된 시기죠. 1989년에는 점유율이 이미 60%대 20%로 크게 벌어졌습니다. 우지파동은 11월 초 터졌기 때문에 이 해의 점유율엔 거의 영향을 주지 않았습니다.

    이후 90년대 삼양식품의 라면 점유율은 꾸준히 10%대 중반에 머무르다가 90년대 말 10%대 초반까지 감소합니다. 우지 파동 때문이라기보다는 삼양라면 이후 히트작을 내지 못하며 농심과 오뚜기, 팔도의 신제품에 밀렸기 때문이죠. 물론, 2012년 이후의 대반등에 대해서는 여러분이 더 잘 알고 계실 겁니다.

    이쯤되면 왜 우지 라면이 다시 나오지 않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맛이 특별히 더 뛰어난 것도 아닌데 가격은 비싸고, 소비자 인식도 썩 좋지 않으며 건강에도 좋지 않은 기름을 굳이 사용할 필요는 없겠죠. 우지 파동이 일어난 지 36년이 지난 지금, 이제 우지 라면에 대한 미련은 보내줘도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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