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2.06 (토)

    이슈 불법촬영 등 젠더 폭력

    스토킹 피해자에 ‘출근·외출 자제’ 권고…가해자 구속률은 2%대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한겨레

    경찰이 스토킹 범죄 피해자에게 지급하는 스마트워치 상자에 ‘직장 출근 및 외출을 자제’하라는 피해자 권고문이 쓰여 있다. 김유경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스마트워치 상시 착용! 직장 출근 및 영업 자제! 필수 외에 외출 자제!’



    스토킹 범죄 피해자 김유경(가명·40대)씨가 지난달 경찰에게 받은 스마트워치 상자에 쓰여 있던 권고문 문구다. 김씨는 “대체 ‘출근 자제’가 무슨 말인지 싶었다. 생업도 포기하란 건지, 왜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가 이런 말을 들어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안전을 피해자 책임으로 넘기는 의미로 읽혀 더 절망스러웠다. ​스토킹 피해자인 김씨는 출근도 자제하라는 권고를 받았지만, 가해자는 접근금지명령을 위반하고 김씨 앞에 다시 나타났음에도 ‘불구속’ 기소됐다. 헤어진 연인에게 지난해 초부터 스토킹을 당한 김씨는 “6개월 넘게 신경안정제를 먹는 상태”로 재판이 열리기만 기다리고 있다.



    김씨는 가해자가 출근길을 따라와 차 문을 강제로 열려고 하는 등 ‘공포’를 경험했다. 결국 가해자는 지난해 초와 올해 초 스토킹 범행에 대해 벌금형 약식명령 처분을 받았다. 두번의 사법적 처벌을 받은 셈이다. 하지만 솜방망이 처벌은 재범 방지 효과가 전혀 없었다. 오히려 보복 범죄로 이어졌다. 김씨는 “허탈했다. 스토킹 좀 한다고 벌금형밖에 안 나온다며 가해자가 더 괴롭히겠다는 생각과 스토킹이 끝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그 생각은 현실이 됐다. 가해자는 벌금형을 받은 지 3일 만에 잠정조치(연락·접근 금지)를 어기고 김씨의 직장에 다시 찾아왔다. 재판 전에 내려진 잠정조치는 벌금형을 받아도 지속되고 있었지만 무력했다. 김씨는 “늦은 시간이라 주변 건물들은 다 문을 닫아 도움을 구할 곳이 없었다. 바로 도망쳐 경찰에 신고했는데, 폐회로텔레비전(CCTV)에 가해자가 찍힌 증거가 있고 도주 우려가 없어 경찰이 구속영장은 신청하지 않았다고 했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담당 수사관에게서 ‘가해자가 외국에 가서 일할 거라고 했다. 그럼 더 연락할 일이 없을 것’이라는 황당한 이야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한겨레

    지난 2022년 9월19일 오전 서울지하철 2호선 신당역 여자화장실 입구에 마련된 스토킹 범죄 피해자 추모 공간을 찾은 한 시민.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김씨의 사례처럼, 스토킹 가해자가 구속되는 비율은 낮다. 경찰청 통계를 보면, 스토킹처벌법(2021년 10월 시행) 위반으로 검거된 사람은 2021년 818명인 데 비해 구속된 이들은 58명으로 구속률이 7.09%에 불과했지만 이마저 해마다 감소하고 있다. 2022년엔 검거된 피의자 9999명 중 331명 구속으로 구속률이 3.31%로 떨어졌고, 2023년엔 3.03%(1만1681명 중 354명 구속), 2024년엔 2.94%(1만3244명 중 390명 구속)를 기록했다.



    한겨레

    한겨레 자료


    스토킹처벌법에 따르면, 가해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잠정조치를 위반할 경우 2년 이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 벌금에 처해진다. 하지만 실형 선고율은 낮다. 지난 5월 열린 ‘스토킹 범죄 재판의 쟁점과 피해자 보호’ 학술대회에서 조미선 사법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지난해 7월1일 이후 법원에 접수된 1심 판례 256개를 분석한 결과, 스토킹 범죄 피고인에게 징역형이 선고된 비율은 13.9%, 징역형 집행유예는 27.9%, 벌금형은 54.1%로 나타났다”고 밝힌 바 있다. 스토킹 가해자 10명 중 8명 이상에게 재판 뒤 피해자에게 접근할 ‘자유’가 주어진 것이다.



    벌금형을 받은 가해자가 스토킹을 반복하는 사례는 많다. 지난해 서울에선 가해자 ㄱ씨가 같은 학원에 다니는 여성을 스토킹해 1월에 벌금 70만원을 선고받고도, 6개월 만에 학원의 또 다른 여성을 스토킹하는 일이 있었다. ㄱ씨는 피해자에게 “어차피 나는 스토킹 전과가 있다. 벌금형감인데, 이 오빠가 생각보다 집에 돈이 좀 있다”며 피해자 사진을 합성·편집한 허위 영상물을 만들어 협박했고, 결국 올해 1월 징역 1년에 처해졌다.



    실형을 받아도 출소한 뒤 스토킹 범죄를 반복하는 일도 드물지 않다. 2022년 10월 강원도 춘천에서 스토킹처벌법 위반으로 징역 10개월을 선고받은 ㄴ씨는 출소한 지 1개월도 안 된 2023년 7월부터 세차례에 걸쳐 피해자 직장 주변을 배회하고, 피해자에게 말을 거는 등 또다시 스토킹 범죄를 저질러 지난 5월 징역 6개월에 처해졌다. 3년 전 서울에선 피해자에 대한 살인미수죄로 징역 3년6개월을 선고받고 출소한 가해자 ㄷ씨가 개명을 하고 주민등록번호까지 바꾼 피해자를 찾아내 다시 스토킹하다 징역 8개월에 처해지기도 했다. 최근 경찰도 ‘보복 스토킹’ 범죄 처벌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오스트레일리아(호주)의 경우 지난해 4일에 1명꼴로 여성들이 살해당했다는 통계가 발표되자 정부가 이를 ‘국가 위기’로 규정했다. 영국 정부는 같은 해 ‘극단적 여성혐오’를 테러로 규정해 적극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우리나라에서는 한국여성의전화가 지난 한해 동안 언론에 보도된 친밀한 관계 내 여성 살인 사건을 분석한 결과, 최소 181명의 여성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드러났다. 2일에 1명꼴로 여성이 가까운 남성에게 살해당했다는 의미다.



    정부가 젠더 폭력을 ‘심각한 위기’로 인식하지 않으면 피해자의 불안은 끝나지 않는다. 3개월 뒤면 가해자 접근금지명령도 효력을 잃어버려 불안한 나날을 사는 김씨는 “지금의 피해자 보호 조치가 실효성이 있는지, 제발 국가가 나서서 제도 점검을 해달라”며 한숨을 쉬었다. “피해자가 계속 신고해도 교제살인이 일어나잖아요. 마음먹은 가해자에게는 소용이 없어요. 몇명, 아니 몇십명이 더 죽어야 하나요?”



    고나린 기자 me@hani.co.kr



    ▶▶[한겨레 후원하기] 시민과 함께 민주주의를!

    ▶▶민주주의, 필사적으로 지키는 방법 [책 보러가기]

    ▶▶한겨레 뉴스레터 모아보기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