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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11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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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뷰]"'공동 제작 영화는 재미없다'… 고정관념 깬 한·베 영화 협력 새 이정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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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5> 합작 영화 르네상스
    '엄마를 버리러 갑니다' 판 지아 녓 린 프로듀서 인터뷰

    편집자주

    2023년 2월 한국일보의 세 번째 베트남 특파원으로 부임한 허경주 특파원이 ‘아세안 속으로’를 통해 혼자 알고 넘어가기 아까운 동남아시아 각국 사회·생활상을 소개합니다. 거리는 가깝지만 의외로 잘 몰랐던 아세안 10개국 이야기, 격주 금요일마다 함께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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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베트남 합작 영화 '엄마를 버리러 갑니다'의 베트남 측 프로듀싱을 맡은 판 지아 녓 린 감독. 린 감독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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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과 베트남은 2000년대 중반부터 영화 제작에서 협력해왔다. ‘므이(2007)’ ‘사이공 신데렐라(2013)’처럼 한국 자본이 투입되거나 한국인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베트남 작품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엄마를 버리러 갑니다’는 베트남이 단순 참여자가 아니라 동등한 주체로 나선 첫 작품으로 평가된다.

    영화의 베트남 측 프로듀싱을 맡은 감독 겸 각본가 판 지아 녓 린(46)은 한국일보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영화 제작은 여러 ‘자아’의 충돌이고, 서로 다른 언어와 문화가 얽히면 갈등은 불가피하다”며 “양국 협업은 이 차이를 극복하고 올바른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서로를 이해하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린 감독은 베트남에서도 한국 영화에 대한 이해가 깊은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가 황동혁 감독의 ‘수상한 그녀(2014년)’를 리메이크한 ‘내가 니 할매다(2015년)’는 베트남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며 흥행에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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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판 지아 녓 린 감독이 황동혁 감독의 영화 ‘수상한 그녀(2014년)’를 리메이크해 제작한 ‘내가 니 할매다(2015년)’ 포스터. CGV베트남


    이번 합작 과정에서는 베트남 정서와 문화에 맞게 시나리오와 편집본을 수정하고, 현지 배우의 대사를 다듬거나 연기를 지도하는 등 모홍진 감독을 지원했다. 스태프·배우 추천, 홍보 전략 수립과 현지 스폰서 유치도 그의 역할이었다. 린 감독에게 이번 작업의 의미와 성과를 물었다. 다음은 일문일답.

    _이번 영화가 갖는 의미는.

    “국제 공동제작의 새 이정표를 세웠다는 점이다. 한국과 베트남이 투자부터 제작까지 50대 50 비율로 참여했다. 주요 스태프와 배우도 양국이 균형 있게 맡았고, 촬영 역시 두 나라에서 진행됐다. 중요 의사 결정도 대등하게 논의됐다.”

    _공동 제작 추진 배경은.

    “모홍진 감독이 시나리오를 보내왔다. 읽자마자 깊은 감동을 받아 눈물을 흘렸다. 멜로드라마는 베트남에서 대중적인 장르는 아니지만, 이 이야기가 관객의 마음을 움직일 것이라 믿었다. 예술적 측면에서 공동제작은 감독 개인의 세계관을 넘어 새로운 시각을 열어주고, 시장 측면에서는 양국 관객을 아우르며 문화와 관광을 알릴 기회를 제공하는 작업이다. 제작 과정에서 서로의 방식과 경험, 기술을 배우며 역량을 함께 키울 수 있다는 점도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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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베트남 합작 영화 '엄마를 버리러 갑니다' 포스터. CGV베트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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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_과거 제작 방식과 다른 점은.

    “예전에는 외국 자본이 베트남을 단순 배경으로만 활용하거나, 베트남 측이 창작 과정에서 배제되는 경우가 많았다. 의견이 존중되지 않아 작품이 엉성해 지고, 결국 ‘공동제작 영화는 재미없다’는 고정관념까지 생겼다. 이번 영화는 이러한 한계를 깨고 문화적 차이를 이해하며 진정한 협력을 이끌어낸 사례라는 점에서 과거와 차별화된다.”

    _한국 영화가 베트남 영화계에 주는 시사점은.

    “한국 영화는 베트남과 가장 가까운 모델이다. 베트남 영화 시장은 예술·상업 영화가 크게 양분돼 있다, 예술영화는 국제 영화제에서 호평 받지만 흥행에 실패하고, 상업영화는 흥행하더라도 저급하다고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관객은 예술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갖춘 영화를 원한다. 한국은 그 균형을 보여준 대표적 사례다. 봉준호, 박찬욱 같은 감독은 국제적으로 인정 받고 국내에서도 흥행에 성공하지 않았나. 이는 베트남 영화계에 매우 유효한 모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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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베트남 합작 영화 '엄마를 버리러 갑니다'의 베트남 측 프로듀싱을 맡은 판 지아 녓 린 감독. 린 감독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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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_한국과 베트남 영화가 공유하는 특징은.

    “유교적 문화가 유사하다. 베트남 관객은 한국처럼 가족 중심의 가치와 이웃 공동체 의식이 영화에 반영될 때 깊이 공감한다. 한국 영화가 사회 문제를 다루는 방식은 베트남보다 더 과감하지만, 베트남 감독 역시 사회 현실을 드러내고자 하는 욕구가 있다. 한국은 검열의 시기(1970~1980년대)를 거쳐 1990년대 이후 정부가 ‘통제’에서 ‘지원’으로 정책을 바꿨고, 영화 산업이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이는 아직 통제가 강한 베트남 영화계에 중요한 교훈이 된다.”

    _한·베 영화 협력은 어떤 방향으로 발전해야 할까.

    “공동제작에는 어려움이 따르지만 새로운 기회도 많다. 전제가 있다. 시나리오와 인력, 자본이 모두 적합한 좋은 프로젝트가 있어야 하고, 서로의 문화적 정체성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태도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두 가지가 충족된다면 양국의 강점을 결합해 아시아와 세계 시장에서 통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들 수 있다고 본다.”

    하노이= 허경주 특파원 fairyhk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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