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오른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3일 중국 전승절 80돌 경축 열병식 도중 천안문 망루에 나란히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중국중앙텔레비전(CCTV) 화면 촬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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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한 조선노동당 총비서 겸 국무위원장이 3일 베이징 천안문광장에서 진행된 ‘중국 인민 항일전쟁 승리 및 세계 반파시스트 전쟁 승리’(전승절) 80돌 경축행사 때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바로 왼쪽에 섰다. 시 주석 오른쪽엔 ‘주빈’인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섰다. 천안문 망루에 북·중·러 정상이 나란히 선 역사적 장면이 1959년 이후 66년 만에 재연된 것이다.
김정은의 화려한 다자외교 신고식
‘시진핑 옆 김정은’ 연출은 행사 주최자인 시 주석이 전승절 70돌(2015년) 행사와 달리 ‘혁명 원로’를 뒤로 물린 덕분이다. 당시엔 시 주석 왼쪽에 장쩌민 전 중국 국가주석이 섰다. 시 주석의 속내가 어떻든 김정은 위원장으로선 화려한 다자외교 신고식을 하게 된 셈이다. 아울러 ‘핵 포기는 절대 없다’며 미국 등 국제사회에 ‘핵보유국 지위’ 인정을 주장해온 김 위원장에겐 ‘기분 좋은’ 의전일 수 있다.
천안문 망루의 북·중·러 공조 ‘쇼’
시 주석을 중심으로 ‘좌 정은-우 푸틴’이 나란히 선 모습은 미국의 ‘패권·일극 질서’에 맞서 “평화롭고 질서 있는 다극화 세계” 창출 명분을 앞세운 3국 공조를 극적으로 돋을새김한 ‘외교 쇼’다.
앞으로 △북·중·러 3국의 대미 공조 △중·러 협력 심화 △서먹했던 북-중 관계 개선 흐름을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한반도 및 동북아 역내 질서와 정세에 상당한 영향을 끼치며, 한국 외교에 부담을 줄 흐름이다. 북-러 동맹을 복원한 김 위원장이 전승절 외교를 통해 중국과의 관계 개선 실마리를 찾은 건 ‘민생경제’ 재건을 외쳐온 김 위원장한테 유의미한 자산이 될 수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왼쪽부터),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3일 중국 베이징 천안문광장에서 열린 전승절 80돌 경축 열병식에 앞서 천안문 망루에 나란히 서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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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중·러 3국의 복잡한 역사와 셈법
문제는 이런 흐름이 얼마나 강하게, 얼마나 오래도록 지속될 수 있느냐다. 이는 김 위원장의 대외 전략 성패에 영향을 끼칠 중대 변수다. 냉전기를 포함해 북·중·러 3국 공조가 장기 지속된 적이 없다는 역사의 교훈은 섣부른 정세 예측을 불허한다.
중국과 옛 소련(러시아)은 양국 정상이 천안문 망루에 함께 오른 이듬해 ‘긴 분쟁’의 늪에 빠졌다. 1960년 소련공산당 21차 대회에 참가한 덩샤오핑이 소련의 ‘평화공존론’을 공개 비판한 것을 신호로 사회주의 진영의 주도권을 둘러싼 ‘사상 논쟁’이 격화하며 1969년엔 우수리강의 전바오다오(러시아명 다만스키섬)에서 ‘작은 전쟁’을 하기도 했다. 중-소 분쟁은 옛 소련 몰락 직전인 1989년 5월 베이징 정상회담 때까지 계속됐다. 김일성 북한 주석도 소련의 ‘평화공존론’, 마오쩌둥의 ‘문화대혁명’을 비판하며 오랜 세월 중-소 사이에서 ‘줄타기 외교’를 펼쳤다.
북·중·러 3국 정상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셈법도 복잡하다. 시 주석은 열병식 연설에서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은 막을 수 없다”고 강조하면서도, ‘미국’이나 ‘트럼프’를 입에 올리지 않았다. 전세계의 관심이 쏠린 북·중·러 3국 정상회의도 열리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시 주석이 3국 공조 ‘쇼’는 연출하되, 실질화·제도화엔 전략적 선긋기를 한 것이다.
트럼프의 이간계, 트럼프가 필요한 김정은
트럼프 대통령은 트루스소셜에 시 주석이 “미국에 대항할 공모”를 꾸미고 있다고 비난하면서도 “푸틴과 김정은에게 나의 가장 따뜻한 안부 인사를 전해달라”고 적었다.
중국과 북·러의 틈을 벌리려는 ‘이간계’인데, 터무니없는 시도는 아니다. 김 위원장은 지난 1월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트럼프 대통령을 실명 비판한 적이 없다. 김 위원장의 이번 전승절 참석은 트럼프 대통령과의 담판을 앞둔 뒷배 다지기라는 분석이 많다. 푸틴 대통령도 트럼프 대통령과의 담판으로 전쟁을 유리하게 끝내려 애쓰고 있다. 북-미, 미-러 정상 사이에 접근 ‘필요’가 있는 셈이다.
김성배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은 “북·중·러 정상회담이 열리지 않았다는 건 3국 공조의 한계를 보여주는 것”이라며 “국제사회에서 ‘악당국가’로 찍힌 북·러를 전적으로 끌어안기 어려운 중국의 고민, 북·중·러 3국 공조의 빈틈을 노리는 트럼프의 전략 등을 두루 살펴야 한다”고 말했다.
이제훈 선임기자 nom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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