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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06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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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리셀 참사' 박순관 대표 징역 15년…재판부 "예고된 인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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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측 불가 사고 아닌 예고된 일"…중처법 최고형

    재판부 "합의하면 선처, 악순환 뿌리 뽑아야" 일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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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리셀 참사 현장. (화성=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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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동자 23명이 숨진 '아리셀 참사'의 책임자로 기소된 박순관 아리셀 대표가 1심에서 징역 15년을 선고받았습니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후 기소된 사건에서 내려진 최고형입니다.

    수원지법 형사14부는 사업장의 유해·위험요인을 점검하지 않고 중대재해 발생 대비 매뉴얼을 구비하지 않는 등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위반한 혐의로 기소된 박 대표에게 오늘(23일) 이같은 판결을 내렸습니다.

    전지 보관 및 관리와 화재 발생 대비 등 안전관리상 주의 의무를 위반해 대형 인명 사고를 일으킨 혐의를 받는 박중언 아리셀 총괄본부장에게는 징역 15년과 벌금 100만원을 선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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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장실질심사 향하는 박순관 아리셀 대표. (수원=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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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 대표는 지난 재판 과정에서 "아들 박중언 본부장에게 경영을 맡겼을 뿐, 실제 경영에는 일체 관여하지 않았다"며 자신은 명목상 대표이사라고 주장해왔습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사업장의 경영책임자를 처벌하도록 돼 있는데, '바지사장'이라고 주장하며 법망을 빠져나가려 한 겁니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의 카카오톡 대화내역, 이메일 내역, 업무보고 내역 등을 토대로 박 대표가 아리셀의 등기상 대표이사이자 실질 대표이사로서 경영책임자에 해당한다고 판단했습니다. 박 본부장으로부터 영업 현황 등을 보고하도록 지시하며 기업의 매출 증대를 지시했다는 겁니다.

    참사 이틀 전 비슷한 폭발 사고가 있었는데도 같은 시기 생산된 전지에 대해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은 점도 지적했습니다. 생산량을 맞추기 위해 작업을 예정대로 진행하려 하다가 큰 피해가 발생했다는 겁니다. 재판부는 "같은 날 생산된 전지에 대한 후속 공정을 중단하는 것이 그렇게 높은 주의의무를 요구하는 것이라고 보이지 않는다"며 "그런데도 피고인들은 생산량을 맞추기에 급급한 나머지 안전에 필요한 조치가 무엇인지 돌아보지 않고 생산 공정을 계속해 피해자들을 사상에 이르게 했다"고 했습니다.

    화재가 대규모 사상 사고로 번진 건, 사전에 파견근로자들에게 안전 교육이나 훈련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봤습니다. 사전에 소방훈련을 하지 않았고 화재 시 대피요령 등을 알려주지 않아 큰 피해로 이어졌단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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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방청 중앙긴급구조통제단이 공개한 아리셀 공장 내부 CCTV 화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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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터리에 불이 붙으면 진압하지 말고 즉시 대피해야 한다'는 기본적인 대피요령도 숙지시키지 않았다는 점도 짚었습니다. 실제로 사고 당시 발화지점 근처 CCTV에는 소화기로 불을 끄려고 하는 한 노동자의 모습이 담겼습니다. 재판부는 "화재를 인지한 시점에 즉시 출입문 또는 비상구를 향해 뛰쳐나갔다면 생존했을 수 있었을 것"이라며 "우왕좌왕하는 사이에 생사가 오가는 골든 타임을 놓쳤다"고 했습니다.

    평소 드나들 수 없는 보안 구역에 비상통로를 두어, 대부분 피해자가 비상구 위치를 몰랐던 점도 대규모 사상의 원인이라고 했습니다. 재판부는 "비상구에 도달하기까지 많은 장애물이 가로막고 있었다"며 "결국 아침에 집에서 일터로 향한 소중한 가족이 남은 가족의 품에 영원히 돌아오지 못하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파견법 위반 혐의도 유죄로 인정했습니다. 박 대표와 박 본부장은 파견 노동자 근무가 금지되는 리튬 1차전지 조립·포장·검사 업무에 파견 노동자를 투입한 혐의를 받습니다. 재판부는 "납품기일을 맞추기 위해 급작스럽게 전지 생산량을 늘리는 과정에서 파견 근로자를 받았다며"며 "화재 무렵 파견근로자 수가 급증했고, 이 때문에 일한 지 얼마 안 돼 사망하는 노동자가 생겼다"고 짚었습니다.

    이 사고로 숨진 23명 중 20명이 파견근로자였으며, 사망자 대부분이 입사 3~8개월 만에 사고를 당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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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리셀 참사 현장.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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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판부는 양형 이유를 설명하면서 이 사고는 "예측 불가능하였던 불운한 사고가 아니라, 언제 터져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는 예고된 인재"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그 이면에는 생산량 증대에 따른 이윤 극대화를 앞세워 노동자의 안전은 전혀 안중에도 없이 방치되는 실태가 어둡게 드리워져 있다"며 "산업재해가 발생하면 막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유족과 합의를 시도하고 선처를 받는 악순환을 뿌리 뽑아야 산업재해 발생률이 줄어들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어 재판부가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전지를 문 뒤에 두고 막다른 곳에서 작업하는 근로자들의 모습이 너무나도 위험하게 느껴졌다"며 "피고인들 스스로, 또는 피고인들의 가족이 그 작업장에 있었다면 불안감 느꼈을지도 모르는 일"이라고 일침을 가하자, 방청석에 있는 유족들은 오열했고 박 대표와 박 본부장은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쥐었습니다.

    박 본부장과 공범 등으로 재판에 넘겨진 아리셀 임직원 등 6명에게는 징역 2년, 금고 1∼2년, 벌금 1천만원 등이 선고됐습니다.

    김태윤 아리셀 산재피해가족협의회 공동대표는 선고 직후 "살인죄를 저지른 사람에게 사형을 구형하는데 가족 100명을 죽인 대표에 대한 징역 15년은 적다고 생각한다"며 "다만 재판부가 박순관을 중대재해처벌법 경영 책임자로 인정하고 더 이상 이런 참사가 발생하지 않게끔 판시한 부분에 대해서는 마음이 놓인다"고 입장을 밝혔습니다.

    검찰은 지난 7월 결심 공판에서 박 대표에게 징역 20년을, 박 총괄본부장에게는 징역 15년을 구형한 바 있습니다.



    심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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