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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11 (목)

    이슈 연금과 보험

    "감기 대신 중증질환에 더 쓰자"... 건강보험 재정 효율화, 국민 절반 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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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대병원 공공진료센터 1000명 조사 결과
    '희소질환 위해 감기 보장 축소' 52.7% 찬성
    "병원 처방 감기약이 약국 약보다 싼 건 문제
    경증질환 본인 부담 높이고 신약 허들 낮춰야"


    한국일보

    권용진 서울대병원 공공진료센터 교수가 16일 서울 종로구 연지동 연구실에서 본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하상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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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강보험 재정이 중증이나 희소질환에 더 많이 쓰일 수 있도록 감기 같은 경증질환 보장을 줄이는 데 국민 절반가량이 동의한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건강보험료 인상이 한계에 달한 상황에서 국민들 상당수는 이미 '감기에 드는 비용 정도는 좀 더 부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뜻이다.

    "감기 건보 안 되면? 굳이 병원 안 간다" 60%


    25일 서울대병원 공공진료센터 권용진 교수 연구진의 '중증질환 치료제 환자 접근성 강화를 위한 건보 재정 운영 효율화 방안' 연구에 따르면, '건강보험의 중증질환 보장 강화 필요성'에 대해 응답자의 74.4%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올해 7월 일반인 1,000명에게 온라인 설문조사를 한 결과다. '희귀난치성 질환 보장 강화가 필요하다'는 응답은 78.2%였다.

    문제는 보장 강화를 위해 건보료를 무작정 올릴 수 없다는 점이다. 이에 연구진은 '희귀질환 보장 강화를 위해 경증질환 보장 축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그러자 응답자의 52.7%는 '동의한다'고 답했다. 희소질환 대신 중증질환을 넣어서 물었을 때도 응답자의 46.7%가 찬성했다. 찬성 비율과 '보통이다' 응답 비율을 합하면 80% 이상이었다.

    한국일보

    24일 서울 강남구 옵티마 웰니스 뮤지엄 약국 강남점에 약들이 진열돼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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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기에 걸릴 때 대처하는 방법도 달라질 걸로 예상됐다. 경증질환에 대한 건보 보장이 축소될 경우 응답자의 60.0%가 병원 방문을 줄이겠다고 답했기 때문이다. 집에서 스스로 돌보는 자가관리 의향률은 71.1%, 의료비 추가 지불 의향률은 72.3%였다.

    "약 나왔는데도 못 쓰는 환자 없어야"


    연구진은 해외 다른 사회보험과 비교해 현재 한국의 건보 보장 방식은 이례적이라고 지적했다. 권 교수는 "사회보험을 운영하는 나라 중 한국처럼 감기에 대해 이렇게 넓게 보장해주는 나라는 없다"며 "병원에 가서 감기약을 지어 먹는 것이 약국에 직접 가서 약을 사 먹는 것보다 더 싼 상황은 분명 잘못됐다"고 했다. 과거 국가 주도로 의료보험을 시작해 국민들을 강제로 가입시키다 보니, 모든 사람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것을 우선으로 여겨 이런 결과가 됐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경증질환의 본인 부담률을 높이는 대신, 중증·희소질환 치료를 위한 신약과 의료기술의 건보 진입 문턱을 낮춰야 한다고 제언했다. 최근 10년간 신약에 투입된 건보 재정은 총 약품비의 8.5%, 전체 건보 진료비의 2.1%에 불과할 정도로 매우 낮은 편이다. 권 교수는 "국가가 건보 재정을 아끼기 위해 외국 신약에 대한 허들을 높여놨기 때문"이라며 "중증 환자가 이미 약이 나와 있는데도 못 쓰는 상황을 만들어선 안 된다"고 말했다.

    희소질환 의약품에 대한 건보 적용 신속 추진은 이재명 정부의 국정과제 중 하나다. 하지만 이에 따라 늘 수밖에 없는 의약품비를 어떻게 감당할지에 대해서는 설명이 없다. 권 교수는 "결국 우선순위를 바꿔야 한다"며 "국민들도 경증질환 보장을 줄이는 데 어느 정도 준비가 돼 있다는 점이 (이번 연구로) 확인됐다"고 말했다.

    손영하 기자 froze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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