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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11 (목)

    이슈 연금과 보험

    "노모·아들 다쳤다" 가족 총동원하고, 가짜 입원해 공진단 '냠냠'... 막장 보험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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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보험사기 1조1500억 원... 절반이 '자동차'
    전문 브로커 판치고, 가족·친구 동원 '생활형' 사기도


    한국일보

    보험사기 브로커와 허위환자가 나눈 메신저 대화내역(왼쪽). 오른쪽은 공진단. 금융감독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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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달원 A씨는 음식을 배달하던 중 다른 차에 후미를 받치는 사고를 당했다. 사고 정도가 경미해 다친 곳은 없었지만, 그때 A씨에게 다가온 건 보험설계사 B씨였다. 보험설계사는 A씨에게 "고액의 합의금을 받아주겠다"며 한방병원 허위입원을 권유했다. 명함만 설계사지, 사실상 보험사기 '브로커'인 B씨는 "입원을 해야 대안합의금을 받을 수 있다"며 "의사 진료 없이도 입원이 가능하다"고 유혹했다. 대안합의금이란 교통사고 피해자의 인적 손해에 대해 보험사가 지급하는 금전 보상으로, 향후 치료비와 휴업손해 등이 포함돼 있다.

    한방병원 입원기간은 A씨에게 '꿀맛' 같은 시간이었다. 나중에 보험처리가 가능하니 신체보양을 하라는 병원 덕분에 공진단·경옥고 등을 수도 없이 먹었다. 2주간의 입원기간 동안 외출·외박을 자유롭게 하며 배달업무를 지속했다. 그러는 동안 병원 측은 A씨의 외출·외박 기록을 조작했다. B씨는 환자를 알선해준 대가로 병원으로부터 공진단과 무료진료권, 환자 1명당 백화점 상품권 5만 원을 받아 챙겼다.

    #부부 사이인 C씨와 D씨는 온 가족을 '보험사기'에 끌어들이는 대담함을 보였다. 60대 후반 노모와 고등학생 자녀들을 차에 태워 고의 사고를 낸 뒤 고액의 보험금을 타내는 수법이었다. 가족들의 허위진술로 사고 원인을 피해자에게 몰아가고, 동승자가 많으니 청구할 수 있는 의료비도 2~3배나 되는 그야말로 일석이조의 돈벌이였다.

    이들은 교통량이 많은 곳에서 진로를 변경하는 차의 뒤나 옆을 일부러 추돌해 합의금을 타냈다. 예컨대 차선 변경이 금지된 실선 도로에서 방향지시등을 켜고 차선 변경을 하는 차를 일부러 속도를 늦추지 않고 그대로 추돌하거나, 불법 유턴 차량이 보이면 사고를 피할 수 있음에도 그대로 직진해 옆면을 박는 식이었다. 이들은 결국 금융당국에 꼬리를 밟혔는데, 사고가 너무 많았고 타낸 보험금도 많았던 것이 의심을 샀다.

    허위입원부터 치료비 과장 청구, 고의사고 유발까지... 자동차보험 사기가 그 끝을 모르고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자동차보험 사기 '판' 키운 브로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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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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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보험사기 적발 규모는 1조1,502억 원, 적발인원만 10만8,997명에 달한다. 특히 자동차보험 사기가 판을 치는데, 전체 보험사기의 절반에 가까운 5,704억 원(49.6%) 규모다. 전년 대비 증가폭(228억 원)도 가장 컸다. 브로커가 포함되고 실행에 옮기는 선수들까지 여럿 동원돼 자동차 사고 조작이나 고의충돌 등으로 거둔 수익이 늘어난 탓이다. 이중에서도 고의충돌 등 사고내용을 조작해 발생한 허위청구 금액은 824억 원에 이른다. 2022년 534억 원, 2023년 739억 원 등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보험사기가 늘어난 배경에는 전문 브로커가 있다. 가짜환자를 모집하고 이들을 병원과 연계해주는 보험 전문가들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영역을 넓혀가면서 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은 2030세대까지 보험사기에 발을 들여놓고 있는 것이다. 실제 보험사기로 적발된 인원 중 연령대별로는 60대 이상이 2만7,998명(25.7%)으로 가장 많았지만, 2030세대도 3만4,630명으로 31.8%를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컸다.

    가족 총동원한 생활형 보험사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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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험사기범이 일으키는 주요 고의사고 유형. 금융감독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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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험사기 수법이 알음알음 대중에까지 전파되면서 가족, 친구, 직장동료 단위로 은밀히 이뤄지는 생활형 사기로까지 번지고 있다. 경기 불황이 이어지면서 결국 불법으로라도 보험금을 챙기려는 이들이 늘어난 것이다. C씨 부부처럼 노모·자녀까지 허위환자로 내세우거나, 친구와 함께 음주운전 차량만 노려 고의사고를 노리는 식이다.

    직업이 일정하지 않았던 E씨도 급전이 필요한 친구 F씨를 꾀어 매일 밤 차를 끌고 유흥가로 향했다. 주점 골목을 누비며 '타깃'을 찾던 E씨는 술을 먹은 뒤 대리운전을 부르지 않고 직접 운전대를 잡는 '음주운전자'만 노렸다. 미리 계획한 장소에서 고의사고를 유발하고 "음주운전한 것을 눈감아주겠다"며 많은 합의금을 불렀다. 협박이 통하지 않으면 경찰에 신고해 궁지로 몰았다. 이들의 행각은 유흥가 일대에서 음주운전자 대상 사고가 자주 발생하는 것을 수상하게 여긴 보험사에 꼬리를 잡혔다.

    최대 10년 이하 징역... "신고하고 최대 20억 포상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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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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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융당국은 자동차보험사기 행위는 보험사기방지특별법에 따라 최대 10년 이하 징역 또는 5,000만 원 이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는 중범죄인 만큼 보험사기를 제안하는 유혹을 단호히 거절하라고 당부했다.

    실제 허위입원서류 같이 형법상 사문서 위조 혐의가 인정되면 최대 5년 이하 징역 또는 1,000만 원 이하 벌금, 병·의원의 허위진단은 의료법상 허위기록작성 행위로 최대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이 부과된다. 입원 기간 중 유가보조금을 부정 수령하면 여객운수사업법에 따라 최대 2년 이하 징역 또는 2,000만 원 이하의 벌금이 부과된다.

    올해 7월부터는 대법원 양형기준도 개정돼 사기범죄 적용 범위에 보험사기가 추가돼 형벌이 더 세졌다. 300억 원 이상 조직적 사기는 최대 권고형량이 무기징역으로 상향됐다. 보험업종 등 전문직 종사자가 직무수행 기회를 이용해 범행에 가담하면, 수법이 매우 불량하다고 보고 이를 양형 특별가중인자로 추가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비상식적인 보험사기 제안을 받으면 신고센터에 적극 제보해 달라"며 "보험사기로 확인되면 기준에 따라 최대 20억 원의 포상금을 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승엽 기자 sy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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