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태용·김태효 등 "VIP 격노 목격" 진술…'VIP 격노' 사실로 확인
VIP 격노, 이첩 보류·박정훈 수사·이종섭 대사 임명에 영향 정황
안보실·공직기강 대통령실 조직적 개입·군검찰 주도 개입 정황
VIP 향한 '빌드업' 완성 단계…구명 로비 수사는 상대적으로 더뎌
지난해 5월 취임 2주년 기자회견에서 질문에 답하는 윤석열 전 대통령. 당시 '채 상병 수사 결과를 보고 받은 뒤 격노했냐'는 질문에 '채 상병 순직 사고를 보고 받은 뒤 질책했다'고 동문서답했습니다. 〈출처=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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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8월 30일, 군검찰은 "윤석열 대통령이 격노해 채 상병 순직 사건 수사 결과가 뒤집히고 민간 경찰 사건 이첩이 보류됐다는 말을 김계환 해병대사령관에게 들었다"는 박정훈 해병대수사단장의 발언을 '망상'이라고 적어 구속영장을 청구했습니다.
그러나 2025년 7월 11일, 김태효 전 국가안보실 1차장은 순직해병 특검 사무실에 출석해 "(2023년 7월 31일 회의에서) 임기훈 국방비서관이 채 상병 순직 사건 수사 결과를 보고하자 윤 전 대통령이 크게 화를 냈다"는 취지로 진술했습니다.
김 전 비서관뿐만이 아닙니다. 당시 회의 참석자 7명(윤석열·김용현·조태용·김태효·임기훈·왕윤종·이충면) 가운데 윤 전 대통령과 김용현 당시 경호처장을 제외한 5명이 특검 조사에서 "VIP 격노를 듣거나 목격했다"는 취지로 진술했습니다.
이렇게 'VIP 격노'의 실체를 확인한 특검은 여러 갈래로 흩어져 있던 의혹을 VIP, 윤 전 대통령에 맞춰 '빌드업' 해왔습니다. 추석 연휴에도 수사를 계속해온 특검은 그동안 확보한 증거와 진술을 토대로 조만간 윤 전 대통령을 소환해 조사할 것으로 보입니다.
지난달 특검 사무실에 출석한 조태용 전 국가안보실장. 특검 조사에서 과거 입장을 뒤집고 이른바 'VIP 격노'를 목격했다고 진술했습니다. 〈출처=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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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 외압 의혹 : "격노가 죄냐" vs "관여 자체가 부적절"
━2023년 8월 28일 전하규 국방부 대변인 (격노 의혹에 대해) "전혀 사실이 아니다."
2023년 8월 30일 조태용 국가안보실장 (2023년 7월 31일 채 상병 수사 결과가 대통령에게 보고됐느냐는 질문에) "조사하는 부분에 있어서는 보고드린 바 없다."
이후 1년 가까이 박정훈 대령 혼자만의 주장으로 여겨지던 'VIP 격노설'에 대한 기류는 지난해 5월 JTBC가 '공수처가 김계환 해병대사령관의 휴대전화에서 VIP 격노에 대한 발언 녹취를 확보했고, 박 대령 외에도 김 사령관에게 VIP 격노 관련 발언을 들었다는 해병대 고위 관계자의 진술을 확보했다'는 사실을 단독 보도한 뒤로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2023년 5월 26일 성일종 국민의힘 의원 (TV, VIP 격노설 질문에) "격노한 게 죄입니까."
다음 달 21일 국회 법사위 청문회에선 '대통령실 개입'에 대한 결정적 증언이 나왔습니다.
[이건태/더불어민주당 의원]
[유재은/국방부 법무관리관]
"임기훈 비서관은 전화가 와서, 경북(경찰청)에서 저한테 전화가 올 거라는 말을 해줬습니다."
2024년 7월 1일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 (VIP 격노설 질문에) "격노설이나 진노설은 들은 바 없습니다."
2024년 7월 2일 유상범 국민의힘 의원 (라디오, VIP 격노설 질문에) "(VIP 격노설은) 실체가 없는 것으로 판단하는 것이 맞지 않겠습니까."
지난 7월, 조태용·김태효·임기훈·왕윤종·이충면의 특검 진술을 통해 'VIP 격노'가 사실로 입증된 뒤엔 'VIP 격노가 사실이라 하더라도 군통수권자인 대통령이 잘못된 수사 결과를 보고받고 제대로 수사하라고 지시할 수 있는 것 아니냐, 그게 뭐가 문제냐'는 취지의 반론이 제기됐습니다.
그러나 특검은 윤 전 대통령이 격노해 뭔가를 지시했다면 그 자체로 '범죄 혐의가 있는 군 사망 사건은 곧바로 민간 경찰로 넘겨 수사하도록 해야 한다'는 개정 군사법원법을 어긴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대통령이든 장관이든 군 사망 사건에 개입하지 말라는 것이 수십 년 동안 은폐와 조작이 벌어진 군을 고치기 위해 군사법원법을 바꾼 이유이기 때문입니다.
나아가 윤 전 대통령의 격노가 사건 이첩을 보류시키거나, 조사 결과를 바꾸거나, 박정훈 대령에 대한 불법적인 수사로 이어지거나, 외압 의혹을 막기 위해 이종섭 전 장관 호주 대사로 임명하는 과정에 영향을 미쳤다면 당연히 대통령의 직권을 남용한 것으로 판단하고 수사해 왔습니다.
지난 8월 특검 사무실에 출석한 김동혁 전 국방부 검찰단장. 채 상병 수사 외압 의혹 전반에 깊게 관여한 의혹을 받고 있습니다. 〈출처=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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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압 은폐 의혹 : 사건 회수·박 대령 영장·호주 대사 임명
━우선 박정훈 대령이 사건을 경찰로 넘긴 직후에 벌어진 사건 회수(혹은 사건 기록 탈취) 과정은 상당 부분 규명이 된 것으로 보입니다.
이첩-회수가 이뤄진 2023년 8월 2일 하루에만 윤석열·이종섭·조태용·임종득·이시원·임기훈·유재은·김계환·김동혁 등이 주고받은 수십 번의 통화로 국가안보실뿐 아니라 공직기강비서관실까지 대통령실이 조직적으로 개입한 정황, 군검찰이 주도적으로 개입한 정황이 드러났습니다.
이종섭 전 장관의 보좌관(박진희)은 이후 사건을 넘겨받은 국방부 조사본부 수사단장에게 수차례 연락해 '장관 지시'라고 언급하면서 '문제가 식별된 4명'이란 문구를 그냥 '4명'으로 하자는 등의 압력을 행사한 사실도 확인됐습니다. '문제가 식별된 4명'에는 임성근 당시 해병대1사단장이 포함돼 있습니다.
특검은 이런 과정에 '윤 전 대통령의 격노'가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의심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런 외압을 감추기 위해 '폭로자'인 박정훈 대령에 대한 군검찰의 불법적 수사가 이뤄진 정황도 살펴보고 있습니다.
"피의자(박정훈 대령)의 주장은 모두 허위이고 망상에 불과하다고 할 것입니다."
라는 군검찰의 영장 내용이 오히려 허위였다는 것이 조태용·김태효 등의 진술로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특검은 애초 영장을 작성했다고 적혀있는 A 군검사를 위주로 수사했지만 상급자인 B 군검사가 깊게 관여된 정황을 파악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또한 B 군검사가 관여한 배경에 김동혁 당시 국방부 검찰단장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특검은 군검찰이 박 대령에게 '집단항명수괴'와 같은 무리한 혐의를 적용하고 구속까지 하려던 배경에 '윤 전 대통령의 격노'를 폭로한 박 대령의 입을 막기 위한 의도가 있었던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또 공수처 피의자 신분이던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을 호주 대사로 임명하고, 무리한 임명이라는 의혹이 불거진 상황에서 출국을 강행시킨 배경에도 '윤 전 대통령의 격노'가 있었던 정황도 잡았습니다.
조태열 전 외교부 장관은 지난달 특검 조사에서 이종섭 당시 호주 대사의 귀국 명분이 된 방산협력 주요 공관장회의 급조 배경에 대해 "윤 전 대통령이 별도의 공관장 회의를 개최하라고 지시했다"는 취지로 진술했습니다.
조 전 장관의 전임자인 박진 전 외교부 장관도 "이종섭 전 장관 대사 임명 과정이 정상적이지 않았지만 윤 전 대통령의 뜻이라 어쩔 수 없었다"는 취지로 진술했습니다.
지난달 순직해병 특검 면담을 요구하고 있는 임성근 전 해병대1사단장. 특검은 채 상병 순직과 관련해 임 전 사단장에게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를 적용해 기소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출처=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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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권 남용 혐의 빌드업'은 완성 단계…남은 건 구명 로비 의혹
━이렇게 순직해병 특검은 'VIP 격노'라는 확실한 사실관계를 기반으로 수사 외압 의혹과 사건 회수, 박 대령 수사, 호주 대사 임명까지 모든 과정에 윤 전 대통령의 격노가 영향을 미쳤다는 진술을 확보했습니다. 모든 의혹의 정점에 있는 윤 전 대통령 소환을 위한 '빌드업'이 완성 단계에 왔기 때문에 주요 피의자들에 대한 신병 처리가 임박했다는 분석도 나옵니다.
이렇게 다진 의혹들을 토대로 윤 전 대통령을 수사해 '군이 자체적으로 수사해 민간 경찰로 넘겼어야 할 사건에 대통령의 격노가 영향을 미쳐 대통령실과 군, 외교부·법무부 등의 부적절한 개입이 벌어졌다'는 사실을 확인한다면, 채 상병 순직 사건 수사 외압의 실체를 밝히겠다는 특검 수사의 1차 목표가 달성될 것으로 보입니다.
특검은 여기에 더해 '윤 전 대통령 격노'의 배경에 '임성근 전 사단장에 대한 구명 로비가 있다'는 의혹까지도 규명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불거진 이종호 전 블랙펄인베스트 대표 등 이른바 '멋쟁해병' 단톡방을 중심으로 한 임성근 전 사단장 구명 로비가 있었다는 의혹 그리고 특검 수사 과정에서 새롭게 제기된 개신교계 구명 로비 의혹입니다.
특검은 이 전 대표 등 주요 피의자들의 휴대전화를 압수했지만 수차례 휴대전화가 바뀌어 결정적 증거 확보에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또 로비 의혹을 받는 개신교계 인사들이 특검 수사에 반발하면서 출석 요구에 불응해 법원에 공판 전 증인신문을 청구하는 등 진술 확보에도 난항을 겪는 것으로 전해집니다.
때문에 '정점으로 향하는 빌드업'이 완료된 외압 의혹 수사에 비해 구명 로비 의혹 수사가 상대적으로 속도가 더딜 수밖에 없다는 우려도 나옵니다.
유선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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