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혁진 무소속 의원이 지난 13일 국회 법사위 대법원 국정감사에서 ‘조요토미 희대요시’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질의하고 있다. 박민규 선임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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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장을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빗댄 최혁진 무소속 의원이 벌써 후원금을 다 채웠다는 소식에 자괴감이 들었다.”
국민의힘 한 초선 의원은 26일 올해 국정감사를 평가해달라는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그는 “선동 정치를 (유권자들이) 비판해줘야 국회의원들도 눈치를 볼 텐데, 오히려 응원하는 형국”이라며 “정책 질의를 하면 주목받지 못하니, 차라리 선동 정치에 올라타는 게 낫지 않겠냐는 딜레마를 의원들이 느끼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종반전에 접어든 올해 국정감사에서는 여야를 막론한 근거없는 의혹 제기나 막말, 고성과 같은 자극적 언행이 두드러졌다. 강성 지지층 입맛에 맞출수록 개별 정치인은 이익을 얻는 악순환 구조가 뿌리내렸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전문가들 사이에서 나온다.
주요 정당이 당내 경선 등 핵심 의사 결정 과정에서 당심의 영향력을 확대해온 점이 한 요인으로 지목된다. 공천을 받거나 지도부에 진출해 정치적 체급을 키우려면 이들에게 ‘확실한 내 편’이라는 인식을 심어줘야 하는 상황이 됐기 때문이다. 책임당원 투표 80%, 여론조사 20% 규칙으로 치러진 지난 8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에서 장동혁 대표가 김문수 전 고용노동부 장관을 당원투표에서 앞서며 당선된 것이 대표적 사례다. 장 대표는 전당대회 기간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반대 세력의 지지를 얻기 위한 강경 발언을 쏟아냈다.
당대표 선거에 권리당원 투표를 55% 비율로 반영하는 더불어민주당도 마찬가지다. 정청래 대표가 강성 지지층에 힘입어 당선됐다는 분석이 대체적이다. 민주당은 국회의장·부의장 후보와 원내대표 선출에도 권리당원 투표를 20% 반영한다.
조진만 덕성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개별 정치인이 강성 지지층의 요구에 부응하면 인지도를 높여 후원금을 걷고 지도부로 성장하는 데 이익이 된다”고 말했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당에 상향식 의사 결정 구조가 도입되고 일반 당원들이 문자 메시지를 통해 ‘더 센 정책을 추진하라’고 일상적으로 압력을 넣는 상황이 (정치인들의 언행에) 영향을 준다”고 말했다.
상대 진영을 향한 전투적 태도에 박수를 보내는 정치 문화가 각 정당에 자리잡은 점도 요인으로 꼽힌다. 여야 지도부 모두 이를 자제시키려는 움직임은 보이지 않는다. 민주당에선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지지층의 시선을 잡기 위한 경쟁이 불붙는 양상이고, 국민의힘에선 장 대표는 당성을 공천 기준으로 삼겠다고 공언해왔다. 조 교수는 “거대양당에 지지층만 바라보는 언행을 자제시킬 수 있는 리더십이 없다는 점도 문제”라고 했다.
유튜브 쇼츠 등을 통해 정치인이 직접 상대 진영에 대한 지지층의 증오심을 자극할 수 있는 미디어 환경이 조성되며 강성 지지층에 올라타려는 모습이 더욱 뚜렷해지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민주당 한 의원실 보좌진은 “쇼츠 제작 역량이 보좌직원의 기본 소양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현우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정치인이 쇼츠를 올려도 기성 언론이 이를 다루지 않으면 영향력을 갖기 어렵다”며 “조목조목 잘 따지고 질서 있게 진행되는 국감 내용은 잘 다루지 않는 기성 언론에도 책임이 있다”고 지적했다.
우원식 국회의장은 이날 국회 본회의에서 “도 넘는 과격하고 자극적인 언행은 원만한 국회 운영을 어렵게 하고 국회에 대한 국민 신뢰를 스스로 갉아먹는 일”이라며 국감 과정에서 과도한 정치 공방을 자제해달라고 당부했다.
김병관 기자 bg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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