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란 사건을 수사하는 조은석 특별검사팀의 박지영 특검보가 지난 10일 특검 사무실이 마련된 서울 서초구 서울고검 기자실에서 브리핑을 열고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등을 일반이적 혐의로 기소하면서 여인형 전 국군방첩사령관의 휴대전화 메모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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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란 사건을 수사하는 조은석 특별검사팀이 활동기간 종료를 한달 앞두고 막바지 수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특검팀은 비상계엄 당시 국무회의에 참석했던 조태용 전 국정원장을 국정원법 위반 등 혐의로 구속시킨 뒤 박성재 전 법무부 장관에게 내란 중요임무종사 혐의 등을 적용해 구속영장을 재청구했다. 법원에서 한 차례 기각된 뒤 보강 수사를 통해 재청구한 구속영장이었기에 특검팀은 영장 발부를 자신했으나 13일 또다시 기각됐다. “여전히 혐의에 대한 다툼의 여지가 있다”는 기각 사유를 받아든 특검팀으로서는 불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기는 수순을 밟을 것으로 보인다.
이제 특검팀은 비상계엄 당시 국회의 계엄 해제요구결의안 의결을 방해한 혐의(내란 중요임무 종사)로 구속영장을 청구한 추경호 전 국민의힘 원내대표로 수사의 무게 중심을 옮길 예정이다. 추 의원의 체포동의안은 오는 27일 국회 본회의에서 표결이 이뤄질 예정이다. 비상계엄 당시 내란의 공범 의혹을 받는 국무위원과 국민의힘 핵심 인물에 대한 수사가 마무리 수순에 들어간 것이다.
특검, 외환죄 수사 어려움 딛고 일반이적죄 적용
이에 앞서 특검팀은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여인형 전 국군방첩사령관에게 일반이적 혐의를 적용해 기소하기도 했다. 특검팀 출범 초기부터 외환 수사는 쉽지 않다는 전망이 많았다. 적용 사례나 판례 자체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외환유치죄는 ‘외국과 통모’하여 전쟁을 일으키거나 국가에 항적한 경우 적용된다. 하지만 북한을 외국으로 볼 수 있을지, 북한과의 통모 여부가 입증이 가능할지 등이 쟁점이 됐다. 이 때문에 수사는 “대한민국의 군사상 이익을 해하거나 적국에 군사상 이익을 공여”한 경우 적용하는 일반이적 혐의를 규명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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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검팀은 여인형 전 사령관에게서 돌파구를 찾았다. 특검팀이 확보한 여 전 사령관의 휴대전화 메모에는 군사적 충돌을 계엄의 명분으로 사용하려 한 정황이 나타났다. 여 전 사령관은 지난해 10월18일 ‘불안정한 상황’을 만들어야 한다며 “북한의 러시아 전투병력 파병 공개”를 통해 “글로벌 안보 상황의 위험성을 국민들이 체감”하도록 해야 한다고 메모에 적었다. 실제 국정원은 같은날 “북한 특수부대 러-우크라 전쟁 참전 확인”이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누리집에 게시했다. 국정원이 구체적인 북한군 정보 사안을 공식적으로 공개한 건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아울러 여 전 사령관의 메모에는 “북 전략무기 시험발사시 우리 고위력 미사일 시험발사 공개”라는 내용도 있었는데 이런 계획도 실행됐다. 북한이 지난해 10월31일 오전 7시10분께 평양 인근에서 동해상으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인 ‘화성포-19형’을, 11월5일에는 단거리탄도미사일(SRBM)인 케이엔(KN)-25를 발사했다. 이에 우리군은 여 전 사령관의 메모대로 지난해 11월7일 서해상에서 ‘고위력 미사일’인 현무2B의 최초 실사격 훈련을 진행했다. 현무 시리즈는 한국군의 대표적인 고위력 미사일이다. 이중 현무2B는 탄두 중량만 1t에 달하며 사정거리는 500㎞에 이른다. 국방부는 이튿날인 11월8일 언론에 실사격 장면을 공개했고, 국방홍보원도 같은날 유튜브 채널을 통해 '현무2 발사 과정 최초 공개'라는 제목의 영상을 올렸다. 여 전 사령관의 메모를 ‘개인의 공상’으로 볼 수 없는 이유다. 같은 메모에는 북한의 도발을 유도할 방안도 구체적으로 담겼다. 김정은 휴양소나 핵시설 등을 목표로 북한이 군사적으로 반응할 수밖에 없도록 움직인다는 계획이었다.
국방홍보원이 지난해 11월8일 공개한 현무2B 시험발사 영상. 국방홍보원 유튜브 갈무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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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울러 지난해 10월23일 여 전 사령관의 메모에는 “미니멈: 안보위기, 맥시멈: 노아의 홍수” 등 전면적인 무력 충돌까지 염두에 둔 내용도 발견됐다. 특히 같은날 작성된 “충돌 전후 군사회담 선 제의 고려”라는 대목은 북한과의 군사적 충돌을 계엄의 명분으로 사용한 뒤 이후 확전을 막고 상황을 수습하는 방안까지 강구한 정황으로 보인다.
특검팀은 이런 내용을 바탕으로 윤 전 대통령 등이 북한의 군사적 공격을 유도하기 위해 평양에 드론을 침투했고 이는 대한민국의 군사적 이익을 해할 목적이 분명하다고 판단해 관련자들을 일반이적 혐의로 기소했다.
고발 사건 수사도 박차
특검팀은 이와 함께 특검팀에 이첩된 고발 사건에 대한 분류 작업도 진행하고 있다. 특검팀이 진행할 사건과 특검팀 활동 종료 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로 넘길 사건을 정리하고 있는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시민단체의 고발이 있었던 황교안 전 국무총리의 내란선동 혐의 사건이다. 특검팀은 앞서 두차례 압수수색에 불응한 황 전 총리를 지난 12일 체포한 뒤 바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황 전 총리는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난해 12월3일 밤 자신의 페이스북에 “나라를 망가뜨린 종북주사파 세력과 부정선거 세력을 이번에 반드시 척결해야 한다”, “우원식 국회의장을 체포하라. 대통령 조치를 정면으로 방해하는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도 체포하라”고 적었다. 또 윤 전 대통령 탄핵 재판이 진행 중인 지난 3월 헌법재판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헌재가 윤 전 대통령 탄핵 소추를 인용한다면 폭동이 일어날 것”이라고 주장했다. 압수수색에 저항했던 황 전 총리에게는 내란선동 혐의와 함께 공무집행방해와 내란특검법 위반(수사방해) 혐의가 적용됐다.
하지만 황 전 총리의 구속영장은 ‘소명 부족’을 이유로 법원에서 기각됐다. 박정호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14일 오전 3시 “구속의 필요성이 부족하다. 도주나 증거인멸의 염려 등 구속 사유에 대하여도 소명이 부족하다. 객관적인 사실관계에 대해선 증거가 상당 부분 수집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영장실질심사 뒤 서울구치소에서 대기하던 황 전 총리는 곧장 풀려났다. 특검팀은 황 전 총리를 불구속기소할 예정이다.
특검팀은 수사 마무리 작업과 함께 대통령실에 보고할 백서 형식의 보고서 작성 작업도 진행하고 있다. 다만 보고서에는 외환 관련 내용 등 민감함 부분이 포함되어 있어 일반에 공개하지는 않을 것으로 알려졌다. 특검팀의 활동 종료일은 오는 12월14일이다.
강재구 기자 j9@hani.co.kr 정환봉 기자 bon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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