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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11 (목)

    이슈 미술의 세계

    100년만에 다시…파리, 글로벌 예술 수도로 떠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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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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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리에 다녀오지 않았으면 큰일 날 뻔했어요. 미술품이 판매되는 속도가 남달랐어요."

    "아트바젤 파리가 '바젤 바젤'(스위스 아트바젤)을 넘어섰다고 봅니다. 한 달 전에 열린 프리즈 런던보다 더 북적이고 부대 행사도 많아서 파리로 모두가 모였어요."

    지난달 프랑스 파리를 다녀온 국내 미술 애호가들의 입에서 파리 예찬이 쏟아지고 있다. 이들의 공통적인 의견은 파리가 동시대 예술 중심지로 이토록 빠르게 급부상할 줄 몰랐다는 것이다. 지난달 22부터 26일까지 파리 그랑팔레에서 열린 '아트바젤 파리'는 100년 만에 동시대 예술의 도시로 귀환한 파리의 현주소를 압축적으로 보여줬다는 평가다. 아트바젤을 유치한 지 4년 만에 전 세계 슈퍼리치들의 머릿속에 '10월엔 파리를 가야 한다'는 공식을 새겼기 때문이다.

    그간 파리 미술 투어는 루브르 박물관에서 르네상스와 바로크 회화를 보고, 오르세 미술관에서 빈센트 반 고흐의 인상주의 그림을 본 뒤, 오랑주리 미술관에서 클로드 모네의 '수련'을 보는 코스였다. 여기에 현대미술의 흐름을 보고 싶다면 퐁피두센터나 '팔레드도쿄'에 가면 끝이었다. 그러나 최근 파리가 완전히 바뀌었다. 세계 최고급 아트페어가 열리는 '아트위크'에는 크리스티 등 메이저 경매와 주요 미술관의 대형 전시가 맞물려 미술로 뜨거운 도시로 변모한다.

    이는 런던이 브렉시트로 휘청거리며 물류비와 세금이 인상되고, 스위스의 비밀 금융주의가 약화되면서 명품 브랜드의 본고장인 파리로 미술 자본이 대이동했다는 분석을 뒷받침한다. 미국인들의 파리 사랑도 유럽 미술 중심지로 파리가 급부상하는 배경이다. 파리에선 미술만 보는 것이 아니라 쇼핑과 음식, 와인 등 예술과 낭만을 함께 즐기려는 컬렉터들의 수요가 충족되기 때문이다.

    이 같은 거대한 흐름을 주도한 인물은 프랑스의 두 슈퍼리치, 루이비통 브랜드를 갖고 있는 LVMH의 베르나르 아르노(76)와 구찌·발렌시아가·YSL 등이 속한 케링그룹의 프랑수아 피노(89)다.

    아르노는 2014년 프랭크 게리가 설계한 돛단배 형태의 '루이비통 재단 미술관'을 파리 불로뉴숲에 개관하며 화제의 블록버스터 전시를 이어가고 있다. 장미셸 바스키아, 존 미첼, 마크 로스코, 데이비드 호크니 등을 거쳐 이번 아트바젤 시즌에는 독일의 거장 게르하르트 리히터 회고전을 개막해 호평을 받고 있다.

    프랑수아 피노 역시 패션계 거물인 동시에 세계적 경매사 크리스티의 소유주이자 1만점이 넘는 방대한 컬렉션을 보유한 미술계 큰손이다. 그는 2022년 루브르 인근 18세기 건물 '부르스 드 코메르스'를 일본 건축가 안도 다다오와 함께 현대미술관으로 탈바꿈시킨 뒤 이탈리아 베네치아 '팔라초 그라시'와 '푼타델라 도가나'에 분산 수용됐던 자신의 방대한 컬렉션 일부를 파리로 옮겨왔다.

    이 미술관에서는 지난달 아트위크 때 1960년대 미술 사조인 '미니멀리즘'을 재해석한 '미니멀' 전을 열어 주목받았다. 이 전시는 미니멀리즘이 도널드 저드, 칼 안드레 등 서양 백인 중심의 미술 흐름이라는 편견을 깨고 아시아와 여성 작가들의 참여를 강조했으며, 일본 모노하 운동에 가담했던 이우환 작품도 소개했다.

    매일경제

    18세기 건물을 개조한 피노 컬렉션 '부르스 드 코메르스'에서 아트바젤 파리 기간 중에 '미니멀' 전시를 열어 큰 호응을 얻었다. 피노컬렉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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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 아트바젤 파리는 처음으로 'VIP 데이' 하루 전에 'VVIP 데이'를 도입해 큰 성공을 거뒀다. 참여하는 갤러리당 초청 가능한 VVIP 고객을 6명으로 제한한 소수 정예 전략으로, 첫날부터 작품들이 불티나게 팔려나간 원동력이 됐다. 화이트큐브에서는 에티오피아 출신의 미국 여성 추상작가 줄리 머레투(55)의 'Charioteer'가 1150만달러(약 163억원)에 팔리는 등 고가 작품 거래가 활발히 이뤄졌다.

    크리스티 매출에서도 파리의 급성장은 눈에 띈다. 지난해 크리스티 매출에서는 미주 42%, 유럽 32%, 아시아·태평양 26%로 나뉘었는데, 파리 경매 매출액은 전년 대비 23% 급증했다.

    파리의 부상은 100년 만에 동시대 예술의 수도가 다시 파리로 돌아오고 있음을 의미하는 역사적 사건으로 평가받는다. 19세기 후반부터 1920년대까지 파리는 인상주의, 입체파, 초현실주의의 무대였으나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그 중심은 뉴욕으로 넘어갔다. 추상표현주의와 미니멀리즘, 팝아트가 뉴욕을 새로운 '현대미술의 수도'로 만들었다. 1990년대에는 YBA(영국 청년 예술가) 열풍과 2000년 5월 테이트모던의 개관으로 런던이 두각을 나타냈으나, 이제 그 흐름이 다시 파리로 옮겨가고 있는 것이다.

    파리의 독특한 점은 명품 자본과 예술 인프라스트럭처의 강력한 결합이다. 명품 브랜드들은 경기 침체와 시장 불확실성으로 인해 매출이 예전 같지 않은 상황에서 제품에 예술적 가치와 희소성, 특별함을 부여해 부가가치를 높이고 브랜드 충성도를 강화하기 위해 아트 마케팅과 협업을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다. 브랜드와 아트의 통합 생태계를 만들어낸 것이다. 이는 익명성에서 공개성으로, 개인 후원에서 브랜드 주도의 문화 자본 투자로 예술 후원 구조 자체가 변모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이향휘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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