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서울 동작구 서울여성플라자 국제회의장 무대에 오른 한봉교씨(68)가 탈시설 이후의 삶에 대해 증언하고 있다. 우혜림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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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오후 2시 서울 동작구의 한 회의장 무대에 오른 한봉교씨(68)가 마이크를 잡았다. 한씨는 활동지원사의 도움을 받아 차근차근 입을 뗐다. “저는 아침을 먹고 운동을 하러 갑니다. 지하철 타고 야학에 가서 공부도 합니다. 공부 마치고 까만 커피를 마십니다.” 말끝마다 한씨의 너털웃음이 따라붙었다. 그는 장애인 시설에서 지내다 약 4년 전 대구의 자립생활주택으로 옮겨왔다. “이번 달엔 처음으로 일본에 갑니다. 여러분도 재밌게 살길 바랍니다.” 한씨가 말하자 박수가 터져 나왔다.
이날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등 주최로 ‘2025 탈시설 당사자 증언대회’가 열렸다. 지역사회에서 자립해 살아가는 장애인들에게 주는 ‘자립왕상’을 받은 장애인 13명이 탈시설 이후의 삶을 들려줬다. 이들은 탈시설이 “개인의 선택을 넘어 인간다운 삶을 위한 기본권”이라고 말했다.
탈시설한 장애인들. 경향신문 자료사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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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시설’은 장애인이 집단수용시설이 아닌 지역사회에서 자립해 살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삶에 대한 통제권을 갖기 힘든 거주시설에서 벗어나 개인별 주택에서 자립 서비스를 받으며 자율적으로 살아가는 방식이다. 2007년 한국이 비준한 유엔장애인권리협약은 이런 장애인의 지역사회 자립 권리를 명시했다. 2023년 기준 한국 장애인거주시설 1529개소에 거주하는 장애인은 2만7352명이다.
국가인권위원회가 2018년 중증·정신장애인 수용시설 입소자 1500명에 대해 처음으로 실태조사를 해보니 중증장애인의 67.9%, 정신장애인의 62.2%가 ‘비자발적’으로 입소했다. 지난해 9월엔 경기 파주시의 한 장애인 거주시설에서 거동이 불편한 장애인 A씨가 위생 패드조차 갈지 않은 채 방치됐다가 패혈증으로 숨졌다.
17일 서울 동작구 서울여성플라자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2025 탈시서 당사자 증언대회’에 탈시설 당사자 등이 참가하고 있다. 우혜림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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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시설은 단순히 시설에서 나오기만 하면 되는 일이 아니다. 장애인이 자립해 살아갈 수 있는 주택과 활동지원 시간 등 복지 서비스가 충분히 보장돼야 한다.
시설에서 나와 자립생활을 한 지 3년이 된 배유화씨는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하기 위해 자립을 원했지만 정작 하고 싶은 것을 하기 위해선 더 많은 활동지원 시간이 필요했다”며 “충분한 시간이 지원된다면 지금보다 더 많은 사람이 자신감을 가지고 자립하리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초현씨는 “탈시설을 마음먹고 내 돈으론 집을 구할 수 없다는 것 때문에 많이 아팠다”고 말했다.
17일 서울 동작구 서울여성플라자 국제회의장에서 ‘2025 탈시서 당사자 증언대회’가 열리고 있다. 우혜림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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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일 서미화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은‘장애인 탈시설 지원 등에 관한 법률안’(탈시설지원법)을 공동 발의했다. 법안엔 탈시설을 지원하기 위한 국가 책무를 규정하고 오는 2041년까지 장애인 거주시설을 단계적으로 폐지하는 내용이 담겼다.
☞ 갈지 않은 위생패드, 방에는 곰팡이…장애인 잡은 장애인시설
https://www.khan.co.kr/article/202509232033015#ENT
☞ [단독]탈시설 시범사업 1년 살펴보니···참여자 모두 “자립생활 만족”
https://www.khan.co.kr/article/202303191535001#ENT
우혜림 기자 sah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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