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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06 (토)

    이슈 공공요금 인상 파장

    ‘책 읽는 경기도’ 만든다더니…작은도서관은 냉난방비도 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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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겨레

    학생들이 지난 13일 경기도 여주시 창동 토닥토닥그림책도서관에서 각종 활동을 하고 있다. 이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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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연령대가 다 찾지만, 요즘은 아이들이 많이 오는 편이에요. 이제 학교 끝날 시간이니 오기 시작할 거예요.”



    지난 13일 오후 2시께 경기도 여주시 창동 토닥토닥그림책도서관. 활동가 권산(28)씨 말이 끝나기 무섭게 계단 밑에서 아이들이 모여드는 소리가 들렸다. 한국 초등학교에 가기 전 적응교육을 받는 카자흐스탄·베트남 출신 학생들과 함께 하교 뒤 달려온 한국 아이들까지 더해져 도서관은 금세 북적거렸다. 여주 한글시장 상가 건물 3층에 자리잡은 이곳은 여주에서 마을교육공동체 활동을 하는 비영리단체 ‘여주사람들’이 2018년 문을 열었다.



    7년째 활동을 이어온 도서관은 요즘 부쩍 추워진 날씨에 고민이 커졌다. 경기도가 그동안 작은도서관에 나오던 냉난방비 지원 예산을 내년부터 전액 삭감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권씨는 “오늘은 날씨가 따뜻한 편이라 이 정도지만, 도서관 창이 커서 겨울이 오면 곧 매우 추워질 것”이라고 했다. 권씨가 가리킨 방향을 보니 도서관 바닥엔 전기장판 3개가 그동안 도서관이 겪은 추위를 방증하고 있었다. 권씨는 “난방기만으로는 부족해 전기장판까지 깔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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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도 여주시 창동 토닥토닥그림책도서관에 깔린 전기장판. 이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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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도는 “아이·노인 등 취약계층이 많이 이용하는 작은도서관을 마을 쉼터로 만들겠다”며 2016년 일부 지원을 시작으로, 2017년부터 도서관에 냉난방비를 비롯해 냉난방 기구를 본격 지원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도는 예산 문제를 이유로 내년부터 이 지원을 끊는다. 경기도 관계자는 “올해 전체적으로 재정 형편이 어려워 작은도서관 운영에 필요한 필수 사업을 유지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내린 결정”이라고 했다. 올해 도가 27개 시·군의 도내 작은도서관 323곳에 지원한 냉난방비는 6억원으로, 이 중 시·군이 부담한 4억2천만원을 빼면 실제로 도가 낸 금액은 1억8천만원이다.



    작은도서관들은 반발하고 있다. 도서관이 그동안 더위와 추위를 피하는 주민들 쉼터 구실을 해왔는데, 이런 공공성이 약화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대부분 민간 후원으로 운영하는 도서관 입장에선 최근 이른 한파에 난방비 상승까지 겹친 상황에서 “올겨울을 나기가 막막하다”는 고민도 있다. 경기도작은도서관협의회 관계자는 “작은도서관은 단순히 책을 읽는 곳이 아니라 마을 곳곳에서 사람들과 촘촘한 관계망을 이어가고 있는 장소”라며 “이번 예산 삭감은 아동, 돌봄 취약계층, 노인, 독거 가구 등의 삶에 직접 영향을 줄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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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동연 경기도지사가 지난달 경기도서관 개관식에서 발언하고 있다. 경기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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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내 도서관 정책을 총괄할 경기도서관이 문을 연 상황에서 ‘실핏줄’에 해당하는 작은도서관 지원 예산 삭감은 모순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 김동연 경기지사는 경기도서관 개관을 계기로 도내 도서관을 더욱 활성화하겠다는 뜻을 밝혀왔다. 김 지사는 지난 2월 파주시에서 열린 ‘천권으로’ 비전 선포식에서 작은도서관의 역할을 강조하기도 했다. 하지만 정작 도서관 관련 예산은 지난해보다 전반적으로 줄어든 것으로 파악됐다. 도내 한 작은도서관 관계자는 “정책도서관인 경기도서관이 문을 연 만큼 오히려 경기도 곳곳에 있는 도서관 활성화를 위한 지원이 필요한 상황에서 정책이 완전히 역행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2026년 경기도 본예산은 39조9046억원으로, 이번에 삭감한 도서관 냉난방비 지원금(1억8천만원)은 전체 예산의 0.00045% 수준이다.



    글·사진 이준희 기자 givenhapp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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