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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문의 없어요” 이송 거부… 추락한 고교생 응급실 찾다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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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교 건물서 추락, 교사가 발견

    1시간 동안 병원 못찾고 숨져

    부산 도심에서 다친 고등학생을 태운 구급차가 1시간 동안 진료 가능한 병원을 찾지 못해 결국 학생이 숨진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병원들은 전문의가 없다는 이유로 환자 이송을 거부한 것으로 조사됐다. 시군 지역에서 병원을 찾지 못해 이른바 ‘응급실 뺑뺑이’를 도는 경우는 있었지만 대도시에선 드문 일이다.

    18일 부산소방재난본부 등에 따르면, 지난달 20일 오전 6시 17분쯤 부산의 한 고등학교에서 A(18)군이 쓰러진 채 발견됐다. 경찰 조사 결과 A군은 학교 건물에서 밖으로 추락했다고 한다. 출근하던 교사가 A군을 발견해 119에 신고했다.

    소방 당국은 신고 접수 16분 만인 오전 6시 33분쯤 현장에 도착했다. 소방 당국 관계자는 “당시 A군은 의식이 혼미한 상태로 경련과 호흡 곤란 등 증상을 보였다”며 “이름을 부르면 몸부림을 쳤다”고 했다. 구급대원은 골절이나 혈흔, 부종 등 눈에 띄는 외상이 없어 A군이 추락한 사실은 몰랐다고 한다. A군을 발견한 교사도 119에 “학생이 경련을 일으키고 있다”고 신고했다고 한다.

    구급대원은 A군을 구급차에 태운 뒤 이송할 병원을 찾았다. 소방 당국 관계자는 “부산 지역 대형 병원 5곳에 전화를 해 A군의 증상을 얘기했으나 모두 이송을 거부했다”고 밝혔다. 병원들은 “A군은 소아신경과 진료가 필요한데 소아신경과 전문의가 없어 받을 수 없다”고 했다고 한다. A군은 성인이 아니라 소아신경과 진료 대상이라고 한다. 소방 당국 관계자는 “병원들은 ‘배후 진료가 어렵다’면서 거절했다”고 전했다. 응급처치를 한 뒤 후속 진료를 할 전문의가 없다는 것이다.

    구급대원은 부산소방재난본부 구급상황관리센터에 이송 가능한 병원을 알아봐 달라고 요청했다. 센터는 구급대원이 연락한 병원 3곳을 포함해 총 8곳에 연락했으나 이번에도 비슷한 이유로 거절당했다고 한다. 소방 당국 관계자는 “경남 창원에 있는 병원까지 연락했지만 A군을 옮길 병원을 찾지 못했다”고 했다.

    그러는 사이 1시간이 흘렀고 A군은 오전 7시 25분쯤 심정지 상태에 빠졌다.

    구급대원은 심폐 소생술을 하며 A군을 가까운 병원으로 옮겼다. 이 병원은 학교 근처에 있는 종합 병원이라고 한다. 환자가 심정지 상태에 빠질 경우 가까운 병원은 의무적으로 환자를 받아야 한다. 그러나 A군은 이날 오전 8시 30분쯤 결국 숨졌다고 한다.

    이 사건을 두고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는 “우리나라 소아 의료의 실상이 드러났다”는 평가가 나왔다. “일단 응급처치를 한 뒤 후속 진료를 해도 되는데 병원들의 대응이 이해가 안 간다” “소아과나 신경외과 전문의가 보면 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었다.

    부산 지역의 한 대학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구급대원이 A군의 상태를 정확하게 판단하지 못한 채 증상을 설명한 측면도 있다”며 “병원들이 A군을 간질 환자로 봤을 수 있다”고 했다. 의료계 관계자는 “요즘 특정 과목 쏠림 현상이 심해 대도시 병원에서도 소아신경과 전문의를 찾기 어렵다”고 했다.

    [부산=권태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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