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실장, 野김은혜 질의에 고성
김 실장은 이날 대통령실 내년도 예산안을 논의하는 국회 운영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했다. ‘대통령실 3실장’ 가운데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대통령 해외 순방에 동행해 불참했다.
예년처럼 “내년도 예산안이 원안대로 통과될 수 있도록 위원님들의 협조를 부탁드린다”는 김 실장의 모두 발언으로 시작한 회의 분위기는 국민의힘 김은혜 의원 질의 과정에서 고성으로 바뀌었다. 김 의원은 김 실장의 딸이 서울에 전세로 거주하는 점을 언급하며 “전세금은 누가 모은 겁니까”라고 했다. 지난 9월 공직자 재산 공개에 따르면 김 실장 장녀는 서울 서초구 방배동 삼호아파트(81.39㎥) 절반의 전세권(3억원)을 갖고 있다. 김 실장은 “딸이 저축을 한 게 있고, 제가 좀 빌려준 게 있다”고 했다.
김 의원은 김 실장의 갭 투자(전세 끼고 매매) 의혹을 제기하고 정부가 내년도 예산안에서 임대주택 예산을 늘리면서 주택 구매·전세 자금 융자는 대폭 삭감한 것을 따졌다. 그러면서 “따님한테 임대주택에 살라고 이야기하고 싶으시냐”고 했다. 정부는 올해 14조원이었던 주택 구매·전세자금 융자 사업 예산을 내년 10조3000억원으로 줄였다. 대신 임대주택 지원(융자·출자) 사업 예산은 22조8000억원으로 올해(15조4000억원)보다 증액했다.
김 실장은 목소리를 높여 “딸을 거명해서 그렇게 할 필요 없고, 생애 최초 (주택 구매), 청년들을 위한 대출을 줄인 것도 없다”고 했다. 김 실장은 질의 시간이 끝나 마이크가 꺼진 상황에서도 김 의원을 향해 “가족을 엮어서 왜 그렇게 말씀하느냐”며 항의를 했다. 옆자리에 있던 우상호 대통령 정무수석이 최소 다섯 차례 김 실장의 손을 잡으며 말렸지만 김 실장은 “공직자 아버지를 둬서 평생 눈치 보고 살면서 전세(보증금) 부족한 딸에게 갭 투자가 무슨 말씀이냐”고 했다.
국회 운영위원장인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는 여섯 차례 자제를 요청하고도 김 실장이 항의를 멈추지 않자 큰 소리로 “정책실장! 지금 뭐 하는 건가. 여기가 정책실장이 화내는 곳인가”라고 했다. 김 실장은 그제야 “송구하다”고 했다. 이 과정을 지켜본 국회 관계자는 “김 실장이 본인의 갭 투자 의혹에 대한 질의를 가족(딸) 문제로 확장한 것으로 오해한 것 같았다”고 했다.
국민의힘은 이날 논평을 내고 “(김 실장이) 청년 전세난을 강조하고 한 질의에 ‘딸을 거명하지 마라’는 분노를 보였다”며 부동산 정책의 실패를 자인한 것이라고 했다. 김은혜 의원은 운영위 회의 말미에 “정책실장님은 자신의 딸을 생각하는 그 마음으로 대출 못 받고 집도 못 사는 모든 국민의 딸을 생각해 주시기 바란다”고 했다.
이날 김 실장이 격앙된 반응을 보인 데 대해, 한 여당 의원은 “이재명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대해 야당은 물론 여당 내에서도 우려가 나오는 상황에서 정책 주요 입안자인 김 실장의 그간 느꼈던 감정과 스트레스가 드러난 것 아니겠느냐”고 했다. 정치권 일각에선 김 실장의 행동이 내년 지방선거 출마를 염두에 둔 것 아니냐는 말도 나왔다. 전남 무안 출신인 김 실장은 전남지사 후보군으로 거론되고 있다. 국민의힘 의원에게 강하게 맞서는 모습을 보이며 여권 지지자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기려 했다는 해석이다. 정치권 관계자는 “어떤 이유에서든 대통령실 소속 장관급 인사가 국회에서 절제되지 못한 행동을 보인 것은 부적절하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권순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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