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도시가 무너진다] <2>
사라진 일자리, 팍팍해진 살림
포항철강산단에서 가동을 멈춘 공장은 총 36곳. 10곳 중 1곳꼴이다. 한 산단 관계자는 “나머지 공장도 죽지 못해 버티고 있다”며 “실적이 계속 나빠져 문 닫는 공장이 늘어날 것”이라고 했다.
‘철강 수도’ 포항이 녹슬어 가고 있다. 국내 건설 경기 악화와 중국발(發) 글로벌 공급 과잉에 허덕이던 포항은 최근 미국발 관세 폭탄까지 맞았다. 3중고다. 산단 기업들의 올 1~9월 생산액은 10조4974억원으로 2022년 이후 3년 연속 마이너스다.
그래픽=김성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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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둘러본 포항 시내는 뒤숭숭한 모습이었다. 시민들은 “근로자들이 이미 일터에서 쫓겨나고 있다”고 했다. 작년 7월 포스코가 1제강 공장 문을 닫았다. 포스코가 공장 문을 닫기는 1973년 설립 이후 51년 만이다. 그만큼 시민들에겐 충격이었다고 한다. 작년 11월에는 1선재 공장도 폐쇄했다. 올 6월에는 국내 2위 철강 업체인 현대제철이 2공장의 가동을 중단했다. 현대제철은 지난 3월과 8월 두 차례 희망 퇴직을 실시했다.
하도급 업체는 더 어렵다. 한 업체 직원 이모(46)씨는 “회사가 정규직을 대부분 내보낸 뒤 해고가 자유로운 6개월짜리 촉탁직을 대신 채용했다”며 “일이 서툰 촉탁직들이 무리하게 일하다 보니 안전사고도 잦다”고 했다. 올 초에는 연장 근무를 하던 촉탁직 근로자가 유압 커터에 손가락이 잘리는 사고도 있었다고 한다. 이씨는 “포스코가 도급 단가를 확 줄여 하루만 써도 시커메지는 목장갑도 빨아 쓴다”고 했다. 또 다른 하도급 업체 직원 김모(42)씨는 “지금은 에어컨이 고장 나거나 형광등이 깨져도 ‘버틸 수 있을 때까지 버티라’고 한다”며 “체육대회, 야유회도 다 사라졌다”고 했다.
그나마 공장을 돌리는 업체들은 미국의 철강 관세 때문에 애써 만들어 놓은 제품을 출하하지 못하고 있다. A사 임원 김모(54)씨는 “25%였던 관세가 50%로 뛰어 수출해도 적자를 보게 생겼다”며 “묶인 돈만 17억원이나 돼 회사가 휘청하고 있다”고 했다. A사는 제철 설비 분야에서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강소 기업’이지만 최근 1년 새 매출이 25% 줄었다고 한다.
철강 공장에 볼트·너트 등 자재와 공구를 대던 공구 업체들도 울상이다. 이날 포항 대도공구상가 거리에서 만난 김상무(52)씨는 “30년 넘게 공구상을 운영해 왔지만 요즘처럼 어려운 적은 처음”이라며 “작년에 11억원이었던 매출이 올해는 3억원도 안 된다”고 했다.
이날 저녁 포항 죽도시장은 손님보다 상인이 많았다. 상인 서동희(68)씨는 “장사라는 게 잘될 때도 있고 안 될 때도 있는데 요즘은 끝이 안 보인다”며 “철강이 흔들리니 도시 전체가 결딴났다”고 했다. 식당, 노래방 등이 몰린 ‘쌍용사거리’도 인적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가게 62곳 중 11곳은 문을 닫았고 21곳은 주인 혼자 가게를 지키고 있었다.
‘포항의 명동’ 소리를 들었던 중앙상가 거리는 네 집 중 한 집꼴로 공실이었다. 골목 쪽은 더 심각했다. 두 집 중 한 집이 텅 비었다. 일부 가게는 문을 닫은 지 꽤 오래돼 보였다. 올 2분기 중앙상가 거리의 공실률은 34.9%로 전국 상권 중 셋째로 높았다. 전국 평균의 약 2.6배다.
회식 자리가 사라지자 아파트 주차장은 초저녁이면 꽉 찬다. 용흥동의 한 대단지 아파트 주차장은 오후 6시 30분쯤 만차였다. 이 아파트 경비원 박한수(66)씨는 “요즘은 밥이든 술이든 다 집에서 먹는 것 같다”고 했다.
일자리는 증발했다. 30년간 직업소개소를 운영한 공덕수(64)씨는 지난달부터 ‘당근 앱’에서 자기 아르바이트 일을 찾고 있다. 공씨는 “얼마 전에는 APEC 정상회의가 열린 경주 펜션까지 가서 청소 아르바이트를 했다”며 “다른 사람 일자리를 알아봐 줄 때가 아니다”라고 했다. 그는 “포항은 이제 연결해 줄 일자리가 완전히 끊겼다”며 “지난 7월 아주머니 1명을 식당에 소개해 준 게 마지막”이라고 했다.
공장 밖으로 쫓겨난 해직 근로자들은 구직난에 허덕인다. 박대준(50)씨는 작년 12월 포항철강 산단의 한 파이프 업체에서 해고됐다. 박씨는 “위로금 800만원을 받고 떠밀려 나왔는데 아직도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며 “공장이 많아 금방 재취업할 줄 알았는데 내가 너무 순진했던 것 같다”고 했다. 심모(59)씨는 “5개월째 일자리를 찾고 있다”며 “돈을 벌어야 외식도 할 텐데 요즘은 종일 집에만 있다”고 했다.
지난 9월 3일 경북 포항시 영일대 해수욕장에 설치된 '철 그 이상의 가치창조' 조형물 너머로 철강 산업단지가 보인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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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코 정규직 근로자들도 긴장하고 있다. 민주노총 금속노조 포스코 지부 간부 B씨는 “사측이 요새 다른 회사 상황을 운운하면서 구조 조정에 군불을 때고 있어 예의 주시하고 있다”며 “만약 본격화하면 코피 터지게 싸우겠다”고 했다.
포항상공회의소가 지난 9월 포항 지역 기업 88곳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48.9%가 ‘작년 하반기보다 힘들다’고 답했다. 47.1%는 ‘6개월 후 자금 사정이 더 나빠질 것 같다’고 했다.
[포항=김명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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